사회복무요원 여우씨의 일일 - 12
아파트 후문 주차장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기는 했지만 그게 너는 아니었다는 눈빛을 숨기는 듯한 무심한 표정으로 날 훑더니 다시 오줌에 집중했고, 해가 길어져서 완전히 어둡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게 보였다. 한숨은 그와 비슷한 작은 안개를 하나 더 만들어 냈고, 입으로 직접 그 남자의 오줌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어 주머니에 구겨 두었던 마스크를 다시 뒤집어썼다. 마스크의 가장자리에는 오늘 아침에 바른 파운데이션이 기름과 함께 뒤엉켜 있었고, 레몬 향이 나는 치약 덕분인지 단내가 나지는 않았지만 이미 상상 속에서 소변 줄기를 다 받아낸 후 절반 정도 삼킨 나는 레몬맛이 나는 오줌은 먹을 만할지 생각하며 차에 올라탔다.
체액의 여진은 공기를 매개로 전파되어 마스크의 경계를 침범해 내 안에 노란 얼룩을 남기고, 마음에는 상주하는 환경미화원이 없는지 액체 상태의 기억은 치우기 전에 그대로 흡수되고 만다. 얼마 남지도 않은 공백을 오물로 채워 나가며 감정 조종 권력을 다시 빼앗기고, 빈 자리를 수호하는 대신 쓸모없는 것들에 생기를 양보한다, 신구와 선악은 큰 연관이 없고, 신품은 불가해하기에, 온전히 나에게 흡수되기 전까지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어떤 것이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경험하는 순간부터 (일상이 늘 그렇듯이)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하는 임무가 부여된다.
순간이 모여 영원을 만들지만, 진실이 곧바로 진리로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순간은 과거를 통해 마모되면서 현재성을 잃으며 어떻게든 여지껏 쌓아온 영원의 일부와 연관되도록 조작되고, 동시에 이 순간의 변신을 위해 과거의 결합 부위 역시 미묘한 구조 변화를 겪는다, 염기서열이 딱 하나 바뀌는 점 돌연변이는 큰 변이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틀려먹은 존재이고, 기계의 존엄성을 위해서는 인간의 오류를 기어코 인정해야 하므로 우리는 늘 돌연변이를 일으켜야 한다. 그렇게 순간을 인식할 수 있는 과거의 결합 부위에 종결 코돈이 만들어지거나 중요한 아미노산이 다른 아미노산으로 바뀌는 경우, 순간은 이제껏 만들어진 영원에 포함되지 못하고 부유하게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에는 환경미화원이, 대식세포가, 없다.
역사들의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고 포획되지 못한 순간(들)은 과거라는 효소를 구성하는 물질인 언어가 가진 한계이다. 구태의연하고 낡은 말들로 끊임없는 즉시성을 묘사하려는 시도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진다. 예고가 의미없이 찾아오는 상황들을 우리는 언제나 사실로만 마주해야 하고, 늘 한 걸음 늦은 깨달음은 무력감을 줄 뿐이다.
그러나 포착 불가능함 속에서도 여전히 사실은 존재하고, 지금도 순간은 미래의 물결을 타고 떠내려오고 있다. 우리는 과거에 갇혀있는 언어들로 우리 눈의 한계만을 보고 살 수밖에 없지만 나중을 기억의 틀 속에 고립시킨 채로 바라보는 것은 미래에 아우라를 부여하고, 훼손할 수 없는 허구적 신성함을 부여하여 시간의 잔흔을 감싸는 유골함이 되기를 자처하는 주체적이고 전복적인 행위이다, 아마도 이것이 삶의 본질일 것이다.
시간은 얄궂게도 또 지난다,
어제보다 우주가 조금 더 옮겨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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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하라 다쓰시(2022). 『분해의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