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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여우 Feb 03. 2023

이상하기

사회복무요원 여우씨의 일일 - 13

유난히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날이 있다. 숨길 것도 없지만 모든 것에 대해 함구하고 싶은 강한 욕구가 드는 날, 이런 날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에 차마 연차를 내지 못하고 광대근과 성대에 힘을 바짝 주어야 한다, 그래서 평소보다 약발이 더 잘 들어 괜찮아 보이게끔 모형이 되어야 한다.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輕便)하고 고매하리다 … 그러나 인생 혹은 그 모형에 있어서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소?     


잉크나 흘리는 模型心臟은 치우기가 곤란하고, 握手를바들줄몰으는 내 꼴은 보고 싶지 않다. 나는 시각 중심주의에 내재된 폭력성을 학습하였으며, 과학의 남용에 이골이 났고, 무엇보다도 건축에는 문외한이므로 이런 사유를 따라가기 위해 필요한 지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지식인의 고뇌? 뜬구름만 잡는 아카데미즘과 돈귀신만 찍어내는 기술전문학교의 강력한 대결 구도 하에 학술 기관이나 지식장의 존재를 유의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식인은 네이버로 흡수된 또 하나의 자본의 혼령이 아니던가, 돈이 없으면 내공을 달라!     


내 죄장감과 피해 의식이 적극적으로 선별된 기억과 함께 뒤섞여 왜곡된 시선을 낳은 것인가? 사실 내가 세상에 대해 너무나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세계는 오해로 점철된 시공간이 구성하고 있지 않은가, 이해에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오해들이, 공감하기까지 수많은 배제들이 누적되어 왔다. 우리는 언제나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에 맞딱드려 왔고, 합리성에 도취되어 이기적인 선택들을 수없이 저지른다. 마음에 철저히 충실한 것은 죄악이며, 마음을 철저히 외면하는 것은 위선이기에, 이분법의 경계 속에서 에너지의 죽음에 가까워진다. 품위있는 약자나 볼품없는 강자는 너무나 소모적이기에.     


그렇다면 나는 어떤 모조품을 상상할까. 언제든지 강자나 약자의 위치가 뒤바뀔 수 있다면, 누구나 은폐된 신비성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무서워하는兒孩무서운兒孩라도 좋다면 차라리 나를 떠나간 ‘본체’(김홍)나, 나에게서 빠져나온 ‘유령’(임선우)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거울 속에 갇히고 막다른 골목에서만 질주하지 않는, 배회하고 산책하며 관광하는 이방인. 끊임없이 변두리를 돌아다니며 확장해 나가는 도발적인 모형, 그 옆에 큰 소리로 침을 뱉으면서 따라가기.   


  


이 글 어딘가..

김홍(2022). 『엉엉』 

이상(1933). 「거울」. 『가톨닉청년』

이상(1934). 「오감도-시제1호」. 『조선중앙일보』

이상(1934). 「오감도-시제15호」. 『조선중앙일보』 

이승우 외(2019). 『정오의 사이렌이 울릴 때』

임선우(2022). 『유령의 마음으로』

시몬 베유(2021).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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