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무요원 여우씨의 일일 - 14
손흥민은 나한테 제롬 파월이랑 비슷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응.
왜?
순전히 내가 바라본 세상을 두고 한 말이다. 굳이 따지면 나에게 손흥민 씨는 제롬 파월보다도 관심사 밖에 있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거나, 대체 지금의 시대에 운동 경기로 위상을 살리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말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능력주의를 신봉하면서도 시기심에 상대의 강점을 깎아내리기 바쁜 시대에 모두가 능력을 인정하는 인플루언서는 소중하고 희귀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칭송하는 장면은 상상하기조차 여간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기에 존재 자체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내가 스포츠에 관심이 매우 없기 때문에 한 말일 뿐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야외에서 수업한 '즐거운 생활'은 전혀 즐겁지 않았으며, 체육 시간에 체육복으로 갈아입는 것은 매우 귀찮은 일이었고, 억지로 공을 차거나 던지느니 그냥 똥을 쌌다고 놀림을 받겠다는 심산으로(원초적으로 웃음과 혐오감을 동시에 유발하는 대상은 시대초월적이기 때문에 아마 지금도 비슷한 분위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라고? 아니라면 오한기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처럼 똥으로 끝나는 단어들을 외쳐보자. 똥!) 지린내나는 화장실 칸 안에 들어가서 (변기가 더러워서 차마 앉지는 못하고) 멍하게 서서 천장 구석에 얼기설기 얽힌 거미줄을 구경했었다. 아무튼 나는 무언가 육체적인 활동성을 나타내야 할 때는 한시적으로 수업 태도가 매우 불량해졌다. 물론 내가 호피무늬 팬티만 입고 숙박업소의 벽을 주먹으로 때려서 금을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세상은 운동을 싫어하는 남자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운동이 싫어졌다. 나의 중2병은 남성성에 대한 거부였다. 이것은 나를 지금까지도 매우 피곤하게 하는 삶을 대하는 태도인데, 그렇다고 나를 위해 나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은 다소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불편한 마음으로 사람들 사이에 섞이지 못하고 묘하게 부유하고 다니는 나를 내버려뒀고, 세상은 그럴수록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나는 내가 운동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더더욱 경멸감을 느꼈다. 지금은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도 진작 PT 열풍에 타의적으로라도 휩쓸리면서 '멸치 탈출!'을 목표로 인스타그램에 #오운완 을 올렸겠지..
그렇지만 이런 적대감을 사회에 그대로 반영하는 순간부터 독아적인 존재가 된다. 세상은 무엇이든지 이유를 말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이해는 바라지 않고) 수용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체육 활동 거부에 대한 철학적인 장광설을 만들어 내는 것은 나의 정신 질환을 비논리성의 제1원인으로 끌어올리는 무덤을 파는 행위와 진배없으며 나는 어떻게든 이성애 세계에서 도태된 남혐하는 남성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도전하지 않는 편이 낫다.
예상 시나리오 : 나는 남성-되기를 지양하며 백인남근중심주의적인 활동으로 여기던 것들에 대한 회의감이 있어서 그런 것 뿐이지만 그렇다고 스포츠를 싸잡아 가부장적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아니며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나는 그 정도의 마초이즘도 없고 내가 여기서 의미하는 마초이즘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마초가 아니라 이전까지 인식되어 온 공격적인 이미지랄까 아니 공격이라는 단어를 공격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기보다는.. 남혐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런 식의 반성이 학계에서 일어난지 이미 오래 됐기 때문에 차용한 어휘이며 역시 내 비유가 잘못되었고 내가 운동을 못하고 싫어하는 걸 핑계 대려고 그런 거니 마음이 넓은 너가 좀 이해해줘 나는 고추가 작아서 마음도 좁거든..
이렇게 몇 년이 지나면서 나랑 비슷한 나이의 남성과 이야기하는 방법을 많이 잊어버리기도 했고, 오로지 공적인 대화의 안전망 속에서 은둔하며 지내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는 월드컵, 올림픽에 큰 관심이 없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은 그 순간부터 여러 개의 혀들 사이에 편재될 수 있다. 나는 매국노가 되었다가, 페미니스트가 되었다가, 게이가 되었다가,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가(?), etc. 참고로 나는 섹시한 멸치가 되고 싶을 뿐이며 뇌가 섹시한 것보다는 얼굴이나 몸이 섹시하고 싶은데 안과 겉이 모두 순수한 나머지 시선을 더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악마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안온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방어적인 사회 생활 정도라도 가능하기 위해서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의 기사들을 보면서 필기를 한다. 이번에도 다이어리에 남겼다. 조규성 2골, 후반부, 2:3, 김민재 부상 투혼. (이 내용들은 아직 외우지 못해 방금 써 둔 내용을 보고 그대로 베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아니야 더 찾아볼까?하이라이트 영상을 볼까? 근데 그걸 보면 내가 뭘 아나? 그냥 초록색은 바닥이고 움직이는 건 사람이고 작은 점은 공이라는 것 정도는 기사에 나온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는데. 그럼 영웅화된 선수들에 대한 기사를 몇 개 더 볼까? 근데 이번에 골을 넣은 거랑 중고등학교 때의 별명이 무슨 상관이야? 잘생긴 얼굴? 내가 운동을 싫어하는 이유도 언PC한데 거기에서 외모 품평까지 얹으면 나는 인셀남 중에 인셀남이 되는 건 아닐까? 역시 그냥 모른다고 할까? 그럼 세상에 관심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 전에 정치 이야기는 물어볼 때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줄줄 읊었었는데 그럼 정치병처럼 보일까?남자 박지현이나 리틀 이준석처럼 보면 어떡하지? 나도 유령 계정으로 갈등만 조장하는 퐁퐁 호소인으로 몰리는 거 아니야? 그럼 다른 것도 같이 찾아봐야겠다. 멜론뮤직어워드 올해의 어쩌구 : 임영웅, 아이브, BTS, 뉴진스. lets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