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무요원 여우씨의 일일 - 2
연차를 냈다. 전화번호를 바꾸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전화번호를 바꿨고, 그렇게 OTP 번호가 폐기되었고, 통장이 그대로 동결되었고, 풀기 위해서는 은행에 직접 방문해야 하고, 나인 투 식스는 은행 업무 시간과 완벽하게 겹치고, 외출로는 시간이 부족하다. 나돌아다니는 개인 정보를 조금이나마 바꿔서 남용에 혼선을 주려고 했으나 되려 내 인생에 혼선을 주었고, 통장이 묶인 것 역시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인데 귀찮음이 압도적으로 크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나는 딱 귀찮지 않을 만큼의 개인 정보 보안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니까, 개인 정보를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인간적이라는 거다. 인간적인 건 모순적인 거고, 모순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노력 역시 모순적이라 모순적이게도 흥미롭고 동시에 역겨운 것이다. 험담과 풍자는 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해 나가는 큰 동력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모순은 인간성의 필요충분조건, 아니, 그냥 인간성 자체는 모순일지도 모르고, 인본주의의 도래는 모순주의의 도래와 다름없다. 변증법적으로 흘러가다가 필요에 의해 선택되고 기각되는 이성도 모순적이고, 주관의 틀을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역사도 모순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철저하게 여과되는 시공간의 흐름도 모순적이고, 모순적이지 않은 것은 그저 실현되지 않은 신화, 실현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신화로서의 신화만이 모순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앙드레 바쟁은 <완전영화의 신화>에서 하늘을 나는 인간이라는 이카루스의 신화적 이미지가 내연기관의 발명을 통해 현실화의 가능성을 얻었지만, 신화 자체는 발명 이전 이미 관념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기술 역시 신화와 현실(그러니까, 인간세계의 현실)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산물이고, 모순을 위한 존재의 모순을 줄이기 위한 모순적인 행위의 모순적인 결과물이고, 이 모순 덩어리는 계속 복제 중이다.
앙드레 바쟁의 이야기를 굳이 써 본 이유는 한 영화 이론 입문서에서 읽었기 때문에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교양있는 척 한 번이라도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고, 이 문장을 쓰면서도 앙드레 바쟁을 계속 앙드레 지드라고 잘못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물론 앙드레 지드의 소설도 아직 읽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을 공부하고 나서 <<인간의 조건>>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미뤘고,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은 읽어야겠다고 다짐만 하고 있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영어로 보는 편이 낫다고 해서 원서로 읽고 있는데 읽으면서 역시 수능 영어는 수능 영어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지금은 빈칸 추론 문제를 풀면 몇 분 안에 풀 수 있을지, 풀 수는 있는지조차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이론서를 읽은 이유도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이 책은 서구 영화에 초점을 두고 있고, 우연치 않게 집에 <버닝>을 다룬 꼭지가 수록된 책이 있지만, 아무래도 영화를 보기 전 영화에 대한 해석부터 읽는 것은 재미를 떨어뜨릴 것 같았고, 후기 좀 읽어본다고 해서 집단유희의 영향을 받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또 이렇게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마음을 먹으면 나는 교양없는 현대인과 달리 예술 영화를 예술 그 자체로 받아들이며 난해하고 의뭉스러운 것 역시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강박적으로 주입하고 있을 것 같아서 관뒀다. 그러니까, 이동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용자의 귀책사유'가 나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는 귀책을 범하는 것이고 나는 특성 없는 남자가 되기는 싫고 그런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즘은 가지고 있고, 그것만큼이나 자기 자신을 편하게 합리화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미신가와 위선자보다 더 쉽게 경건함의 큰 명성을 얻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렇게 손쉬운 합리화들이 모여서 부실공사가 이루어지고, 아파트가 무너져내리고, 아크로포레스트가 흔들리고, K-자산이 붕괴 위기를 겪는다. 안전사고라는 말은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라고, 어째서 안전사고는 안전불감사고라는 말로 바꾸지 않는지, 여전히 몰래카메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을 보면 범죄 표현의 초점은 범죄 그 자체가 아니라 목적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역시 인간은 신화적이기는 틀려먹은 존재인 건지, 이 조차도 신화적인 것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우울한 일인지, 당연히 이 정도도 못 미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우울해 할 필요가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가장 필요없는 것은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역시 인간이라는 것조차도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신화적인 힘에서 벗어나려고 최선을 다한 인간은 정확하고 효율적인 세계의 운용을 위해 신화적인 힘에 다가가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고 역시 오뒷세이의 후계자들답게 상당히 호전적으로 자기 주체의 자기 포기를 실현하고 있다. 좋건 나쁘건 간에 똑같은 곡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허리에 쇠사슬을 둘러야 편안하기 때문이다.
이 글 어딘가
유운성. <<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을 것이다 - 세기의 아이들을 위한 반영화입문>>(2021)., 김홍중. <<은둔기계>>(2020)., 로베르트 무질. <<특성 없는 남자>>(1930)., 발터 벤야민. <기술 복제가 가능한 시대의 예술작품>(1935)., 르네 데카르트. <프로그램에 대한 주석>(1647)., M.Horkheimer & T.W.Adorno. <<Dialectic of enlightenment>>(1947)., 이근삼. <원고지>(1960).,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이동진을 괴롭힌 논란의 한국영화 TOP 10>(2021)., 2018학년도 9월 모의평가 국어영역 [27-32]지문(*거짓말쟁이의 역설이 소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