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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Feb 16. 2024

환영받지 못한 도전

셋째는 경기(뇌전증)를 하고 있었다. 너무 놀라 생각나는 대로 급히 짐을 챙겨 응급실로 향했다. 진정제를 투여한 뒤, 세 시간 여의 기다림 끝에 병동 입원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첫째가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병원 신세라니...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셋째와 병동에 함께 있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우리 이대로 제주도에 갈 수 있을까.’ 물론 두 달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스스로에게 묻게 된 것이다. ‘진짜 자신 있냐고.’ 하지만 굳건했던 믿음의 흔들림보다 더 나를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주변의 만류였다. 나의 도전, 그리고 우리 가족의 도전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은 많은 사람의 시선들. 가장 완강히 반대한 측근은 친정엄마였다. ‘왜 그런 어려운 길을 자처하느냐.’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다. 엄마의 반대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토록 반대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가벼운 핀잔에 그칠 줄 알았다. 엄마는 전화를 통해 몇 번이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셨다. 더 자세한 이유는 이러했다. ‘셋째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남편 없이 혼자 애 셋을 어떻게 돌보려고 그러나.’, ‘한 달 동안 셋째 운동(재활)은 어떻게 하나.’ 등 온갖 이유로 나를 회유하려 하셨으나 그런 이유로는 내 도전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무조건적인(내 입장에서는) 반대가 아닌, 그 누구보다도 친정엄마에게 따뜻한 격려와 지지를 바랐다. ‘힘들겠지만 잘 다녀와.’ 그 한 마디가 더 절실했다. 물론 딸을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두 아이가 크게 아픈 뒤로 굳건했던 도전의 의지도 느슨해지는 것을 스스로 느끼던 참이었으며, 이 흔들림을 붙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매주 재활 운동(이하 운동)을 하고 있던 두 대학병원에도 알려야 했다. 셋째가 가족과 한 달 동안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오기에 운동을 쉬어야 할 것 같다고. A 대학병원에서는 여행으로 인한 운동 불참 의사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더불어 한 달 동안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운동이 있다면 잊지 말고 해 달라는 부탁까지. 문제는 B 대학병원이었다. 입원 이외의 이유로는 2주 이상 결석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셋째 담당 물리치료사는 교수에게 사정 이야기를 해 보겠다며 걱정하는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여전히 ‘불가능’이었다. 직접 교수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진료비를 낼 테니 사정을 봐달라고 간절히 호소했으나 재활의학과 교수는 완강했다. 공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대기하며 기다리는 보호자들이 이 사실을 알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1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며 어렵사리 들어간 병원이라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행 후 대기로 전환되면 B 대학병원에서 운동을 언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진료비를 이야기하며 호소했던 것인데, 돌아온 교수의 대답은 ‘이래도 꼭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가야겠나.’라는 뉘앙스의 말투였다. ‘내 도전이, 우리 가족의 결심이 결코 환영받지 못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좌절감이 들었다. 나 역시 ‘이렇게까지 가는 게 맞나.’ 잠시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한쪽 세상에서 우리의 도전이 아니라고 그토록 말리는데,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짓인가 싶었다. 하지만 사람은 단 한 사람의 인정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했던가. 수많은 우여곡절을 지켜보던 남편은 언제나 내 편에 서서 응원하고 지지해 주었다. ‘그럼에도 너니까 갈 수 있다고.’ 결국 우리는 남편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제주도에 다녀올 수 있었다. (다행히 셋째는 컨디션 회복 후 이틀 뒤 퇴원했다.)


‘도대체 제주도가 뭐라고 이토록 열망하는가.’ 스스로에게 다시 물었다. 당시에는 ‘그냥’ 가고 싶은 욕망이 강했고, 더 나아가 우리 가족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장애라는 세상에 머물지 않고, 이동의 변수가 강한, 비장애인을 위한 여행의 세상에서 당당히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러한 이유와 더불어 스스로 ‘장애’라는 편견과 선입견에서 자유롭고 싶었던 것 같다. 여전히 장애는 비장애라는 삶과 전혀 다른 서사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과 ‘내 아이의 장애는 어쩔 수 없었다.’는 장애 안에서 또 다른 장애로 선을 긋는 행동.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던 잘못된 신념들을 깨부수고 싶었다. 환영받지 않아도 좋다. 내 도전과 경험이 나 하나라도 바꿀 수 있다면.     

나는 나의 관념으로 그 세계에 도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라 나의 작은 자아를 부수기 위해 간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여행자가 그렇듯이 내 생각과 선입견을 비우고, 안으로 깊어지고 밖으로 더 넓어지기 위해. 출처 :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_류시화     

지금껏 내 생각대로 된 인생은 한순간도 없었다. 여행은 ‘예상을 빗나간 삶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나를 마주하는 여행을 통해 내 세상을 더 깊이, 또 다른 세상을 더 큰 마음으로 품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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