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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Feb 15. 2024

시련은 진행 중

준비는 끝이 났다. 이제 짐을 꾸려 떠나기만 하면 된다. 성수기에 떠나는 여행이기에 서둘러 준비했고, 본 여행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다. 더욱이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먼 타지, 그것도 제주도라는 섬으로 떠나는 여행이니만큼 미리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은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제주도에 대해 자주 상상하고 이야기 나눴으며, 그 어느 때보다 다가오는 여름을 손꼽아 기다렸다.    


 2023년 4월 마지막 날, 시댁 식구들이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동서의 둘째 출산이 머지않아 급히 마련된 자리였다. 한참 식사가 이어지고, 첫째가 복통을 호소했다. 유달리 아파하는 첫째의 모습에 놀란 가족들에게 사정을 말씀드렸다. 사정은 이러했다. 며칠 전, 복통을 동반한 혈뇨를 보아 가까운 소아청소년과 병원에 다녀왔고 의사는 지금이라도 큰 병원 응급실을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과 함께 소견서를 써 주었다. 워낙 갑작스러운 데다가 약간의 복통과 혈뇨라는 증상 외에 특별한 증상이 없었기에 일단 다음 주 월요일 가까운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로 진료 예약을 해두었다. 진료 당일, 소변검사를 하였고 다음 날 아침, 소변검사 결과 확인과 더불어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다. 담당 교수는 한참 동안 초음파 모니터를 응시하더니 난소 쪽에 물혹으로 의심될 만한 것이 보인다고 말하였다.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 X-RAY 촬영까지 진행했다. 이어 담당 의사는 복통도 잦아들었고, 소변검사 결과 특별한 문제가 없으니 다음 주에 다시 외래 진료를 보자고 이야기하며 우리를 돌려보냈다. 아마도 난소의 물혹을 의심하기에는 많이 어린 나이라는 이유였을 것이다. 너무 아파하는 첫째가 걱정되었지만, 워낙 예민한 성격 탓에 갖가지 스트레스로 인한 ‘방광염은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시어머니와 주고받았다. 으레 꾀병이라고만 생각했다. 평소 건강한 아이였고, 아픈 셋째가 있기에 복통 정도는 별일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첫째는 배가 너무 아프다며 엄마와 함께 자길 원했지만 냉정하게 본인 방으로 돌려보냈다. 얼마나 끙끙댔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첫째는 어렵사리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 첫째는 어제보다 더 심한 통증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엄마, 나 너무 아파. 죽을 것 같아.” 외마디 비명과 함께 구토를 했다.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고, 때마침 남편이 쉬는 날이라 첫째는 그 길로 남편과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가면 금방 진정될 줄 알았지만 수액을 달고도 여전히 복통을 호소했고, 응급실 의료진은 보호자 동의 하에 CT촬영을 진행했다. 결과는 ‘난소 쪽 물혹’ 의심. 지난주 소아청소년과 담당 교수가 의심한 증상이 다시 언급되었다. 해당 교수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이어 소아청소년과에서 산부인과로 전과했고, 산부인과 담당 교수로부터 ‘난소 낭종 염전’(자궁과 난소를 이어주는 인대가 서로 꼬이면서 극심한 복부 통증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꼬임 증상이 지속되면 난소의 혈액 공급이 오래 차단되기 때문에 조직이 괴사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_ 출처 : 사랑아이여성의원 공식블로그)이라는 결과를 전해 들었다. 불행히도 첫째의 왼쪽 난소에 괴사가 꽤 많이 진행된 상태였고, 난소 제거 수술은 불가피했다. ‘어떻게 우리 첫째에게 이런 일이, 우리 가족에게 또다시 왜 이런 시련이.’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부모인 내게 죄를 물으시지, 왜 이 어린아이들에게 죄를 물으시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하늘을 향한 대답 없는 울부짖음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것뿐이었다. 그날 저녁 복강경으로 수술을 진행했고, 다행히 수술은 잘 마무리되었다. 이제 입원실에서 하루 이틀 지켜본 뒤, 퇴원하기만 하면 된다. 수술 다음 날 아침, 나는 입원실로 찾아갔다. 아프지 않고 평온한 첫째의 모습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만하길 다행이다 싶었다. 문득 제주도 생각이 나면서 어느 누구도 아픈 이 하나 없이 무사히 다녀오길 바랐고 또 바랐다. 


그로부터 2주 일 뒤 목요일 아침, 큰 아이들을 여느 때처럼 학교에 보낸 후에 집안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안방 침대에 누워서 놀고 있던 셋째에게 다가가 눈을 마주치고, 말을 걸었다. 그런데 셋째의 눈빛이 평소와 다르다. 우리 가족, 무사히 제주도 한 달 살이를 끝마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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