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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Feb 22. 2024

Day 1_1

2023. 07. 28.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그날이 왔다. 제주도 한 달 살기의 서막이 펼쳐진 것이다. 불안과 걱정보다 설렘으로 가득했던 첫날. 우리는 목포발 제주행 여객선을 타기 위해 자동차에 몸을 실었고, 오전 8시가 채 되지 않아 목포항에 도착했다. 남편은 차를 배에 선박 하기 위해 따로 이동하였고, 나와 아이들은 먼저 차에서 내려 대합실로 향했다. “엄마, 이게 배야? 엄청 크다!” “그러게. 정말 크다. 비행기보다 큰 것 같아.” 우리는 타이타닉호를 연상케 하는 여객선의 크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케이트 윈슬렛이 마차에서 내려 타이타닉 호를 올려다보던 기분이랄까?)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한 대합실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같은 시각, 같은 배를 타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같은 설렘을 안고 출발하는 많은 사람의 사연들이 새삼 궁금해졌다. ‘우리처럼 한 달 살기를 가는 사람들일까?’, ‘여행을 다니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도 있을까?’ 행복한 질문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대략 1시간 정도의 기다림 끝에 탑승을 위한 줄 서기가 시작되었다. 이미 핸드폰 문자로 탑승권을 받은 상태이기에 따로 티켓 발행 없이 줄 서기가 가능했다. 긴 시간의 여정이기 때문에 먹거리부터 시작해서 객실 안에서 즐길 거리까지, 각자 들고 있는 짐도 상당했으니 여러모로 편리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여객선 출입구 직원에게 핸드폰 문자를 보여줬다. 들어가도 괜찮다는 확인을 받기 위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직원을 바라보았지만 어쩐지 직원의 표정이 좋지 않다. “이 문자는 모바일 티켓이 아닙니다. 예약 확인 문자입니다. 창구에 가셔서 다시 티켓을 발부받으세요.” 맙소사. 모바일 사용이 능숙하다고 자만한 탓인가,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고 간 부주의였던 것인가. 직원은 당황하는 우리 가족에게 다시 줄을 서지 않아도 되니 어서 다녀오라고 이야기해 주었고, 창구 직원은 예약 확인을 마친 뒤 내게 말했다. “이코노미석 1인, 패밀리룸 4인으로 예약되어 있네요. 이코노미석 1인은 패밀리룸 소인 1인으로 바꿔 드릴게요. 그게 더 저렴해요.” (온라인상으로 패밀리 룸은 4인 이상 예약되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목포항 직원들은 천사가 틀림없을 것이다. 정확한 티켓을 손에 들고 직원에게 다가갔다. 직원은 웃으며 우리 가족을 맞이해 주었고, 우리는 이어 여객선 밖에 설치된 계단을 통해 4층까지 올라갔다. 여객선에 들어선 뒤에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5층 로비에 들어섰다. 20여 년 전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탔던 여객선과는 판이한 내부에 입이 떡 벌어졌다. 편의점, 빵집, 오락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있었고, 우리는 로비를 지나 패밀리룸이 있는 6층으로 한 번 더 계단을 이용해 올라갔다.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제주도를 향한 기쁨과 설렘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패밀리룸은 우리 다섯 가족이 누우면 한가득 찰 만큼 아담한 방이었지만 작은 세면대, 옷장, 티브이 등이 갖춰져 있는 제법 내실 있는 객실이었다. 가장 먼저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멈춰있는 여객선에서 바다는 보이지 않았고, 대합실 건물 뒤편이 보였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샌가 목포항 직원들이 한 글자씩 쓰여 있는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목 포 에 서 다 시 만 나 요’ 사소한 것 같지만 출발을 앞둔 여행객들에게는 감동과 기쁨의 이벤트가 아닐 수 없었다. 이어 궁금해졌다. 비록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제주발 목포행 여객선을 타도 이런 이벤트가 있을까. 예를 들면 ‘또 오 셨 군 요. 반 갑 습 니 다.’와 같은? 여행 첫날의 모든 장면은 행복한 상상만으로 가득했다.

9시에 출발한 목포발 제주행 여객선은 오후 2시쯤 되어서야 도착했다. 우리 가족은 5시간 동안 바닷바람을 쐬기도 하고, 오락실에 가서 게임을 하는 것은 물론 코인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여객선 내부에서 즐길 수 있는 먹거리와 놀거리를 마음껏 즐긴 5시간이었다. 체감상 1시간 같은 5시간을 보낸 뒤, 드디어 제주항에 도착했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20여 년 전 고등학교 수학여행 당시, 늦은 저녁에 출발해서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도착한 제주항의 모습은 그저 암흑과도 같았다. 반대로 정수리 위로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던 한 여름 오후에 도착한 제주는 주변이 온통 바다였지만 천혜의 광경 그 자체였다. 

아, 그리웠던 나의 제주여! 만나서 반가워! 우리 한 달 동안 잘 지내보자! 


우여곡절이 많은 준비기간을 보내고 들어선 꿈의 섬, 제주! 오래도록 함께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아 갈 매일을 고대해 본다.    

창문에 서서 인사하던 우리 가족에게 눈을 맞추며 손을 흔들어 주시던 목포항 직원분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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