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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Feb 29. 2024

Day 2_1

2023. 07. 29.

기도로 제주도에서의 첫날 아침을 맞이했다. '이곳에서 무사히 한 달을 보내게 해 주세요.' 동이 틀 무렵, 나는 홀로 운동 겸 동네로 산책을 나섰다. 우리가 들어선 골목 반대쪽으로 나가면 점빵이 있고, 버스 정류장도 있다는 매니저님의 말씀 따라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200미터 정도 걸었을까. 왼쪽에는 ‘동복리점빵’이 있었고, 건너편에는 버스 정류장과 나란히 커다란 당산나무가 자리하고 있었다.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남쪽에 우리 숙소가 있었으며, 북쪽으로는 바다가 보였다. 바다가 가까운 동네라 그런지 특유의 짠내가 코끝을 맴돌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뜨거운 햇볕과 습기까지 더해져 불쾌할 만도 한데 산책하는 내내 기분 좋은 설렘이 가득했다. ‘내가 살 동네를 눈으로 담고, 발끝으로 느끼며 피부에 닿는 해풍의 감촉까지 모두 담아가야지.’ 바닷가를 향해 조금 더 걸으니 오른쪽에 방파제와 빨간색 등대가 보였다. 그리고 도로 방향을 향해 또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니 카페로 보이는 신식 건물이 몇 채 눈에 띄었다. ‘오빠가 집에 돌아가기 전에 함께 가봐야겠다.’ 바다를 배경 삼아 시작에 어울리는 몇 가지 다짐들을 하고 나니 아이들이 깰 시간이 다 되어갔고, 아쉽지만 내일을 기약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200년이 넘은 당산나무, 팽나무/ 마을 길목에 위치한 소담스러운 카페/ 삶의 터전인 제주 앞바다

 남편은 제주도 한 달 살기 일정을 모두 함께 할 수 없었다. 출발하는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고 일요일에 돌아가는 일정 한 가지와 한 달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하루 전날, 또 한 번의 휴가를 내어 함께하는 일정으로 총 3박 4일 동안 머무를 것이다. 휴가가 넉넉한 직장이라면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을 테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을 고려해서 여행 중 가장 힘든 ‘출발’ 일정에 맞춰 여행을 계획했다. 짧은 일정인만큼 우리는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최적의 여행지를 선택해야 했다. 첫 번째 여행지는 바로 해수욕장. 물론 아빠가 간 뒤에도 또다시 해수욕장은 갈 것이다. 다만 다섯 가족 모두가 물놀이를 하기 위해 해수욕장을 가는 것은 처음이기에 아빠와 함께 다녀온 뒤, 추후 해수욕장의 방문 횟수나 구체적 일정 등을 정해야 한다. 유아차가 이동 가능한 여행지는 아빠 없이 엄마 혼자서도 충분히 다닐 수 있지만 위험 부담이 높고, 유아차 사용이 불편한 해수욕장은 보호자가 최소한 둘 이상은 되어야 장애아인 셋째를 포함한 아이 셋을 제대로 돌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첫 경험이기에 이 모든 것을 단정할 수 없다. 일단 보호자로서 엄마인 내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기에 아빠와 함께 하는 여행지로 가장 먼저 해수욕장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가 처음 방문한 해수욕장은 ‘김녕 해수욕장’. 아이들이 놀기에 더없이 좋은 해수욕장이라고 하기에 우리는 집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물놀이 용품을 챙겨 나섰다. 집에서 출발하여 10분쯤 걸렸을까. 우리는 이른 오전에 도착한 덕분에 한가롭고 조용한 해수욕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늘만큼이나 새파란 바닷물은 또 어떠한가.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우리의 첫 여행지는 환상 그 자체였다. 해수욕장 한가운데로 들어서니 대여할 수 있는 몇 개의 평상과 많은 파라솔이 설치되어 있었고, 양쪽으로는 텐트나 파라솔, 타프 등을 개인적으로 준비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우리 가족은 바다에서 왼쪽 방향에 돗자리를 깔았다. 문제는 우리에게 햇볕을 가려줄 그 어떠한 도구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햇볕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조금은 무모했을까. 우리가 사는 서해안 바닷가 앞에는 보통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마음만 먹으면 쉽게 그늘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김녕 해수욕장은 달랐다. 체감상 나무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땡볕에 그대로 노출된 해수욕장인 것이다. 맙소사. 일단 급한 대로 차 속에 있던 장우산 2개를 펼쳐 세웠다. 그러나 바닷바람에 속절없이 날아가는 우산 때문에 우리는 또다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제주도가 무인도도 아니건만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가 된 기분이었다. 바람에 버텨줄 큰 바위가 필요했다. 여기저기 바위를 찾아 헤맸다. 다행히 돌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손잡이가 일자(ㅡ)인 우산을 모래 위에 세우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어렵게 겨우 우산을 세웠건만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는 이 더운 여름날, 혼자 아이 셋을 데리고 다시 해수욕장에 올 수 있을까.      

 

김녕 해수욕장_출처 : 네이버 블로그 '제주이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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