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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Mar 07. 2024

Day 3_1

2023. 07. 30.

제주도에서 맞이하는 첫 주일이자 남편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혼자 삼 남매를 돌보고, 여행까지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지만 걱정과 불안을 넘어선 분명한 설렘이 있었다. 앞으로 삼 남매와 제주도에서 보낼 추억의 시간을 상상해 보며 가까스로 두려움을 떨쳐내려 했다. 오늘도 기도와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어제와 반대 방향으로 동네 산책을 나섰다. 뜨겁고 강렬한 태양 덕분에 ‘진짜 제주 여름 한가운데 와 있구나.’하고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어제와 또 다른 동네의 모습을 온몸과 마음으로 새기며 오늘 일정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제주의 나무, 제주의 들꽃, 제주의 바다.

 산책이 끝나는 대로 어제 오후에 가지 못했던 ‘런던 베이글 뮤지엄’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할 것이다.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남편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나와 첫째, 둘째 큰 아이들은 가까운 ‘김녕 성당’(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로 8길 5-2)에 가서 교중미사를 볼 것이다. 미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제주 공항에 가서 점심을 먹고, 2시 비행기를 타고 갈 남편을 배웅할 예정이다. 제주 공항까지 움직였으니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라 도서관’(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남로 221)에 가서 독서를 하고, 보고 싶은 책도 빌려올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일정! 대학교 동창들이 우리 숙소에 방문한다. 여행 기간은 5박 6일. 세 팀이 각자의 아이들을 동반하여 함께 한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다짐하고 친구들에게 공표한 시기는 2022년 말. 친구들은 우리 가족의 도전을 응원하면서 함께 하기를 원했다. “우리 가도 돼? 가고 싶다. 함께 하자!” 친구들은 나보다 더 설레는 마음으로 여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래, 놀러 와. 언제든 환영이야.” ‘우리 가족끼리 노는 것도 좋지만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값진 경험이지 않을까.’ 싶어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모두 20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친구들이기에 누구 하나 반대하는 의견 없이 함께 뜻을 모아 주었다. 그렇게 여름이 되기까지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친구들은 종종 여행 준비 과정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함께 할 준비 사항이나 일정 등도 조율하며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며, 오늘 저녁부터 우리는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나 역시 제주도에 입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진 못하겠지만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도움을 주고받으며 제주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30일 중 6일이라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이 모든 것이 도전이라 여기며, 호기롭게 친구들의 방문을 반겼지만 막상 그날이 다가올수록 하나부터 열까지 걱정투성이었다. 넓지 않은 숙소에서 10명의 인원이 다 같이 자는 것부터, 먹거리 걱정, 함께 움직일 걱정 등 우리가 모두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갖가지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나의 걱정과 우려를 눈치챈 친구 하나가 여행 시작 직전,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우리 가도 돼? 민폐일까 봐.” 반대로 용기 있게 돌진하는 친구도 있었다. “일단 해 보자. 우리가 언제 함께 제주도에 와 보겠어.” 혼란스러운 틈을 타 내 걱정도 커질 대로 커져 버렸다.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 ‘기나긴 시간 동안 별 탈 없이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등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 친구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하나가 빠질 거면 모두 오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나름 용기를 가지고 초대하는 내 마음에 불을 지피고 만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번의 통화 끝에 극적으로(?) 모두 오는 것으로 결정했고, 막상 함께하면 뭐든 잘 해낼 걸 알면서도 나조차도 어리숙한 제주도 여행길에 친구들과 더불어 친구들 아이들까지 동행한다니 두려웠던 것 같다. 사실 그 어느 때보다 친구들의 용기와 응원이 필요했다. 물론 나를 걱정해 주던 친구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분명 나를 너무 잘 아는 친구이기에 해주던 말이라는 것을 잘 안다. 내심 걱정하고 있던 마음이 친구의 세심한 배려로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 것뿐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의 진짜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 흔쾌히 친구들의 방문을 허락했지만,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복잡하고 혼란한 마음을 안고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소중한 6일의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반가운 얼굴로 친구들을 맞이하기로 했다. ‘자, 이제 세 번째 날의 시작이다. 남편 말대로 가볍게 베이글로 아침을 시작해 볼까.’ 간단히 준비를 마치고 ‘런던 베이글 뮤지엄’으로 향했다. 아침 8시에 오픈이라 여유 있게(?) 8시 반쯤 나섰고, 베이글 가게 앞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9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인데 사람들로 가득한 것이 아닌가. 나는 핸드폰부터 들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얘들아, 우리 집 앞에 베이글 카페가 있어서 간단히 아침을 먹으러 왔는데 이거 봐. 사람이 어마무시(?)해.’ 알고 봤더니 그곳은 그냥 집 앞 카페가 아닌 제주도 맛집 명소였던 것. 고즈넉한 우리 동네의 진짜 실체는 무엇일까? 신선한 충격을 안겨다 준 우리 동네가 나는 더욱 궁금해졌다.

분주한 '런던 베이글의 아침' 점점 늘어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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