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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Mar 14. 2024

Day 4_1

제주 한 달 살기_2023. 07. 31.

4일 차 : 런던 베이글 뮤지엄, 비자림, 제주 레일 바이크, 동복 뚝배기


 친구들과 이번 제주 여행을 계획할 때, 셋째의 상황에 따라 모든 일정을 함께 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미리 이야기해 두었다. 친구들 역시 이미 예상한 듯, 문제 될 게 없다며 걱정하는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하지만 큰아이들이 있는 이상 친구들과 전혀 다른 일정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우리 가족의 계획에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은 없었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다리는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귀한 시간을 대기 시간으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아침 메뉴를 상의하던 중 친구들 사이에서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 거론되었고, 일단 가보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다. 마뜩잖았지만 어제 갔던 8시 반보다 더 일찍 가면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너무 기다리면 다른 장소를 물색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 일거라 생각하며 대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출발과 동시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각자 우산을 챙기고 ‘런던 베이글 뮤지엄’으로 향했다. 역시나 이미 카페에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물론 8시 반보다 일찍 가진 못했다. 아이들을 챙겨 준비하고 나서느라 시간을 맞출 수 없었고, 당장 차선책이 없었기에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1시간이 될지 2시간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우리의 기다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와 셋째는 비가 오기에 일단 차 속에서 기다리기로 했고, 나를 제외한 친구들과 아이들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간신히 피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차 속에서 편히 기다리면서도 미안함 때문에 마음 한 편은 가시방석이었다. 당장 차선책을 제안하고 싶었지만 비가 오는 불편함 속에서도 기다리는 친구들에게 차마 그 말만은 할 수가 없었다.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기다림 이건만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빗줄기는 조금씩 얇아졌고, 거의 그칠 때쯤 나도 셋째와 함께 줄 서기 대열에 합류했다. 이번엔 뜨거운 태양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비를 피해 겨우 버틸 만 해졌건만 작렬하는 태양이라니. 온전히 친구들과 함께였다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는 시간을 기꺼이 마주했을 텐데. 우리는 각자 둘 이상의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만 3세부터 초등학교 5학년 생까지. 나이는 천차만별이었지만 모든 아이들이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기다렸고, 70번 대에서 시작한 기다림이 1시간 후, 40번 대가 되었다. 이제 와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쉽고, 이렇게 1시간 이상을 더 기다리기에는 무리였다. 결국 내가 먼저 차선책을 제안했다. "아이들도 너무 지쳤고, 배도 고프니 일단 숙소에 가서 기다리자. 간단히 요깃거리도 하며 10번쯤 되면 출발하는 건 어때?" 다행히 친구들은 나의 의견에 호의적이었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끼리끼리라고 했던가.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이 모여 20년간 우정을 다져온지라 누구 하나 싫은 내색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친구 하나에게 결국 속상한 마음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상황은 이러했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은 유아차가 입장할 수 없는 카페였지만 (2층 구조로 된 카페였으며, 2층에서 베이글을 포함한 음료 등을 판매했고, 구입한 베이글과 음료는 1층에 내려와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친구들이 있었기에 함께 유아차를 들고 계단으로 내려와 먹을 수 있었다. 통유리로 된 창문 밖으로는 에메랄드 빛 제주 바다가 한눈에 펼쳐졌고, 맛집이자 사진을 찍는 명소이기도 했다. 실내외를 오가며 즐겁게 사진을 찍는 친구들이 셋째 때문에 실내에만 있는 나에게 “나가서 사진 찍고 와. 내가 셋째 봐줄게.”라는 몇 번의 제안을 번번이 거절했고, 재차 거듭되는 제안에 “나 이런 데서 사진 찍는 거 안 좋아해.” 라며 삐죽했던 마음을 입 밖으로 고스란히 내비치고 만 것이다.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던 친구에게, 2시간 가까이 힘겹게 기다려 온 보람이 무색하게 한 나의 이 한마디에 우리의 친교 여행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원한 여행은 이런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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