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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Mar 15. 2024

Day 4_2

제주 한 달 살기_2023. 07. 31.

런던 베이글 뮤지엄, 비자림, 제주 레일 바이크, 동복 뚝배기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아이들 엉덩이가 가벼워질 즈음 다음 여행지를 결정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한 두 팀은 자차를 타고, 나머지 두 팀은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했기에 너무 멀지 않은 곳이어야 했다. 더불어 ‘런던 베이글 뮤지엄’과 달리 사람이 없고, 한적한 곳이길 바랐다. 내 의견이 적극 반영되어 다음 여행지는 ‘비자림’(제주 제주시 구좌읍 비자숲길 55)으로 결정되었다. 비자림은 내게 ‘환상의 공간’이었다. 10년 전, 첫 아이가 18개월 무렵 친정어머니와 함께 제주도에 왔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여행지는 바다가 아닌 숲, 바로 비자림이었다. 워낙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곳이었는데, 온 가족이 산책하기에 좋은 평탄한 적토 길과 여름의 싱그러움을 잔뜩 머금은 녹음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비자림에 도착하자마자 더위도 식힐 겸 입구에 있던 젤라토 가게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각자 원하는 맛의 젤라토를 골라 먹고 있을 때 괜스레 웃음이 났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에서와는 전혀 다른 내 표정을 본 친구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워?”, “아니, 그냥 좋네. 너무 오고 싶었거든.”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어쩌면 정말 오랜만이었다. 분명 부담과 걱정을 안고 시작했고, 완벽히 만족하는 여행이 되지 않을 거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고 싶지 않은 곳에 갔을 때의 나와 간절히 바랐던 여행지에서의 전혀 다른 내 모습에 스스로도 적잖이 놀랐고, 친한 친구 역시 그런 내 모습을 모르지 않았다. 민망하면서도 미안했다. 비록 원하지 않는 여행지일지라도 함께 하는 여행에서 내 배려가 부족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바다보다 산을 좋아한다. 산을 보기 위해, 비자림을 보기 위해 제주도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 이곳에 내가 있고, 친구들과 함께 있다. 내가 저지른 실수도 기꺼이 이해하고 받아줄 나무가 있었고, 그 숲에 우리가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마주 보며 웃었고, 그저 걸었다. 말하지 않아도 숲길에 내딛는 발걸음 소리가,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가 내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대신 전해주었으리라.


 

 다음 여행지는 또 다른 친구의 추천으로 진행된 ‘제주 레일 바이크’(제주 제주시 구좌읍 용눈이오름로 641). 아이들을 위해서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용눈이 오름에 설치된 레일 위에서 4인이 페달을 밟아 함께 나아가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나와 셋째는 탈 수 없으니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나머지 친구들과 아이들은 4인 1조가 되어 레일 바이크를 타기로 했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나와 셋째는 탈 수 없었지만, 첫째와 둘째는 이모들 덕분에 또 다른 경험 하나를 쌓을 수 있었다. 그렇다. 이런 게 바로 함께하는 여행의 묘미이다. 친구들이 함께 했기에 내가 해줄 수 없는 경험 하나를 우리 아이들이 쌓을 수 있었고, 친구들이 내게 전해준 배려만큼 우리 가족 여행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다. 나 또한 내가 해줄 수 있는 배려로 친구들의 여행을 빛나게 해 줄 수 있었건만 단지 원하는 여행이 아니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에게 날 선 마음을 드러냈던 내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가족 여행에서는 언제나 내가 원하는 대로 추구하는 방향대로 계획되었다면, 친구들과의 여행에서는 서로의 ‘배려’가 우리의 경험을 얼마가 빛나게 할 수 있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갔다. 우리는 맛있는 저녁 한 끼를 먹기 위해 길을 나섰다. 지친 몸을 보양하기 위해 또다시 찾아간 ‘동복 뚝배기’. 친구들의 입맛도, 아이들의 입맛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었던 감사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 괜찮았던' 두 번째 밤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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