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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Mar 21. 2024

Day 5_1

제주 한 달 살기_2023. 08. 01.

김녕 해수욕장


살인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2023년의 제주 여름. 우리는 한마음으로 해수욕장을 외쳤다. 친구들의 선택은 ‘김녕 해수욕장’. 우리 가족은 일전에 다녀왔음에도 개의치 않았다. ‘배려의 여행’을 마음먹은 뒤였고, 우리 가족은 남는 시간 동안 언제든지 다른 해수욕장을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부지런히 아침을 챙겨 먹고 물놀이 장비를 챙긴 뒤 역시 두 팀은 자차로, 나머지 한 팀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한 명의 친구는 일정상 오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방학 기간인 탓에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많았다. 파라솔과 평상 중 고민 끝에 평상을 대여하기로 했고, 그마저도 딱 하나의 평상만 남아 있을 만큼 더운 여름의 제주 해수욕장에는 오전부터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번 일정에서는 어느 때보다 친구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다 큰 것 같지만 큰아이들도 분명 어른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이다. 튜브를 챙겨 시원한 바다로 몸을 담그러 간 아이들과 친구들. 나 역시도 바닷속에 들어가 달궈질 대로 달궈진 몸을 식히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었다. 아쉽지만 평상에서라도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아이들과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꿈만 같은 시간. 무덥고, 진득한 피부에 까슬거리며 달라붙은 모래가 불편한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기지 않았다. ‘우리가 모두 제주에 와 있다니.’ 기적 같은 이 순간을 되새겼다.


 

 함께한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 셋을 포함해 모두 7명이었다. 남자아이 3명에 여자아이 4명. 물놀이와 모래놀이를 오고 가며 정신없이 놀던 아이들. 평화롭게 어울리면 좋으련만 불화는 언제나 우리 가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첫째는 모래바닥을 파내어 물길을 만들며 놀고 있었다. 둘째도 동참해 바닷물을 날랐고, 나머지 2명의 여자아이도 함께하고 있었다. 평상 그늘 아래서 한참을 놀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오고 가는 동선을 넘어설 만큼 수로가 확장되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심코 첫째가 만든 모래 수로를 밟고 다녔다. 열심히 만들었지만 번번이 부서지는 수로에 속이 상한 첫째는 애먼 둘째에게  짜증을 냈다. “다 망가져 버렸잖아. 어떻게 해!” 지켜보는 엄마 역시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위로에 앞서 흥분을 가라앉히길 바랐다. “사람들이 모르고 그랬으니 어쩔 수 없지. 속상하겠지만 다시 만들어 봐.” 애꿎은 모래 수로에 화풀이를 하는 첫째를 바라보며, 사춘기에 접어든 첫째와 여행 중 부딪히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첫째의 불안하고 세심한 성향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사춘기라는 시기적 특성과는 별개로 고유의 성향이 있을 테니. 그러한 성향과 시기적 특성을 차치하더라도 엄마인 나는 만 10세 6개월의 아이에게 어쩌면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첫째', '언니'라는 위치의 역할에서 언제나 솔선수범을 해주길 바란 것이다. ‘엄마를 돕고, 동생들을 챙기는 언니.’ 이런 기대가 무너질 때마다 어김없이 첫째와의 갈등은 점화되었다. 다시 말해 첫째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 너무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설득하고, 회유하지만 뒤돌아서 한숨을 내쉰다. 첫째는 아닌 척하는 엄마의 진심을 한숨으로 느꼈으리라. 첫째는 불안을 날 선 불편으로 표현하는 아이다. 찌푸린 얼굴, 거친 숨소리, 온갖 부정적인 어휘를 사용해 현재의 불만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부모라도 상처를 받는다. ‘우리’를 위해 온 여행이지만 첫째의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을 후빈다. ‘누구 때문에 여길 왔는데.’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순한 기질의 엄마가 예민한 기질의 아이를 키울 때 마주하는 어려움은 언제나 ‘나는 안 그랬는데’라는 이해 밖의 행동들이다. 이해를 해야 소통을 하고 아이의 진심을 알 수 있는데, 이미 아이를 ‘이해’하는 첫 관문부터 막혀버리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매 순간 어렵다고 느껴짐과  동시에 여행 속에서 마주한 첫째를 통해 겸손을 배운다.

다 아는 것 같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아이,
또 다른 세상을 이해하는 데는 언제나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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