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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Mar 22. 2024

Day 5_2

제주 한 달 살기_2023. 08. 01.

김녕 해수욕장


첫째가 모래놀이를 멈추는 바람에 결국 모든 놀이는 끝이 났지만 종일 평상을 빌린 만큼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우리는 평상에서 점심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가까운 중식집에 배달 요청을 하고, 음식이 올 때까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돌봤다.

 아무리 그늘이 있다고 해도 제주의 한여름 무더위를 온전히 막아낼 순 없었다. 셋째가 걱정되었다.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는 셋째에게 더위, 즉 열은 우선으로 기피해야 할 환경이다. 나름대로 더위로부터 셋째를 지키고자 손 선풍기는 물론 얼음팩까지 준비했다. 기저귀 때문에 더 많은 열을 몸에 지니고 있을 테니 종종 기저귀를 벗겨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더위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셋째가 부디 잘 버텨주길.’ 셋째의 상황도 중요하지만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마음껏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조금 더 버티고, 기다렸다.

 드디어 기다리던 점심 식사 시간. 물놀이를 하느라 평소보다 더 허기졌을 우리에게 특별한 공간에서 마주한 음식은 그 어느 때보다 꿀맛 같았다. 식사 후,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은 음료를 마시며 때때로 더위를 식히기도 했다. 더위도 더위지만 체력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해수욕장에서 머물 수는 없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 정리를 하고 남은 일정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기로 했다. 친구 한 팀이 집으로 돌아갔으니 숙소에 함께 한 인원은 총 10명. 떠나는 친구가 내 손목을 붙잡으며 이야기했다. “우리가 가면 훨씬 한가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아니나 다를까 친구 말대로 3명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아쉬운 마음에 허전하기도 했지만 물리적으로 넓어진 숙소 때문인지, 피곤함 때문인지 우리는 차분히 가라앉은 상태에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이를 동반한 여행은 언제나 아이들 컨디션을 신경 써야 한다. 어른도 힘든 여행을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같은 강도로 보내야 했기에 6일이라는 일정 동안 줄곧 달리는 것보다 이쯤에서 쉼표를 찍어주는 일도 필요했다. 책을 보고, 블록을 맞추고 그림을 그리는 등 오후는 오전과 상반되는 정적인 활동으로 가득 채웠다.


 

 친구들과 평소 아이들 없이 만날 때가 많다. 물론 나는 언제나 셋째가 동반된 상태에서 만나야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마실을 나오듯 가벼운 마음으로 집 밖을 나선다. 기분 전환에 그만이다. 각자 보낸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 재미로 오래된 친구들을 만난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으면 각자 아이들을 챙기느라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엄마들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아이들이 어느샌가 부모의 품을 떠나는 그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그날의 아쉬움을 떠올리며 현재의 힘듦을 묵묵히 이겨낸다. 누구 하나 불평 없이 내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피고 챙긴다. 친목을 위한 여행이라고는 했지만 결국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위해 마련한 자리이기도 하다. 엄마만 생각했다면 선뜻 나서지 못했을 여행이지만 아이들이 있기에 힘들지만,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기도 한다. 이제 갓 어른이 된 20살 친구들이 언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서 제주도에 여행을 오게 된 건지. 꿈만 같았고, 감사했다. 어쩌면 걱정과 불안, 찰나의 불편함 때문에 느끼지 못할 수 있었던 기쁨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회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이만 먹으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던 20살의 친구들이 어느새 마흔. 여전히 부족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 ‘제주의 여름’이라는 특별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훗날 아이들 없이 친구들과 여행 가는 날도 오겠지?
그날을 상상하면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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