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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Mar 28. 2024

Day 6_1

제주 한 달 살기_2023. 08. 02.

해녀촌

 

 무더운 여름 한가운데서 우리는 어느덧 여행 4일 차를 맞이하였다. 초반의 생기는 온데간데없이 아침을 맞이하는 눈꺼풀은 마치 물 먹은 솜이불 같았다. 짧은 여행 기간 동안 아이들과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일순간 사라져 버린 것도 아닐 텐데, 상상을 초월하는 더위에 지쳐버린 우리는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 수밖에 없었다. 

 여행하면서 여행지를 선택하는 일도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지만 그 보다 더 큰 고민은 10명 모두의 입맛에 꼭 들어맞는 끼닛거리를 찾는 일이었다. 특히 어른보다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들의 취향 따라 음식을 맞추다 보면 어쩌면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개성 강하고, 취향 뚜렷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기에 각자의 자녀들의 뜻을 존중하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오늘 아침은 뭘 먹지?’ 특히 제한된 기간 동안 제주도로 여행을 온 이상 조금 더 맛있고, 조금 더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은 애나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대충 먹어도 그만일 순 있지만 이동 수단의 한계, 기후의 악조건 등으로 인해 여행지조차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음식만큼은 제대로 먹고 싶었다. 

 느지막이 고민 끝에 결정한 아침 메뉴는 ‘회국수’였다. 어른은 회국수나 물회를 먹고, 아이들은 고등어구이를 먹으며 양쪽 모두 만족하는 식사 한 끼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결정한 선택이었다. 식당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그저 이동하기 편하고, 모두의 입맛에 맞는 다면 그걸로 만족했다. 그래서 우리는 숙소 앞, ‘해녀촌’(제주 제주시 구좌읍 동복로 33)에 갔다. 정오를 넘기지 않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에서는 ‘폭염주의보’ 혹은 ‘폭염경보’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이런 날씨에 제주의 자연을 벗 삼아 여행을 다닌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는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식당으로 들어섰다. 나와 셋째가 먼저 도착했고, 친구들과 아이들은 뒤늦게 따라오고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식당 안은 이미 만석인 데다가 대기 줄까지 서 있는 상황이었다. '더워서 한시라도 빨리 실내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실외 대기라니...' 순간 좌절하며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어렵사리 결정한 식당인데 여기서 물러설 순(?) 없었다. 그냥 온 식당이 때마침 맛집이라 당황하기도 했지만 잠시 지켜보니 회전 속도가 나쁘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앉을 수 있을 것 같아 서둘러 셋째를 둘러업고 대기 줄 행렬에 합류했다. 다행히 친구들이 도착하기 전에 자리가 났고, 식사에 열중하는 많은 손님들 사이에서 두 팀이 떨어진 채로 겨우 앉을 수 있었다. '떨어지면 어떠하랴. 대기 줄에 서 있는 것보다 훨씬 나은데.' 내가 있던 테이블에는 우리 가족만 앉았다. 일단 회국수와 고등어구이를 시켰고, 혼자 먹을 수 없는 양의 회국수는 나오는 대로 친구들에게 전달할 생각이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분주함과 더불어 배고픔에 잠시 정신이 어지러웠지만 음식을 어느 정도 먹어갈 때쯤 비로소 가게의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회국수가 맛있는 맛집이기도 했지만, 이곳은 ‘런던 베이글 뮤지엄’, ‘카페 레이어드’처럼 오션뷰 맛집이었다. 모두 창가에 앉아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면 좋겠지만 가장 바쁠 점심시간에 와서 겨우 들어와 창가에서 식사를 하는 호사는 누릴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아닌 두 팀의 친구들은 운이 좋게도 창가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어 귀한 사진 몇 장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물론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내가 아닌 두 명의 친구와 아이들만 찍어주었다.) 우리는 즐겁고 맛있게 배를 채운 뒤, 다시 숙소로 이동하였다. 식사를 끝마친 뒤에도, 숙소에 도착해서도 우리는 여전히 다음 여행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깊은 고민 중이었고, 사상 초유의 더위 탓에 모두가 한데 움직일 수 없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 우리 이제 어떻게 하지?

     

‘해녀촌’은 올 초, 유튜브 채널 '성시경 SUNG SI KYUNG'에서 맛집으로 소개된 바 있다. 친구들과 문자로 이야기를 나누며 잊고 있었던 작년 여름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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