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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Mar 29. 2024

Day 6_2

제주 한 달 살기_2023. 08. 02.

함덕 해수욕장


 우리는 사상 초유의 더위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도저히 나갈 수 없는 상황임을 인지하고 해 질 무렵 다시 숙소 밖을 나서기로 했다. 어디라도 좋으니 뜨거운 태양만 피할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아침 겸 점심을 먹었으니 이른 저녁을 먹을 요량으로 근처 맛집을 검색했다. 역시나 모두가 만족할 만한 맛집을 찾아야 했고, 우리는 함덕 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부대찌개 집을 선택했다.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초등학생 아이들의 입맛에 맞춰 결정되었다. 더 어린아이들은 밑반찬을 기대하며 부대찌개 식당(수제햄 고래부대찌개 제주 함덕점)을 향해 출발하였다. 

 같은 해수욕장이지만 함덕 해수욕장과 김녕 해수욕장은 분위기가 판이하다. 함덕 해수욕장은 부산의 해운대처럼 해수욕장 앞에 상가가 즐비하였고, 그만큼 사람도 많았다. 반면 김녕 해수욕장은 프라이빗한 해변 같달까. 오직 해수욕을 즐기기 위해 온 사람들뿐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생긴다는 스타벅스(제주 제주시 조천읍 조함해안로 522)가 함덕 해수욕장 입구 앞에 있으니 그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선호하는 해수욕장을 택한다면 취향 차이일 것 같다. 취향이라는 것이 고정적이지만은 않으니 때로는 김녕 해수욕장의 한적함이 끌린다면 반대로 함덕 해수욕장의 활기가 끌릴 수 있을 것 같다. 본디 여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지만 어쩐지 오늘만큼은 청춘의 싱그러움을 닮은 함덕 해수욕장이 더 끌렸다. 만약 아주 더웠던 한낮에 물놀이를 위해 찾아왔다면 함덕 해수욕장의 진짜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더위와 싸우며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고, 게다가 사람까지 북적였다면 말이다. 해 질 녘 마주한 함덕 해수욕장은 마치 미술관 속 명작 같았다. 거기에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있으니 행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초등학생 아이들을 충분히 만족시킨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함덕 해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해가 진 후였기에 걷기에 딱 알맞은 온도였고, 숙소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했기에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해변과 해변 사이로 벼룩시장 같은 몇 개의 가판대가 서 있었고, 왼쪽 해변에서는 스탠드 마이크와 작은 스피커, 카메라 등을 세워놓고 버스킹 공연을 하는 가수가 있었다. 작고 은은한 조명과 푹신한 모래를 무대 삼아 공연을 한동안 가만히 서서 바라보니 이곳은 과연 천상의 낙원과 다름없었다. 



 황홀한 시간에 재를 뿌리는 반전의 상황을 맞닥뜨렸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셋째의 식사를 챙기지 못한 사실이다. 셋째는 뇌병변 장애로 인해 식이문제가 동반된 상태였고, 만 4세를 앞둔 시점에서도 여전히 젖병 수유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그만 젖병과 우유를 챙기지 못한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친구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나온 귀한 시간이었고, 차마 내 부주의 때문에 지금 당장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대로 들어가긴 너무 아쉬웠기에 우리는 산책을 끝마치고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셋째가 배고픔으로 힘들어할까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을 안고 들어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음료를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울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는 유아차에 오래 있어서 불편하다는 핑계로 둘러댔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여전 셋째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으로 가득했다. 물론 3시간이라는 수유 텀이 있었고, 수유 텀을 넘긴 상황은 아니었기에 온전히 배고픔으로 인한 울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울음의 이유가 더위였을 수도 있고, 저녁 시간이었기에 밤잠이 그 이유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달래보고자 넓지 않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유아차를 밀며 달랬다. 그런 와중에 아이들과 친구들은 막바지를 향해 가는 제주에서의 행복한 이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분명 배려의 여행을 다짐했지만 그 순간, 내 마음은 너무나도 복잡했다. 

친구들에게 솔직히 말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달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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