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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Mar 01. 2024

Day 2_2

2023. 07. 29.


제주의 여름 날씨는 예상보다 훨씬 더웠다. 그늘 한 점 없는 해수욕장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러 있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바닷속에서 더운 몸을 식힌다 하더라도 2시간을 넘지는 못할 터. 결국 우리는 점심을 핑계 삼아 해수욕장을 벗어났다. 더불어 나의 고민은 깊어졌다. 제주가 바다요, 바다가 곧 제주인 이곳에서 한 달을 머물며 해수욕장 물놀이를 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아쉬울 것이다. 평상을 빌려 노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매일 가지만 않는다면. 금액적인 부담을 무시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제주도에 온다면 매일 오전에는 해수욕장에 가서 놀아야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단 한 번의 경험으로 그 꿈은 우리 가족에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될 거라는 직감이 들었고, 이 상황을 아이들에게 곧바로 말하지 못했다. 여행은 언제나 변수라는 것이 존재할 테니까. 그렇게 복잡하고 아쉬운 마음을 안고 제주 한 달 살기의 첫 여행을 마쳤다. 

 옷을 갈아입고 온몸에 잔뜩 묻은 모래를 씻어내기 위해 곧장 집으로 향했다. 물놀이로 제법 허기졌음에도 피곤함을 이기지 못한 우리는 점심 대신 휴식을 택했다. 남편은 너무 늦지 않게 가까운 카페에 가서 간단한 음료와 디저트로 허기를 채우자고 했고, 언제나 검색 엔진을 자처하는 남편 덕분에 숙소와 가까운 곳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남편이 검색한 인근의 카페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제주 제주시 구좌읍 동복로 85 제2동 1층). 평소 베이글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지금 당장 허기를 채우기엔 빵만 한 게 없으니 일단 가보기로 했다. 유아차가 있기 때문에 먼저 이동 편의성을 확인했다. 남편은 직접 카페에 연락을 했고, 이미 마감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벌써 끝났다고? 심지어 문 닫는 시간이 오후 6시네? 평도 좋던데... 아쉽지만 거긴 나중에 가고 이른 저녁을 먹을까?” 검색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우리가 머물던 동네의 카페나 식당은 대체로 이른 시간에 영업을 마쳤고, ‘제주 시골 가게는 다 이런 건가.’ 싶었다. 밤의 문화가 익숙한 도시인으로서 적잖이 당황했지만 동네의 문화라 생각하며 더 부지런히 움직이기로 했다. 우리가 두 번째 저녁으로 선택한 인근 맛집은 ‘동복분식’. 분식이라는 이름과 달리 1인셰프가 하는 양식당이었다. 평도 좋고 역시나 숙소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온 가족이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어쩌나. 며칠 전에 영업을 마무리하셨단다. ‘배 채우기가 이렇게 힘든 일인가.’ 우리는 서둘러 다른 식당을 알아보았다. 다음 식당은 ‘동복 뚝배기’(제주 제주시 구좌읍 동복로 30-2 1층) 해물 뚝배기와 갈치구이, 물회 등을 파는 곳이었다. 떡갈비도 판다니 아이들도 함께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부지런히 발을 돌렸다. 식당은 제법 널찍했고, 이른 시간에 방문했으나 저녁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는 유아차가 손님과 직원의 이동에 불편을 주지 않게 최대한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전복 해물 뚝배기, 한치 물회, 떡갈비 이렇게 세 개의 메뉴를 주문하고 식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기다리며 자연스레 식사하는 손님들을 보게 되었다. 우리 앞에 있던 두 팀의 손님들이 때마침 엄마와 아이들로 이루어진 모임이었다. 가장 가까운 테이블 손님은 엄마 네 명에 아이가 여섯 명이었고, 그 앞으로는 엄마 둘, 아이 네 명이 있었다. 아빠 없이 엄마들만 아이들과 제주도 여행을 온 상황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났다. 지금은 남편과 함께지만 우리도 곧 엄마와 아이만 함께 하는 여행객이 될 테니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가족이 방학을 맞이하여 아이들과의 추억을 위해 아빠 없이 여행을 나선다. 상황이 된다면 온 가족이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을 테지만 그럴 수 없다면 엄마라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독박 육아'보다 더 어려울 수 있는 '독박 여행 육아'를 자처하는 젊은 엄마들을 직접 보면서 동질감도 느끼고, 앞으로의 남은 여행도 너무 힘들지 않길, 즐겁고 행복하길 온 마음으로 바랐다. 설렘보다 걱정이 많았던 여행 둘째 날. '혼자서도 잘할 수 있겠지?' 남편과 함께하는 마지막 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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