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8. 15._제주 한 달 살기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마치 새 날, 새 몸, 새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셋째가 퇴원을 하고 다시 시작하는 제주에서의 여행 첫날이기 때문이다. 오늘, 친정엄마(이하 엄마)와 막내 외삼촌 내외분이 제주 숙소를 방문하신다. 온 가족이 점심 식사 전에 도착할 예정이라 퇴원으로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오전 내 충분히 이완시킬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 기도와 일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일기에는 다시 시작되는 제주에서의 일정과 더불어 과거를 복기하는 글들이 쓰여 있었다. 셋째가 경기를 했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제주에서의 여행을 스스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글들로 가득했다. 제주 한 달 살기는 5년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다. 물론 중간에 셋째가 태어나는 바람에 예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셋째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제주 한 달 살기를 강행했다. 이런 나의 의지와 도전의식을 남편도 알았기에 만류하지 않고 묵묵히 지지해 주었다. 더불어 엄마의 방문에 대한 걱정 또한 한가득 적혀 있었다. 셋째의 몸 상태는 차치하더라도 숙소의 상태를 보고 한 소리 하실 게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남편과 엄마 둘 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랑의 무게와 방식에 대해 부정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여행이 시작하기도 전에 나보다 더 걱정하고, 심지어 반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걱정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사랑이 딸인 나에게 진심으로 가닿는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결론은 늘 ‘아니다’로 종결된다. 나는 걱정만 가득한 사랑을 받고 싶지 않다. 걱정은 되지만, 그럼에도 딸의 도전을 응원하고 지지했으면 하는 바람. 그게 내가 엄마에게 바라는 사랑이었다. 통제만 가득한 사랑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충분했다. 과연 엄마는 내 예상대로 당신의 불안과 걱정을 한껏 쏟아놓으실 것인지. 걱정 반, 설렘 반으로 가족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오후 12시가 채 못된 시각, 가족들이 무사히 도착했다. 걱정이 한가득이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이 참으로 반가웠다. 큰 아이들도 무척 반가워하였다. 외할머니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첫째이기에 외할머니 방문은 그 어느 때보다 생기를 북돋기에 충분했다. 조카 손자, 손녀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막내 외삼촌 내외분의 방문은 더 특별히 감사했다. 덕분에 아이 셋과 함께 조금은 여유로운 여행이 될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끼리의 여행도 좋지만 분명 함께하는 기쁨을 여행 초반에 느꼈기에 나름대로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온 가족이 충분히 반가운 마음을 나누고, 짐을 풀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부터 나서서 출발했을 어른들은 허기 때문인지 곧바로 가까운 곳의 맛집을 물으셨다. 사실 여행 2주 동안 특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은 기억이 많지 않았기에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교래 곶자왈 근처의 보말 칼국수를 추천해 드렸다.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기에 모두 반기셨고, 점심으로 먹기에 가볍게 좋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조금 거리가 있기에 배고픔을 무릅쓰고 가실지 묻는 질문에도 흔쾌히 괜찮다고 대답해 주셨다. 그게 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냐면서. 하지만 엄마는 점심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숙소를 매의 눈으로 샅샅이 둘러보더니 잔소리를 시작하셨다. ‘어린아이들도 있는데 화장실이 따로 있는 숙소를 구하면 어쩌냐.’부터 시작해서 ‘왜 이렇게 집이 덥냐.’ 등 끝이 없는 걱정과 불만들로 반가움을 순식간에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인 것을, 여전히 엄마의 잔소리에 내 귀는 무딜 줄 몰랐다. 이미 스스로 충분히 우려하고 속상해하고 있던 문제다. 이미 벌어진 일이기에 주어진 상황에서 만족해야만 했고, 이 또한 경험이라 여기며 큰 아이들을 매 순간 다독이던 참이었다. 하지만 엄마 말들에 결국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둘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외숙모는 결국 위험(?)을 감지하고 점심을 먹으러 가자며 서두르셨다.
아, 엄마와 함께하는 3박 4일 동안 나의 정신은 무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