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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녀ㅣ이혜진OT Jan 16. 2019

이런, 마른하늘의 날벼락

마른하늘의 날벼락, 청천벽력

   마른하늘의 날벼락이 일어날 일이 얼마나 있을까? 인터넷 신문 기사 제목들에서 청천벽력은 자주 찾을 수 있는 단어이다.
靑푸를 청     天하늘 천      霹벼락 벽        靂벼락 력(역)

맑게 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벼락이라는 뜻으로,
①필세(筆勢)의 세참을 이르는 말  
②돌발적(突發的)인 사태(事態)나 사변(事變)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청천벽력과 같은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나에게도 35년을 살면서 이러한 청천벽력과 같은 일은 많이 일어났지만, 그중에서도 아빠의 뇌졸중 소식이 그러했다. 우리는 매스컴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나보다 딱한 존재의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보탬이 되고자 전화기를 들어 도움의 손길을 보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와는 거리가 있는 제3의 인물이기에, 나는 안타까워할 줄 아는 공감능력만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것으로 정의 내리며 살았다.


  그러나, 안타깝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일이 즉, 본인이나 가족과 친지들에게 일어났을 때는 공감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자, 그럼 공감능력이 아니라 무엇이 필요할까? 이 상황에서는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하다.


삶의 열쇠고리: 문제 해결 능력
 문제 해결 능력은 문제 해결을 위해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고 유용한 의견과 타당한 의견을 제시하는 사고력과, 문제 발생 시 사실과 대안을 확인하고 원인을 분석하며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여 처리하는 문제 처리 능력으로 나눌 수 있다.




  얼마 전 친한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한 친구는 남편과 제주도로 첫 여행을 가던 일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풀었다. 보통, 결혼을 한 30대의 여자들 모임에서 나의 남자, 남의 남자 이야기는 빠질 수 없는 이야깃거리다. 그만큼 여자들도 이해하기 힘든 나의 남자를 공유하며 내 편에게 힘을 받는다.


  그 이야기는 남편들의 화에 대해서였다. 한 친구가 남편과 아이와 함께 갑자기 주말여행을 제주도로 가게 되어 급하게 티켓을 끊고 새벽 김포공항으로 가는 중 주민등록증을 가져오지 않아 여행이 취소가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이 화를 내었니? 말았니? 궁금해하는 상황에서 제주도로 첫 여행을 간 친구가 연애 중 있었던 일을 말한 것이다.(친구의 말이 끝나게 무섭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여자들의 보통 모임의 패턴이다.)


여행의 설렘, 비행기


  남자 친구와 첫 여행을 가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한껏 꾸며 공항에서 만났을 것이다. 그런데, 티켓팅을 하면서 친구는 주민등록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단다. 티켓팅 데스크 옆에서 친구와 남자 친구는 30분가량 실랑이를 부리며 싸웠단다. 그때, 직원이 보다 못해 공항에 배치되어있는 무인발급기에서 주민등록등본을 출력하여 공항 경찰에게 도장을 받아오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어 다행히 제주도를 갈 수 있었다.


티격태격


  나는 그 이야기를 다 듣고, 공항 직원을 먼저 지적했다. 30분 동안 한 커플이 싸울 동안 방법이 있는데도 알려주지 않고 뭐했을까?


  만약 내가 그 친구였다면, 그 30분 동안 무엇을 했을까 생각하니, 다음 티켓이 있다면, 주민등록증을 가지러 집에 갔다 왔을까? 아니면, 직원을 귀찮게 하며 비행기를 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달라 했을까? 아님, 우선 화간 난 남자 친구를 달래기 위해 먼저 제주도로 보내고 나는 뒤에 따라갔을까? 문제 해결 능력은 별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언제든지 사용되는 능력이다. 나는 이러한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




  그해 겨울, (아빠가 쓰러지신 날)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나는 현재 나의 상황에 대해서 모든 것을 생각했다. 나에게 의논할 수 있는 기댈 수 있는 누군가라도 있었다면, 그 사람에게 전화를 했을까? 나는 외동딸이었기에, 누구에게도 의논할 곳이 없었다. 내가 의지하고 의논할 곳은 한글도 모르는 딸만 의지하는 엄마였다.


  가족들과 친지들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게 되었을 때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몇 가지 내용을 기록하고자 한다.


첫째, 우선 의사와 간호사를 믿어야 한다.

  나는 의학적인 지식이 없는 환자의 보호자이다. 의사와 간호사를 전적으로 믿고 따라야 한다. 의사와 환자의 신뢰감은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되며, 환자 보호자의 신뢰감은 더욱 크게 작용한다. 엄마는 아빠가 쓰러지자마자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119에 전화를 했는지 물어보았다. 119가 아닌 나에게 먼저 전화를 한 엄마에게 사람이 쓰러졌다고 119에 전화부터 해라며 화를 냈다. 의정부에 있는 딸이 밤 10시에 내려갈 수도 없는데 어째서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 이후 엄마에게는 응급실에서 의사, 간호사 선생님이 시키는 데로 하며, 믿고 기다리라고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다였다.


  나는 바로 내려가지 못했다. 아빠가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가보지도 못했다. 그 주에 일을 정리하고 내려갈 예정이니, 내려가고 싶어도 꾹 참아야만 했다. 의정부와 부산이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차편도 많지 않았으니 말이다.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진단명을 들어도 사실 의학적 지식이 없는 보호자들은 나의 가족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다. 필요하다면, 병원 관계 지인분들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제일이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지만, 근거 있는 정보가 아닐 수도 있으며 잘못된 정보로 인해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 근거가 확인되는 정보만 믿는 것이 우선이다.


둘째, 중환자실에서 기다리는 환자를 생각하며 참는다. 

  보통 수술을 하든 안 하든 의식이 없는 뇌졸중 환자들은 의식이 돌아오고 안정될 때까지 중환자실에 있게 된다.  중환자실 면회시간은 알다시피 정해져 있으니, 시간 맞춰 환자를 만나고 응원해야 한다. 아닌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치료한 환자들의 대부분도 그러했으며, 아빠도 중환자실에서 사람들의 목소리와 엄마가 다녀갔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빠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나서, 일반병실로 옮기게 되었다. 환자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는 보호자는 필요하지 않다.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간호사가 면회시간에 요구하게 된다. 친절히 종이에 적어 병원 매점에 가서 구입하여 중환자실로 넣어달라고 한다. 돈 만 있으면 되고, 카드도 가능하니 구입하여 중환자실에게 전달하면 된다.


  보통 중환자실에서 요구하는 물품은 환자마다 달라지지만 여러 가지 의료용 도구, 물 없이 씻길 수 있는 거품 비누, 물티슈, 까는 기저귀, 겉 기저귀, 속 기저귀, 음식 섭취가 가능한 경우 피딩백 등이다.

  

셋째, 개인 건강보험 확인과 진단명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돈보다 건강이라고 하지만, 이미 건강은 물 건너갔다. 그럼, 물 건너 간 건강 다시 찾으려면 제일 필요한 것은 돈이다. 마음이라도 편히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면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병원비 내역서에 비급여 항목에서 불어난 병원비를 보면 숨이 막힐 것이다. 그 숨 막히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게 바로 개인 보험이다.


  나의 아빠는 그 흔한 보험도 없었다. 아니 어떻게 그런 보험이 없을 수 있냐 말이다. 나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었기에, 그런 보험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었다.


  요즘은 실손보험, 건강보험, 수술 보험 여러 종류의 보험을 설계하며 살아간다. 환자가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환자의 진단명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보험에 대해 빠짐없이 확인하여야 한다.    


넷째,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고 나면, 24시간 간호가 필요하다.

  가족이 필요한 경우는 이제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졌을 때이다. 이 말은 즉, 앞으로 24시간 동안 간병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 간병인은 가족 누구나가 될 수 있고, 제3의 사설업체의 간병사가 될 수도 있다. 급성기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24시간을 간호하는 간병인이다. 가족들이 일을 빠질 수 없는 상황이고 그렇다면, 사설 간병인을 쓰게 된다. 24시간 간병을 하는 간병사의 비용은 차이가 있지만, 10년 전 보통 1일 8만 원이었다. 지금은 최저시급 인상으로 더 많이 올랐을 것이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혀 환자의 도움이 없고 석션 까지 해야 하는 중증환자는 간병비가 더 오른다. 간병인을 고용한다면, 한 달에 순수 간병비만 적게 나가면 250만 원 지출하게 된다. 그 외에 물티슈, 기저귀 등의 소모품도 생각하면 300은 예상해야 한다. 그 당시 나의 작업치료사 세전 월급은 140 정도였으니, 간병인을 고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와 엄마는 간병인을 고용할 돈은 없었다. 외동딸인 나는 돈을 벌어야 했기에, 아빠를 간호해야 하는 사람은 엄마이다. 엄마는 일을 그만두시고, 그때부터 간병을 시작하셨다. 간병을 하면서 집으로 도망도 가시고 하셨지만, 묵묵히 잘 이겨내셨다.


  중증환자의 간병이라는 것이, 그냥 얼굴을 닦이고, 기저귀를 갈고 하는 것만이 아니다. 24시간 동안 환자 옆에서 이상 부분을 확인하여야 하며, 체위변경과 간호사들에게 소변 양과 대변 양을 적어 알려주어야 한다. 기저귀를 사용하면 기저귀 무게를 재어 확인도 해야 한다. 아빠는 좋아하셨던 담배의 도움 때문인지 그렇게 가래가 끊이지 않았다. 석션도 보호자가 직접 해야 한다. 간호사 선생님이 해주시지만, 가래가 많을 때마다 바쁜 업무 때문인지 바로 와서 해줄 수 없다. 기다리다 못해, 환자의 보호자가 하게 된다.


  본인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는 배변 및 배뇨기능과 체위변경이 제일 중요한 활동이다.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몸은 어느새 침대 아래로 내려와 무릎이 구부려져 있으며, 환자복은 있는 데로 배를 보이며 올라가 있다.

   

  나는 일을 그만두고 내려간 주말에 아빠를 볼 수 있었다. 늦게 와서 너무 미안한 나머지 눈물만 났다. 엄마에게는 쉬는 시간을 주고 주말에는 내가 아빠의 간병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빠의 기저귀를 처음 갈아보며, 아빠 옆에서 작은 인기척에도 깨어나 아빠를 살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른 자식보다 좀 더 일찍 아빠를 보살피게 된 나는 청천벽력 같은 이 상황에서 기약 없는 간병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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