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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녀ㅣ이혜진OT Jan 14. 2019

가장 무서운 병

아빠는 가장 무서운 병 뇌졸중(CVA)과 친구가 되었다.  

  요즘은 손가락 몇 번의 터치로 뇌졸중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른들이 흔히 뇌졸중을 중풍(Stroke)라고 말한다. 하지만, 뇌졸중과 중풍은 다르다.

  뇌졸중은 영어로

 Cerebrovascular accident: CVA

  약어로는 CVA이다. 병원에서 치료사들은 흔히 뇌졸중 환자들을 CVA라고 말한다. 어른들이 말하는 중풍이라는 용어는 한방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던 말이다. 뇌졸중은 아니지만 뇌졸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안면신경 마비, 파킨슨, 간질 등의 질환이 서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을 때 모두 포함하여 중풍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니 중풍이란 용어는 모호한 말이다.  


  뇌졸중은 우리나라에서 단일 질환으로 사망원인 1위이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흔히 말한다.


뇌졸중 걸리면, 확 죽으면 되지 그거 뭐라고....... 그래.

  맞다. 그거 뭐 죽으면 되지. 그거 뭐라고 맞는 말이다. 실제로 나의 아빠도 그랬으며, 나의 엄마는 본인이 뇌졸중 간병을 그렇게 했으면서도, 지금도 저렇게 말씀하신다. 쉽게 주변에서 뇌졸중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지만, 뇌졸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이란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뇌졸중은 쉽게 말해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몸의 혈관은 심장에서 나온 혈액이 온몸을 돌면서 뇌에도 가게 된다. 그러나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졌을 때는 뇌의 주변의 세포들이 죽게 된다.

 

  아직도 기억나는 환자가 있다. 건강에는 자신이 있는 할아버지셨는데, 쓰러진 후 한쪽 사지에 편마비가 왔다. 할아버지에게 뇌 세포들이 죽어서 할아버지의 손과 발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하니, 할아버지께서 "죽으면 의사가 살리면 되지, 왜 못 살려."라고 자신은 의사를 잘 못 만나 손과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매일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의사를 잘 못 만난 것이 아니다. 뇌세포는 다시 살아날 수없다. 살아나더라도 손상 전 상태로 완전히 회복할 수 없을뿐더러, 평생의 상처를 안고 살게 되고 새로운 세포가 그 기능을 대신 하기도 한다. 세포의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지만, 의학의 힘으로는 손상 전 상태로 돌아갈수 없고 더 나아질 수도 없다. 이것이 뇌졸중의 현실이다.


  70세의 뇌졸중으로 인해 편마비가 오신 할머니셨다. 할머니는 약간의 안면마비가 있으셨으며, 함께 삼키는 것에도 문제가 생겨 나에게 연하 치료를 받으셨다. 삼킴 장애 또는 연하장애란? 음식물을 삼키는 것과 연관된 뇌의 부위와 신체 구조물에 문제가 생겨 음식물을 구강으로 섭취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치료를 연하 치료라고 하며 현재 한국은 작업치료사만이 연하 치료를 할 수 있다. 안면마비로 발음이 다소 부정확했던 할머니께서는 늘 하던 말씀이 있었는데 이 말씀만은 정확하게 말씀하셨다.

옛날에 문둥이랑 풍 환자가 있었는데,
풍 환자가 문둥이한테 지금 앓고 있는 병을 바꾸자고 했단다.

그런데, 뭐라 했는 줄 아나?
문둥이가 내가 미쳤다고 바꾸냐고,
미친 소리 하지 말라며 싸웠단다.
근데, 내가 그 풍이 온 거 아니가.
진짜 이게 이리 더러운 병인 거라.
내 맘대로 먹지도 못해, 걷지도 못해, 말도 못 해
이제 다 살았다. 근데 한쪽이 병신이라 내 맘대로 죽지도 못한다.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센병 환자들에게는 다소 죄송한 표현이지만, 할머니께서는 그렇게 자신의 병을 나병이라 불리는 한센병보다 더 더러운 병이라면서 억울함을 호소하셨다.

  사람들에게 많은 병중에서도 무서운 병을 꼽으라면, 아마도 본인이 겪는 병이 제일 무서운 병일 것이다. 그러나 나도 그 수많은 병중에서도 뇌졸중이 가장 무서운 병이라고 말하고 싶다. 암도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라고도 하여 요즘 암보험부터 시작해 보면 뇌졸중보다 더 많은 진단비가 나오는 보험이 수두룩하다. 쉬운 예로 말기암 환자와 중증 뇌졸중 환자 두 명이 있다고 보면 암은 본인의 병과 몸에 대해 치료의 선택권이 있다. 한 마디로 생을 정리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뇌졸중은 정리, 치료의 선택권, 경한 뇌졸중이라면 가능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중증 뇌졸중 환자에게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불가능하다.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된다면 가족들과의 정리 작별할 시간도 없다. 위에 말처럼 죽으면 되지, 죽을 수도 없다.  


  치료사로서가 아닌 긴 간병생활을 한 나에게 뇌졸중은 툭 까놓고 중증 뇌졸중이 될 거라면 그냥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뇌졸중은 그만큼 무섭고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병이며 가족들의 삶까지 망가지게 하는 병이다. 다행히도 나는 작업치료사이다. 작업치료사는 신경계 환자들을 치료하게 되는데, 그중 뇌졸중 환자를 만나는 비율은 70% 정도이다. 그러니깐 작업치료사는 뇌졸중 환자들의 재활을 돕는 치료사로서 학부 때부터 많은 치료, 케어, 운동 방법에 대해 학습해 온다. 뇌졸중 환자들에게 재활치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와,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치료라는 것을 작업치료사인 나는 잘 안다. 그래서 나의 아빠도 딸이 작업치료사라서 그 중요하고 기약 없는 재활치료를 꾸준히 받으셨다. 아쉽지만, 꾸준한 재활치료도 급성기 때에만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다. 예외도 있지만, 이러한 재활치료는 뇌졸중의 완치를 위한 것이 아닌 지금보다 나은 삶과 기능유지를 위한 것이다.

  아빠의 삶은 가장 무서운 병 뇌졸중과 친구가 되면서 모든 것이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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