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난민시대
2020년 예고된 3대 인구리스크와 함께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층 진입은 인구구조를 급격히 변화시키면서 사회변화까지 야기하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는 전 세계적 문제로 대두될 것으로 예측되어 왔고, 한국사회는 이미 이를 맞닥뜨리고 있다. 3대 인구리스크 예고는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그리고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말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층 진입에 따라 ‘욜드(YOLD)’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등 현대사회 노년기는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만큼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 비율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층으로 진입하고, 의학발달과 시대변화로 인해 50~60대가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에 따라 전통적 의미의 노인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신(新)노년’, ‘액티브시니어(active senior)’라고 불리는 계층을 위한 새로운 노인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신노년층과 베이비붐 세대는 기존 노년층과는 달리 경제력과 소비활동, 사회활동 참여에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뉴시니어’, ‘액티브시니어’라고 불리기도 한다. 기존 취약 노인계층과는 질적으로 다른 생활형태와 특징을 보이며 서비스 욕구 또한 고급화되는 추세이나, 현재 한국사회의 노인복지 인프라와 서비스만으로는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들에 대한 연구와 정책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신노년의 주요한 특징은 자신의 노후준비에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 나이보다 젊다고 인식한다는 점이다. 2021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신노년은 높은 학력 수준을 바탕으로 가처분소득, 소비지출, 총자산액이 높게 나타났다. 소비시장 규모도 10년 전보다 3배 이상 확대됐으며,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들의 90.6%가 생애 말기 ‘좋은 죽음’은 ‘가족과 지인에게 부담 주지 않는 죽음’이라 생각한다는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 추세에 맞는 노년기를 보내기 위해서는 건강이라는 필수조건이 따른다. 무엇보다 건강이 담보되어야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 나이가 듦에 따라 우리 신체는 자연스레 노화하고, 누구나 임종을 맞이하게 된다. 필자는 ‘죽음의 자리’를 ‘선택’할 수 있어야만 삶을 의미 있게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32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임종을 맞이하였는데, 그 장소는 병상이었다. 우리는 내가 죽어야 할 곳과 임종할 곳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병원은 병을 치료하는 곳일 뿐, 죽음을 맞이하기에 적절한 장소는 아니다. 병원에서도, 시설에서도 죽지 못하는 ‘임종난민시대’가 올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실제로 일본은 이미 그 상황을 맞고 있다.
고령화율 세계 최고인 초고령 국가 일본은 ‘다사 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2030년이 되면 연 47만 명이 ‘죽을 장소’를 찾지 못하는 ‘임종난민’이 될 수 있다고 후생노동성은 경고했다. 연간 전체 사망자가 160~170만 명이 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의료와 간병시스템을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2022년 연간 사망자 130여 만 명 중 76%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임종난민시대를 대비하여 ‘익숙한 지역에서 최후까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재택형 의료병상, 홈 호스피스 등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다. 죽음은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삶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으로, 죽음관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정든 집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사회적 실험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임종난민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한국은 일본에 비해 그 출발은 늦었지만, 고령화 속도는 더욱 빠르다. 2025년 초고령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 한국은 임종난민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더욱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대가족 제도가 주를 이뤘던 과거 한국은, 집안에서 노인이 앓아누우면 가족이 간병을 하고, 사망하게 되면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현대사회에서는 임종을 앞둔 사람을 환자라는 이름으로 병원에 가둔 채, 일상을 가로막고 세상과 단절시킨다. 병원에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망 과정에 들어간 사람도 치료의 대상으로 삼는다. 입으로 음식을 씹어서 삼키지 못하면, 위에 구멍을 뚫거나 콧줄을 통해 음식과 영양분을 공급한다. 필자의 아버지도 위에 구멍을 뚫은 위루관 시술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았다. 숨을 못 쉴 경우엔 목에 구멍을 뚫어 산소를 공급하고, 수십 개의 의료 기구를 줄로 연결하는 등 당장 내일 죽을 사람을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몇 달이고 살려 두는 일이 다반사이다.
지혜로운 노년기를 보내기 위해서는 독립적이고 생산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독립적이고 생산적인 노년기란,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을 선택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다. 생산적인 노인이 생산적인 노년의 삶을 누릴 수 있다. 필자 스스로가 그리는 노년기는 독립적이고 생산적인 노인이 되는 것이다. 나를 주체로 움직이는, 나의 삶을 그려가길 원한다. 여기에는 죽음도 포함한다. 내가 죽을 수 있는 공간과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독립적이어야만 한다.
최근 노인들의 보호자와 상담 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상내용은 바로 ‘누가 돌보는가’에 대한 것이다. 가족이 돌보는 가족간병과 의료진의 손을 빌려 돌봄서비스를 받는 보호자들까지, 노년기 돌봄에 관한 많은 고민과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히게 된다. 부모님을 요양병원 또는 요양원에 모시게 된 보호자들은 의료진들을 의심하거나, 병원시스템과 간병시스템에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적으로 직접 가족간병을 할 수는 없으나, 시설의 의료진과 간병인을 전적으로 믿을 수도 없다. 늘 불안과 불만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보호자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상담하게 된다. 반대로 스스로의 삶을 희생하고 가족간병을 선택하는 보호자들도 많다. 이런 보호자들에게는 가족을 돌보면서도 자신의 삶도 챙기라는 조언을 함께 한다. 필자는 와상 환자였던 아버지를 어머니와 함께 가족간병으로 8년간 모신 바 있다. 그동안 터득한 경험과 지식을 보호자들과 나누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보호자들의 힘들고 답답한 현실에 늘 안타까운 마음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노년기 돌봄을 위한 요양병원, 요양원, 실버타운 등의 기관이 생기고 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어떤 시설의 그럴싸한 홍보지는, ‘시설에 입소를 하면 환상적인 노년기의 삶을 보낼 수 있을 것’이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지역사회의 커뮤니티 케어 등 많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으나, 대다수 노인들의 마지막은 시설로 향하고 있다. 시설에서 보내는 노년의 삶은 과연 행복할까? 죽음 앞에서도 독립적이고 생산적인 노년이 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뿐만 아니라, 노년기를 바라보는 사회적 관점의 변화도 함께 필요하다. 늙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와 노년의 돌봄에 대처하는 부모와 자식 세대 간의 소통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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