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고 질투가 생겼다.

by 정헴
20250716_1238_고양이의 질투_remix_01k08mw9dteya9q3qc57eea3v8.png





어릴 때 아빠가 뭐 갖고 싶냐고 물었을 때,



나는 평범한 가족이라고 말했다. 장난감도, 예쁜 옷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우리 가족은 남들과는 다르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주말에만 오는 아빠, 한마디 대화도 없이 하루를 버티는 엄마. 그러다 한 번은 이혼 얘기가 나왔다. 아빠는 나에게 이혼을 두루뭉술하게 설명해 줬다. 따로 사는 거구나, 정도로 이해는 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아빠를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집에 있던 책을 펼쳤다. 거기엔 ‘이혼하지 않고 잘 해결하는 법’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 페이지를 곱게 펴서 아빠 눈에 잘 띄게 두고 모른 척했다. 그만큼 정상적인 가정을 원했다.




이혼이 꼭 나쁜 건 아니다. 매일 전쟁 같은 가정보다, 차라리 깔끔하게 끝내고 평온하게 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혼까지 가기 전의 과정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상처로 남는다. 사정이 있으면 이혼할 수 있지, 그래 할 수 있지...라고 스스로 수없이 되뇌었다.

하지만 두 번이나 하는 걸, 그것도 내 눈앞에서 또 봐야 하나 싶었다. 처음 이혼할 때는 아빠를 이해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두 번째 이혼을 앞두고 아빠는 내게 의견을 물었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나 보다. 나는 싫다고 했다. 한 번이면 됐잖아. 나 평범한 가족으로 살아보고 싶다고, 그때도 말했잖아. 하지만 결국 전쟁 같은 싸움이 반복됐고, 두 번째 이혼도 현실이 됐다.




그래서 나는 남들도 다 비슷하겠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루하루 행복하기만 한 가정이 어디 있겠어. 겉으론 다 좋아 보여도 속은 다들 시끄럽겠지. 각자만의 괴로운 사정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친구들과 가정사를 깊이 나누진 않았지만, 누구나 이혼하고 싶은 마음쯤은 품고 살 거라 굳게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믿음이 나를 버티게 한 방어기제였던 것 같다.



지금의 남편이 남자친구였을 때, 결혼 준비를 하며 처음으로 그의 가족을 만났다. 나는 늘 비관적이고 극단적인데, 남편은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가족이 더 궁금했다. 처음 만난 날, 이 사람들은 정말 좋은 가족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첫 만남이니까 나쁜 모습은 보이지 않겠지. 하지만 그 이후로 왕래가 잦아지면서, 나는 처음 느끼는 감정을 마주했다.



아, 이런 세계도 있구나.



아버님은 어머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챙겼다. 자식보다 먼저 배우자를 생각하고, 항상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분이었다. 어머님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두 아들도 부모를 존중하고 서로를 아꼈다. 처음으로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가질 수 없다는 건 사람을 괴롭게 한다. 좋겠다는 마음은 금세 괴로움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괴로움은 절망이 되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의 가족 이야기를 하며 펑펑 울었다. 이런 신기한 집이 세상에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좋겠다는 마음에서 절망으로, 그리고 질투로 감정이 변했다. 이건 내가 노력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간절히 원했지만 끝내 가질 수 없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더 갖고 싶었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엔 그 갈망이 남아 있고, 남편이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는 사실이 나를 미치도록 질투 나게 했다.



남편의 밝음과 나를 감싸줄 수 있는 포용력은 그 환경에서 비롯된 거였다. 얘는 나처럼 비관적이지 않고 극단적이지 않은 이유가 이거였구나. 나도 저런 집에서 자랐다면 지금의 조울증은 없었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문제라 더 답답했고, 여전히 나만 괴로워하는 것 같아 속에서 심보가 뒤틀리고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남편의 가족은 정말 좋은 분들이고, 나의 정신건강을 걱정해 주시면서 살뜰히 챙겨주신다. 하지만 질투심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시부모님이라는 가족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래도 나는 바라보는 외부인의 입장이기 때문에.

그래서 원망하기로 했다. 내가 가진 조울증은 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갖지 못한, 질투하고 있는 가지고 싶던 평범한 가정 때문 일 것이라고. 덕분에 평범한 가족에 대한 원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결핍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처럼 느껴져 더 벗어나기 힘든 지금이다.


이전 01화난 몰랐는데 조울증이라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