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내 조울증을 의지 부족으로 여기는 아빠에게,
아직도 내 조울증을 의지 부족으로 여기는 아빠에게,
나는 기대하기를 포기했다.
“조울증이 왜 걸리는 거냐”
는 물음에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아빠에게는 ‘원인불명’이라고 답했다.
사실 다 아빠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마음속 작은 연민 하나가 그 말을 삼키게 했다.
첫 자살 사고로 응급실에 실려 갔던 날, 남편(당시 남자친구)은 법적 보호자인 아빠에게 연락했다. 아빠는 어떻게든 오긴 했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 응급실 의자에 코골며 누워 목베개를 베고 잤다. 그 모습을 본 나와 남편은 “어떻게 저렇게 잘 잘 수 있지?” 하고 놀랐다.
응급실에서 꼬박 밤을 새고 아침이 되자 아빠는 남편에게 밥을 먹자고 했다. 혼자 먹기 싫었던 모양이다. 남편을 핑계로 내려간 식당에서, 남편은 내 상태를 보고 한 술도 못 넘겼는데 아빠는 빈 그릇을 보이며 잘 먹었다고한다. 남편은 그 모습에도 놀랐다. 그때 나는 ‘그래, 차라리 밥 못 먹는 것보다 낫지’라며 아빠를 이해하려 애썼다.
응급실에서 처치를 다 받고 나오는길에 아빠는 가짜 울먹임을 하며 나를 안았다.
힘들면 언제든 아빠에게 말하라며 등을 토닥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주차는 어떻게 하니?"
우리 아빠 MBTI가 T일까? 응급실 3단 콤보였다.
그후 조울증 진단을 받고 처음 약을 받았을 때, 알약 봉투를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빠, 나 이런 병이래. 증상이 이랬고 저랬고...”
아빠는 심히 걱정하는 표정으로 “나도 그러는데?”라고 했다.
“그럼 아빠도 약 먹어.”
했더니, 아빠는 예전에 약을 먹었지만 의지로 끊었다며 나에게도 강한 의지를 가지라고 했다. 그때 잠시, 내 병이 정말 의지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을 때, 아빠는 남편에게 말했다.
“유전적인 문제는 아니다. 집안에 그런 병은 없다.”
뭐야. 앞뒤가 맞지 않았다.
아빠도 나처럼 그렇다더니, 이제 와서 선 긋기라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그날 이후, 아빠에 대한 기대는 나뭇잎이 떨어지듯 하나둘 사라졌다. 남은 건 원망과 불신, 그리고 증오였다. 아빠는 항상 아빠 위주였지. 단 한 번도 나를 먼저 생각하거나 걱정해 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빠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치만 나는 아빠를 놓지 못했다.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챙겨야 한다는 강박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아빠잖아’
라는 주변의 시선은 나를 더 못된 딸로 만들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빠에게 연민을 느낀다.
아빠가 말한 ‘의지’. 나는 아빠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게 됐다.
“너에겐 아빠가 있잖아. 언제든 기대.”
라는 아빠의 말. 아빠는 자신이 나를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내 주변 친구들보다 나를 모른다.
지금이라도 조울증 덕분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좋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