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메리킬즈피플>을 봤다.
드라마를 한 편도 놓치지 않고 다 본 것은 아니었지만,
안락사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안락사라는 주제에 강하게 이끌려 첫 장면을 본 순간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원래 드라마를 보며 감정이입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어차피 허구의 인물이고 그냥 재미있는 것을 본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발견했다.
'도르륵, 툭툭'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감정이 격해지며 '꺽꺽'거리는 소리로 변했다.
울면서도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 도대체 왜 우는 거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엉엉 울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엄청 슬프면서도 웃겼다.
'와, 나 울면서 웃기다고 생각하는구나. 드디어 제정신이 아니구나.'
스스로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드라마를 보는 두 눈은 떼어낼 수가 없었다.
안락사에 대한 내용을 보면서 '내가 만약 안락사를 한다면?'이라는 질문을 떠올려서일까.
안락사하는 등장인물들을 보며 나에게 감정을 이입하다 결국 눈물에 잠겨버린 것이다.
잠시 드라마를 보며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안락사가 정말 필요한 환자는 누구라고 해야 할까?
'안락사가 필요하다'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아무래도 의사일까?
근데 신체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과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
그 둘 중에 안락사에 더 적합한 사람은 누구일까?
드라마를 보는 둥 마는 둥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흔히 안락사는 육체적인 고통이 너무 심해 더 이상
삶을 지속하기 힘든 이들에게 허용되어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그럼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그냥 버텨야 하는 걸까?
내가 현재 조울증을 겪고 있기 때문에 나는 대상을 나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같이 조울증이 주는 고통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꾀병처럼 보일 수도 있고,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나약함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내 고통의 무게를 타인이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신체적 통증처럼 객관적인 척도를 나타낸다면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나는 내가 겪는 고통이 과연 안락사를 논할 만큼의 무게를 지니는지조차 스스로 판단 내릴 수가 없었다.
내가 감히 안락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도 되는 걸까.
그저 정신적인 고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안락사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
너무 이기적이거나 자기 연민에 빠진 것은 아닐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슬픔과 죄책감이 피어올라,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지겨워 버티기 힘든 순간들은 분명히 있다.
나의 체력을 담아낼 수 있는 박스가 있다면,
그 박스 안을 아무리 휘저어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같은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아무에게도 의지하고 싶지도, 기대고 싶지도 않은 그런 감정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 순간조차 나는 바람에 낡게 해진 천막처럼 너덜너덜해진 기분이 든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가슴을 조여 오는 고통이 느껴지는데,
이걸 객관적인 수치로 매긴다면 나는 안락사 자격 있는 사람이 될까?
드라마는 그 어떤 질문에도 확실한 해답을 주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뭐야? 갑자기 이렇게 끝이야?" 싶을 정도로 시원하게 답을 내리지 못한 드라마처럼
내 마음도 여전히 혼란스러워 또 눈물 한 방울을 찍 흘렸다.
혼란스럽게 마무리하는 주인공처럼,
나도 안락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과 누가 내 생각이 바뀌도록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충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내가 매일같이 싸우고 있나?
마치 끝이 정해지지 않은 드라마처럼 나도 아직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사실 결론이 지어진다고 하더라도 일상은 달라질 것이 없는 채 그대로 살아가겠지만,
나의 이 혼란스러움을 모두 겪은 뒤 해답을 찾았을 미래의 나를 위해 몇 자 기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