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일기: 내가 아이를 가져도 될까?

by 정헴




결혼하기 전.





나는 막연하게 딩크족을 생각했다.

내 몸과 시간이 소중해서 임신과 출산이 가져올 변화를 감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남편에게도 딩크로 살자고 제안했지만, 남편은 아직 단정 짓기에는 너무 이르다며

좀 더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런데 이 생각이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내가 분당서울대병원 정신병동에 입원했을 때.

핸드폰이나 전자기기와 단절되어 오롯이 생각이라는 걸 많이 하게 되는 곳.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나에게 해줬던 노력과 행동들을 보면서

고맙고 미안해서 매일 병동에서 울기도 했다.

그 힘든 시간 속에서 남편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졌던 것 같다.




무사히 퇴원하고 결혼 생활을 하던 중, 문득 남편과 나를 닮은 아이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 궁금증을 시작으로 남편을 닮은 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졌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애기가 한 명쯤은 있어도 좋을 거 같아!"



그런데 남편의 대답은 의외였다.

자기는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이 생각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했다.

내가 지금 약을 먹고 있는데 만약 아이가 생겨 약을 끊게 되면 내가 얼마나 힘들어할지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멀쩡한 사람도 산후 우울증이 생기는데 약을 끊으면 내가 더 힘들어할 것이라며, 자기는 내가 더 소중하기 때문에 아이 생각이 전혀 없어졌다며 정관수술을 진지하게 고민했었다고 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를 잃게 될까 봐 무섭다는 남편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어서 시부모님께서도 나 힘들게 하지 말고 둘이 알콩달콩 살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말씀이라도 너무 감사했다. 아이보다 나를 더 생각해 주신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아 아직은 아이를 생각하기 이른가?' 싶었다.




그 뒤로 일상적인 하루하루들을 보내고 있는데 결혼 생활을 하면 할수록

내 상황을 모르는 주변에서는 "아이 생각이 있냐", "낳을 거면 빨리 낳아라" 등의 이야기를 하더라.

그럴 때마다 아이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어쩌면 아이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외래 진료 때 교수님께 여쭤봤다.

"만약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약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교수님은 단칼에 말씀하셨다

지금 나의 약 안정이 우선이고 내 상태가 우선이니 아기 생각을 갖는 건

좀 이르다고 나를 더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조금 기분이 울적했다.

1년 조금 넘게 약을 먹었는데도 내 상태가 아직도 안정이 되지 않았다니.

그래서 아기 생각은 아직 나에게 사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나를 잃을까 무섭다고 했고, 나 역시 약을 끊게 된다면

내 상태가 어떻게 될지 가늠이 안되어서 두렵고 무섭긴 했다.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 조울증 카페에 나 같은 경우가 있는지 물어봤다.

댓글을 통해 알게 된 현실은 더욱 복잡했다.




약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가질 수는 있지만 아이가 감당해야 될 부작용 같은 건 사례가 없어 완전 복불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낳더라도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지한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안타깝고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선택은 나의 몫이라고 남겼지만 뉘앙스는 낳지 않는 것을 추천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지금 먹는 약들은 임산부 복용이 안 되는 약들이 대다수다.

결국 나는 아기를 포기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약을 줄여가면서 라도 도전해도 될까 싶기도 하다.





아직도 정해지지 않은 문제들이라서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해서 더 어려운 문제다.

나는 아이를 선택하지만 아이는 부모를 선택하지 못한다는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려

어쩌면 아이도 건강한 부모를 원하지 않을까 싶어서 더 망설여지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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