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일기: 당신이 몰랐던 조증의 부작용

by 정헴





그동안 나는 분명 우울감을 느꼈지만,





죽고 싶다는 충동까지는 들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는 안심하고 있었다.

'난 아직 듣고 싶은 노래도 많고, 즐거운 게 많은데 왜 죽어? 난 그냥 좀 우울할 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내 우울은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용기를 내 방문했던 정신과 병원에서 처방된 약을 먹고

조증이 한번 온 이후로, 죽고 싶다는 충동이라는 걸 처음 느껴버렸다.




마치 그동안 자살 충동이라는 감정이 유리벽 너머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유리벽이 깨부숴 져 경계가 없어진 느낌이다.

이제는 내가 더 다가가기도 쉽고, 접하기도 쉬운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전에는 먼 존재였던 감정이, 이제는 내 옆자리에 앉아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도를 아십니까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경계가 사라진 후의 나는 이전과 정말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즐거운 일들이 많아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즐거운 것들도 한정적이고 세상의 모든 즐거움이 색을 잃은 듯 흥미도, 관심도 없어졌다.





누가 뭐라고 위로를 해주든, 그 따뜻한 말들이 전혀 들리지 않고 와닿지 않는다.

마치 솜을 가득 채운 귀마개를 낀 것처럼, 세상의 모든 소음과 사람들의 진심으로부터

나를 차단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고집만 세져서, 스스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나아질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고통 속에 가라앉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이런 괴로운 감정이 들 때마다 데이식스 노래를 듣곤 했다.

약을 먹기 전 나의 우울감을 달랬을 때,

나는 탄천으로 나가 하염없이 걷곤 했다.

그때 내 귀에 꽂혀 있던 음악들이 바로 데이식스 노래였다.

슬프고 무거운 마음을 들고나가고 데이식스 노래를 들으면

그 드럼 박자에 맞춰서 내 감정이 흩뿌려져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우울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는 혼자만의 노력을 꽤 많이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나를 추억하기만 한다.

과거에 내가 했던 걷고, 감정을 덜어내려 애썼던 그 모든 행동을 했던 과거의 나를 부러워하기만 하고 있다.

그때의 나는 적어도 내 마음을 움직일 힘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부러워하기만 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할 생각도 없는 채로.





이런 감정의 변화가 약물 치료로 나아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나를 돕기 위해 처방된 약이 오히려 나를 위험에 다가서게 했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나는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먹는데 , 오히려 나를 위험한 충동에 더 가깝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약 때문이라고 믿고 싶은 걸까.






언젠가 다시 탄천을 걸으며 데이식스 노래에 맞춰 감정을 덜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의 내가 간절히 바라는 나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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