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찾아왔다고 느낄 때

조울증 일기

by 정헴






쏴아아.




세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발에 갖다 대어본다.

발에서부터 타고 오르는 쓸쓸함이 소름 끼치게 느껴진다.

곧 따뜻한 물로 바뀌어 내 몸을 녹여주는 물이 되었지만,

잠깐 사이에 흘러나왔던 그 차가운 물은 나를 순식간에 가라앉게 만들었다.

그래도 따뜻한 물로 몸을 녹여 개운한 나는,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며 욕실을 나오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까 그 시린 느낌은 정말 별로였어.




이가 시린 느낌과는 확실히 다르다.

발바닥부터 타고 오르는 마음 아래까지 순식간에 올라오는 그 쓸쓸함이란,

누군가를 납득시킬 만큼 표현할 자신이 없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차가운 물에 닿아 느끼는 불쾌감이 아니었다.

온몸의 신경망을 따라 올라오는 으스스한 외로움이랄까?




이해가 되지 않아, 조울증 및 우울증 환자들이 있는

커뮤니티에 나의 이런 경험을 간단하게 올려 의견을 물었다.

순식간에 댓글이 우르르 달렸다.

"날씨를 타는 것"이라며 본인들도 그렇다는 공감의 댓글들이 모였다.




아, 내가 날씨를 타는 걸까?

한 번도 내가 날씨를 탄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나도 영화에 나오는 가을 여자처럼 고독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니.

오 나 뭔가 감성적인 사람이 된것 같은데? 묘하게 안정감이 생겼다.




나만 알고 있을 순 없어서 남편에게도 말해줬다.

"나 찬물 닿으면 되게 쓸쓸하고 우울한데, 이게 계절 타는 거래."

무겁게 말하고 싶지 않아 가볍게 웃었다.




남편은 "자기가 솔로도 아니고 결혼해서 남편까지 있는데 외로워?" 하고 함께 웃는다.

그러게, 나 뭐가 그렇게 또 쓸쓸했을까.

'쩝' 소리를 한 번 내고 잊어버리기로 했다.




아무런 걱정거리 없이 잘 자고 일어났던 아침.

항상 신던 슬리퍼를 제쳐두고 맨발로 바닥을 디뎠다.

"벌써 보일러를 틀어야 할 때가 왔나? 바닥이 꽤 차갑네." 하며 어김없이 시린 마음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좀 힘들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고 모두가 없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내 앞에 두고양이와 남편을 한눈에 담지 않으면, 그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진정하려고 애썼다.

밑에서 '냐옹냐옹' 울어대는 고양이들을 보며 안정하려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그냥 자나팜(안정제) 하나를 먹을걸.

뭐하러 생짜로 그 불안과 싸우며 버텼나 싶다.




내가 브런치에 처음으로 남겼던 글도, 바로 이 차가운 쓸쓸함을 표현했던 글이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어김없이 느끼며, 이제야 가을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의 계절병이 요란하게 찾아올쯤 우리집에 가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