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을 도와줘(Support the girls, 20

<페미니즘의 대립성, 계급의 수직성>

by 늘픔

수많은 차들이 지나다닌다. 그곳에는 고가 도로와 지상 도로가 있다. 수많은 차들은 그곳을 지나다니며 본인들의 목적지를 향해 간다. 하지만 목적지에 잃은 듯한 차 한 대에 울고 있는 여성이 있다. 여성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그저 눈물을 훔칠 뿐이다. 리사(레지나 홀)는 눈물을 멈추고 아무 일이 없다는 듯, 그녀를 마중 나온 동료에게 웃음을 보인다. 그녀는 눈물을 보일 수 없는, 웃을 수밖에 없는 매니저이다.
더블 웨미의 홀 서빙을 하는 직원은 탱크탑을 입은 여성만 존재하며, 남성은 사장 혹은 요리사로 존재한다. 조금 더 확장하자면, 그녀들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예를 들면, 그녀들에게 월급을 줄 손님, 그녀들을 지켜주는 경찰, 음향기기를 빌려주는 직원으로 말이다. 리사는 매니저로서의 역할을 하지만, 결국 노동자 계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의 모토는 ‘가족 같은 직원‘이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과 ‘가족 같은’ 수평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 친구와 같은 비 물질적 관계에서는 성립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이 수직으로 변환되는 순간, 수평을 요구하는 가족의 관계는 무너진다. 그녀는 착각하고 있다. 모든 직원들과 가족이 될 수 있다고.
그 가족이 사고를 당하자, 고용인 몰래 자선행사를 벌인다. 자선행사의 목적은 밝히지 않는다. 자선행사에 돈을 모금해주는 사람들은 남자 손님들이다. 남자 손님들의 차를 닦아주며 팁으로 모금을 한다. 돈 모금함인 깡통에는 ‘Support the girls!’(그녀들을 도와주세요!)라고 적혀있다. 모금 행사의 목적과 취지는 밝히지 않은 채,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남성들에게 호소한다. 이러한 단면은 계급과 페미니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 양면적 속성을 갖게 된다.


배수관을 타고 들어갔던 도둑은 경찰에 의해 잡힌다. 리사는 그가 누군지 안다. 하지만 사장과 경찰 앞에서는 누군지 모른다고 진술한다. 도둑의 친척인 주방 요리사에게 이야기를 한다. 사정을 알고 있으니, 알아서 일처리를 하기 바란다고. 주방 요리사는 경찰에 끌려가는 대신 일을 그만둔다.. 그러면서 리사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이 컷은 단적으로 리사의 모습을 보여 준다. 가게의 금고를 털어가려던 도둑과 협조하던 주방 요리사를 보호하는 모습은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이익이 우선인 자본주의의 속성을 보란 듯이 무너뜨리는 매니저. 하지만 그녀 또한 피고용인일 뿐이다.
새로운 식당의 개업인 ‘맨케이브’로 인해 고용인과 다툼 후, 리사는 본인의 삶으로 잠시 돌아온다. 하지만 가족을 강요하던 매니저가 남편과의 문제로 가정이 해체 되었을 때, 우리는 그녀를 ‘가족같은’ 사람으로 볼 수 있는가? 가정의 해체는 또 다른 가족의 결합으로 점철되는가? 모든 문제가 복잡하게 꼬이면서 그녀는 방향을 잃는다. 가족 같은 동료들을 남겨둔 채, 그녀는 떠난다. 남겨진 그녀들은 중요하지 않다.
가족 같은 그녀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하던 리사의 부재를 느낀다. 남자 매니저가 등장하지만,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한다. 여성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하지만, 남성은 동시에 수행할 수 없는 역할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처럼 대놓고 계급의 수직성이나, 여성의 우월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잠식시킨다. 하지만 잠식한 줄로만 알았던 문제의식들은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온다.



리사가 손님을 내쫓으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여직원들의 여성성은 결국 새로운 신입의 노출에 의해 완전히 박살 난다. 손님과의 연애를 직접적으로 금지시킨 리사를 외면하고 노 교수와의 사랑에 빠진 마시(헤일리 루 리차드슨)에 의해 서서히 균열이 가더니, 다니엘레(맥헤일)이 음향기기를 빌리기 위해 아시안 남성 직원을 이용했고, 결국 새로운 신입 보보가 남성들 앞에서 가슴을 노출하며 터져 나온다. 여기서의 ‘여성성’은 여성으로서의 인간적인 존재(남성과 상대적인), 여성만의 특징을 일컫는다. 손님인 남성과 직원인 여성. 결국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여성성은 터져 나온다.
처음에 리사와 일하던 직원들의 가게인 ‘더블 웨미’를 직역하면 이중고로, 이후 리사가 해고된 후 찾아간 ‘맨케이브‘는 남자들의 소굴 정도로 해석될 것이다. 더블 웨미에서 말한 이중고는 일적인 측면과 개인적인 측면에서 찾아왔다. 남편과의 이혼 문제 그리고 사고를 당한 직원을 위해 사장과 싸워주는 매니저. 개인의 일을 직장으로 끌고 들어오는 순간 혼란의 소용돌이는 점점 커진다. 결국 더블 웨미는 사장과 싸워주는 직원들의 매니저와 한 남자의 아내가 충돌하는 곳이다. 이는 남편과 통화를 하고, 충돌이 생길 때 그녀가 입고 있는 유니폼은 소속감을 나타낸다. 결국 여자라는 사람과 매니저라는 직책이 충돌한 것이다.
결국 여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더블 웨미라는 이중고에서 벗어났다. 남편도 내보냈고, 도와주려던 직원마저 돌려보냈다. 그렇다면 여자는 자유를 얻는가?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더블 웨미에서 직-간접적 문제가 되었던 남성들의 소굴로 리사는 걸어간다. 그곳에선 리사의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는다. 결국 그녀는 또다시 남성들의 공간인 맨케이브에 매니저로서 들어가는 것이다. 그녀에게 자유란 없다.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의 샤우팅은 자유를 찾는 것이 아닌, 자유를 찾기 위한 울부짖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스터후드(우리말로 하자면 여자들의 우정)라고 표현하기엔 이 영화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여자들의 우정을 강조하기엔, 이 영화의 단면은 너무나도 날카롭다. 날카로운 단면은 관객을 향하지 않는다. 그저 날카로운 단면을 가진 칼을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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