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제인(Jane, 2016)

<꿈과 현실의 경계는 행복, 죽음과 맞닿아있다.>

by 늘픔

오묘한 불빛이 한 소녀의 얼굴에 드리운다. 이윽고, 한 남자의 얘기를 꺼냈지만 다른 사람들은 지루한 이야기인 양, 이야기를 끊는다. 프레임에 담긴 캐리어는 거북이 썩은 냄새로 치환되고, 이윽고 소녀와 같이 있던 무리들은 무언가를 묻는다. 소녀가 뛴다. 이 험난한 현실 속 꿈을 향해.
알 수 없는 히스테릭한 음악이 깔리면서, 소현(이민지)은 모텔에 남아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 그 남자가 두고 그녀를 두고 간 모텔에서 손목을 긋고 죽음을 기다린다. 초록색 물에 담긴 피는, 팔레트에 물감을 푸는 것과 같이 서서히 퍼져나가며 누군가 등장할까 하는 헛된 희망을 건다. 헛된 희망의 순간, 제인(구교환)이 등장한다. 마치 아는 듯, 덤덤하게 색과 조명이 대조되며 그들을 비춘다. 그리고는 그 남자를 찾는다.
‘뉴월드’는 이전에 비추던 무채색들과 대조된다. 화려한 네온사인을 필두로, 가게 안에는 보라색과 같은 원색이 드리운다. 상처를 치료해준 제인을 소현은 따라간다. 뉴월드는 새로운 세상으로의 입장. 그리고 제인을 따라가는 소현의 뒤로 보이는 ‘On Limit’은 운명의 한계점을 이야기한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현실의 한계.

죽은 것을 본 경험을 이야기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소현은 ‘우리 엄마요.’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이 소녀에게 죽음이란 무엇일까. 너무나도 가까워서 꿈만 같은 개념이다. 미러볼 아래서 꿈같이 흔들리는 그들의 모습은 현실일까. 꿈에서 제인이 좋아하는 남자와 연인이 된 것은 중요하지 않다. 꿈은 이들에게 문제가 아니다. 믿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현실과 꿈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제인은 인생의 시시함에 관해 이야기한다. 불행은 지속되지만, 행복은 아주 가끔, 조금씩 다가온다. 이 인생을 불행한 인생이라고 하며, 다 같이 살아야 한다고 한다. 팸의 존재 이유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팸은 이 불행한 인생과 현실을 견뎌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다른 가족들처럼 가족사진도 존재하고, 아빠와 엄마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제인의 존재로 인해 가족은 유지된다. 그렇기에 제인은 여장을 한 남자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불행함을 남들도 느껴야 한다는 소현. 그러곤 오묘한 불빛과 히스테릭한 음악을 켜놓고, 훔쳐온 미러볼을 비추는 프레임. 그리고는 죽음에 가까워지려는 제인을 소현은 물을 통해 살려낸다. 물은 죽음을 삼키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체의 자궁 안에서 잉태와 탄생을 의미하는 양수도 의미한다. 현실에서 꿈으로 넘어가려던 제인은 소현에 의해 다시 한번 살아난다.

무엇보다도 제인이 유지하고 꿈꾸던 팸과 인간의 정의는 화합이다. 인간다운 삶. 사람은 4명이지만 케이크가 3조각일 경우, 모두가 포기할 줄 아는 그러한 삶. 진정한 가족(팸)을 상기시킨다. 소현은 제인이 정호를 찾아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면서, 소현은 제인을 가족의 구성원인 엄마 혹은 아빠가 아닌 언니와 아줌마라고 부른다. 본인들을 보살피고,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실체. 부모가 아닌 제 3자의 존재. 결국 이 팸 또한 소현에게 있어선 완벽하지 않은 부재의 존재이다.
조경환과 제인의 경계는 약으로 정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대를 위해 변신하는 것. 즉, 행복의 원천으로 경계가 나뉜다. 소현의 휘파람 장송곡과 재떨이 위에 놓인 담배는 제사상을 의미한다. 김밥은 가장 가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식이지만, 가족의 행복 대신 죽음의 행복을 택한 제인은 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의 부재를 느낀 가족은 해체되었다.
제인을 묻을 때, 장송곡을 틀고 이불로 감싸 안는 장면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이미지다. 성모 마리아가 죽음으로 꿈을 깨고, 현실로의 복귀를 선언하는 순간 아이들은 혼자가 된다. 소현은 이 아늑하고 행복한 꿈을 깨고 현실로 나오는 중이다. 꿈에서 깬 소현은 당분간 적응이 되지 않을 테지만,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 혼자가 된 것을 느낀다. 꿈은 따뜻하지만, 현실은 차갑다. 꿈은 현실이 되길 바라지만, 현실은 꿈이 되길 바란다. 그렇게 소현은 불행을 느끼며 죽음에 한 발짝 더 다가선다.

새로운 팸이 등장한다. 제인의 집에 같이 있던 대호와 쫑구가 같이 있다. 마치 다른 사람인 양 서로에게 관심은 일절 없다. 소현은 자기를 버린 정호에게 연락을 한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도움의 표시다. 그러면서 지수와 대호가 오랜만에 만난 사람인 양,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지수와 소현 또한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다. 결국 이 팸의 이야기는 또 다른 평행세계와 같은 이야기다. 이 팸의 분위기는 제인의 팸 분위기와 전혀 다르다. 담배와 술이 찌든 집은 무채색으로 덮여있다. 제인의 집은 따뜻한 분위기였다면, 병욱의 집은 감옥과도 같은 집이다. 온정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감옥과도 같은 집. 담배와 술, 욕설이 가득한 집. 지수가 하는 알바의 유니폼과 동생에게 입혀주는 빨간색에서 대조를 느낀다. 결국 이 팸은 현실의 팸이다.
이 팸은 병욱을 아빠라고 부른다. 심지어 제인을 언니라 부르던 소현까지 폭력을 가하고 욕설을 가하는 병욱에게 아빠라고 부른다. 이곳은 현실이다. 제인과 다르게, 그 누구도 이들을 챙겨주지 않는다. 독립을 한다는 지수에게 또 다른 팸을 만드냐고 묻는 소현. 지수와 소현에게 가족(팸)이라는 의미는 상반된다. 지수는 제인의 추구하는 따뜻한 가족을 의미하고, 소현에게 팸이란 생계수단이다. 대호는 지수가 갇힌 후, 걱정하는 소현에게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타인을 위하는 것이 아닌 본인 삶 영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방 안에서 나오지 못한 지수는 병욱의 복수와 욕심에 위치를 위에서 아래로 변환한다. 모든 것을 내버려 둔 채, 꿈을 향해 간다. 어둠 속에서 열려 있는 창문은 제인의 창문을 연상시킴과 동시에, 지수의 죽음을 알린다. 또다시 소현에게 죽음이 찾아온다. 늘 죽음의 목격하는 사람은 소현이다. 또다시 누군가를 묻는다. 이번 죽음엔 순교와 자각은 없다. 그저 죽음만 있을 뿐. 죽음 곁엔 누구도 함께하지 않는다. 망자의 돈을 나누려는 아빠는 결국 자식들의 손에 죽는다.

<버닝>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것이 소각되는 것처럼, 이 팸 또한 소각되고 흩어진다. 소현은 지수의 돈을 받고, 파우치를 요구한다. 그리고 버려진다. 소현에게 팸의 해체는 곧, 혼자가 됨을 의미한다. 뜀박질을 하는 소현은 현실을 탈피하고자 한다. 제인 가족의 해체가 꿈에서 현실로의 자각이라면, 병욱 가족의 해체는 현실에서 꿈으로 도망친다. 제인 가족의 케이크가 가족을 의미한다면, 병욱 가족의 케이크는 해체를 의미한다.
그러곤 뉴월드로 향한다. 제인의 집에선 사회복지사와 같은 역할을 하던 여성은, 병욱의 집에선 뉴월드의 종사자로 나온다. 그리고 제인의 실종 소식을 듣는다. 제인은 알지만, 그녀의 행방을 모르는 소현. 본인을 버린 동수의 명함을 다시 받는 소현. 뉴월드의 제인을 생각하며 쓴 편지. 이 편지는 돌고 돌아, 꿈속에서 접한다.

소현은 거짓말을 한다. 이것은 살기 위한 거짓말일까. 이기심을 위한 거짓말일까. 황색 점멸등 아래선 청소년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결국 진실에 맞닿는다. 진실을 꺼낸 대호는 또 다른 진실을 소현에게 선사한다. 죽음의 진실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의 진실을 말이다. 죽음을 안길 수 있었던 대호는 소현을 살린다. 살려준 이유는 현실의 살아있는 불행을 느끼도록 살려준 것이다. 죽음으로써 현실의 고통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이 아닌 방조함으로써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 결국 소현은 살아있는 죽음을 맞이한다.
수신자 없는 편지(아마 수신자가 있다면 그건 동준)를 천장에 남겨두고 온 소현은 다시 한번 꿈을 꾼다.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동준이 소현과 함께 등장하며, 제인과 만난다. 극의 초반부와 달리 제인을 쫓아가는 소현이 아닌, 소현을 쫓아가는 제인의 모습이 나온다. ‘Unhappy’와 거짓의 역사를 제인이 읊는다. 그리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은 사랑을 받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외로운 삶은 불행과 함께 영원히 지속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 뉴월드에서. 죽음과 행복은 부재한 채, 현실을 살아가는 뉴월드에서. 한 소녀의 처음이자 마지막 웃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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