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떻게 지금의 가치관을 갖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글이랍니다.
20180705
입대를 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지긋지긋한 근무의 연속, 미래에 대한 약간 막연한 불안도 있겠지만 요즘에 와서 극심해진 요인 중 하나는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상 어쩔 수 없어보이는 집단주의적 문화이다. 집단의 규칙이나 목표가 중시되어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소소한 부분들마저 제약당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부분 본인의 처해진 현실이 충분히 힘든 나머지 소위 짬이 차면 잘못된 병영문화와 악습을 그대로 따라가곤 한다. 또한 부대 내에서 남성들의 결속력은 젠더와 관련해서는 한 방향으로 더욱 공고해져서 일반 여성에 대한 편견과 성적 대상화, 그릇된 소비방식은 그들의 유대를 더욱 단단히 해주고, 고된 군생활에 한줄기 낙으로 작용하는 듯 하다. 어찌됐건 위악보다는 위선이 낫지 않냐며 깔끔한 척을 떨면서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고독하게 생활하던 나에게 우연히 접한 이 책은 마음에 오아시스같은 존재였다.
한국사회를 힘들게 하는 원인으로 늘 지적되는 것이 집단주의적이고 수직적인 사회문화이다. 이에 공감 못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본인은 수직적인 한국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해 집안을 개박살을 만들고 자살시도까지 했으며 집단주의적인 문화에 치를 떨며 아웃사이더 스탠스를 취하고 있으므로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저자가 말하는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분명하게 다른 개념이다. 개인은 공동체 속에서 합리적인 주체로 존재하며, 집단논리에 편승하여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고 배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이해, 대화와 타협, 약자에 대한 연대의식을 통해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합리적인 개인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떤가. 수직적 사회구조 속에서 버티기 위해서 나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을 멸시하고 무시하며 만족을 얻어왔다. 또한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를 최고로 여기고, 이에 반발하거나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반동분자 취급하며 소외시키지 않았던가.
가장 쓸모없는게 고생자랑이라지만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살시도를 했던 2016년의 8월, 뜨거운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을 맞이할 무렵으로 돌아가본다. 지금도 관계 기저에 늘 불안요소가 내재되어 있는 우리 가족(그래봤자 꼴랑 엄마와 나 둘 뿐이다만)의 갈등은 어렸을때부터 나를 괴롭혀왔지만 대학입시를 전후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일생을 나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 홀로 헌신해 온 어머니의 기대를 배반하고 소위 sky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든 15수능은 내가 엄마의 생각보다 무능력함을 입증하는 동시에 나를 죄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평소에도 다른 가치관때매 어떤 대화 주제가 나오건 서로 싸워대기 일쑤였던 대화는 입시의 실패를 이후로 '니가 이러니까 성공을 못하는거야'라는 마법의 논리로 마무리되었다. 21년째 가드만 올리면서 살아가는것은 생각보다 마음에 가득한 피폐를 낳았고, 이대로는 못살겠다 싶어서 결국 지난 세월동안 수도없이 떠올렸던 자살시도를 실천에 옮기게 된 것이다. 다만 본인의 나약함은 자살을 미수에 그치게 하기 충분했고, 경찰에게서 온 수십통의 부재중전화를 뒤늦게 확인한 것으로 해프닝이 마무리되었다.
뜻밖에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면서 사회의 약자에 대해 속으로 오만가지 오지랖을 부리는 삶을 살기 시작한 데에는 여러가지 사건들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16년 8월의 해프닝이 기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왕 죽지도 못할 삶. 대충 살려면 뭐하러 아득바득 살아가겠냐며, 좀 더 가치있게 살아보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고 해서, 입시에서 남들을 이기는 것을 통해 우월감을 느끼고 입시의 실패 이후 패배자로 살아가면서 배배 꼬여버린 내 마인드가 쉽사리 바뀌는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내 삶은 두번째 전환기를 맞이한다. 같은 해 겨울에 처음으로 연애란 것을 하게 된 것이다. 남성중심적 사회의 충실한 일원으로서 그릇된 젠더감성과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던 나를 꺼내주어 진짜 여성의 삶을 마주하게 해준 것이다. 본래도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나는건 손해라고 생각은 해왔었지만, 기득권 남성들 속에서 약자로 살아가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삶이라고 생각하니 이것참 마냥 무시하고는 못배기겠는 것이다. 김치녀니 뭐니 하면서 여성을 편견속에 몰아넣거나 주위의 여사친들 마저도 성적으로 소비하며 낄낄대던게 나를 포함한 우리네 남성들 아니었던가. 뿐만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성범죄의 불안과 두려움을 겪으며 살아가야 한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전의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이 좋아하는 통계나 팩트, 그걸 넘어서는 실제 삶의 모습을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럼 지금은 다시 솔로가 되어 여성의 일은 남의 일이 되었는데 왜 아직도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유난을 떠는 것일까. 다시 자살시도를 했던 때로 돌아가야한다. 죽음을 응시한 뒤 다시 삶을 돌아보고 나니 내가 그래도 힘든 삶 속에서 두발을 땅에 디디며 수직으로 서있을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손내밀어준 고마운 사람들 덕분이었다. 원치 않던 대학에 들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배배 꼬여있던 나에게 친해지겠다고 다가와준 몇몇 동기들. 자살시도 후 찾아간 교내 상담센터에서 내가 처해진 상황을 바라봐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해결책도 제시해준 고마운 상담사님. 처음으로 사랑을 주고받는 것을 알려주어 마음속에 소박한 인류애를 생겨나게 한 여자친구.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마냥 고독하고 배배 꼬였던 내가 뭐가 좋다고 먼저 다가와주거나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이 존재하였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건강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기는 글렀으리라 장담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약해져 있었을 때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던 만큼 다른 약자들을 보았을 때 무시하고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힙합에 관심있던 나는 흑인 커뮤니티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여 기득권이 어떤 식으로 은밀하고도 집요하게 약자들을 억압해왔는지, 약자들은 어떻게 투쟁해왔는지 알아가게 되었다. 또한 이는 젠더 이슈에서도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군대를 벗어나면 집단주의적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고 기대를 해보지만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는 군대의 산물임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이런 기대는 좌절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집단주의 속에서 무시받는 약자들을 보면서 나조차도 집단의 논리에 동조하고 편승하는 일은 더이상은 하기 힘들 것 같다. 내가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땐 목소리를 내고, 소속된 사회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작은 것부터라도 바꾸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를 통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라는 책의 구절을 인용하였다). 나는 여전히 소심한 소심인이고, 소시민의 근성이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내가 가진 마음가짐에 확신을 갖게 되었고 많은 공감과 위로를 얻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열렬히 고민하고 때때로 깨지고 부딪히며 책임감있는 개인주의자로 나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