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이라는 사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예능 프로그램 ‘더 지니어스 : 그랜드 파이널’이었다. 우승자는 따로 있었지만 남다른 플레이를 선보이며 큰 존재감을 드러냈었다. 때문에 그가 운영하는 교육 봉사 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에서 한 학기 활동하며 그 때 활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과 아직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그 뒤 상계동 학원에서 알바를 하며 이준석의 이름을 자주 듣게 되었고, 나의 정치적 견해가 형성되어가면서 그와 다른 쪽에 있게 되었지만 실력 있고 합리적인 보수 정치인이라고 생각해왔다.
더 지니어스 시리즈에서 그의 명대사 명장면
물론 그에 대한 선호는 호감에서 그렇지 않은 쪽으로 바뀌었고, 페이스북 팔로우도 끊은 지 꽤 되었다. 그래도 이준석이라는 인물은 젊은 합리적 보수 정치인이기 때문에 종종 그의 의견을 참고하며 보수의 시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방송이나 페이스북으로 전달하는 주장이나 의견에는 분량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또한 평소 진보 지식인의 서적은 많이 접했지만 그 반대 진영의 글로 된 이야기는 많이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보수가 추구하는 가치를 보다 잘 이해해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항상 마음속에 자리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이 나왔고 공교롭게도 나의 전역날 출판기념회가 열렸다(날짜가 6.25여서 그랬거니 생각한다).
궁금한데 사기는 싫고, 빌려보았다. 공립도서관 최고.
책은 고양시립한뫼도서관에서 빌렸다. 몇 주 전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희망도서 신청을 했고 내 예상보다 빠르게 책이 입고가 되어 가장 먼저 빌려 보게 되었다(공립도서관 짱짱맨bb). 얼른 다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에 이틀 만에 완독하게 되었는데, 우선 소감은 ‘펜팔 친구를 실제로 만난 느낌’이랄까? 평소 편지를 주고받으며 상대방은 이럴 것 같다고 생각해 왔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정말 예상과 그대로인 느낌이었달까. 책 속에 담긴 그의 의견은 내가 평소 예상했던 그의 가치관과 다르지 않았다. 또한 보수 이념을 지닌 사람이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서도 예상과 들어맞았다.
책을 읽고 감탄했던 점은 이준석이 보여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가 있고, 그에 대한 정책적 대안까지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본인이 ‘청년 정치인이라고 해서 청년 정책에만 전문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경제, 안보 등등 다방면에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 다운 면모였다. 물론 그가 제시한 의견이나 정책에 내가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그것은 지향하는 바가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각 분야를 관통하는 일관된 가치관이 있고, 그에 합당한 근거를 붙였으니 무턱대고 ‘이건 아니야’라고 비난할 일은 아닌 것이다. 다만 책을 읽다가 나름대로 의문인 부분이 있어 몇 가지 남긴다.
하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이야기할 때 ‘현재 남아있는 규범들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정제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의견이지만 그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구습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가 예시를 들면서 캐나다의 정치인이 'mankind'대신에 ‘peoplekind'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페미니즘에 편승하여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태도라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인칭명사는 남성중심적 구성을 유지하고 있고, 이는 변화가 필요한 구습이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틀이라는 말이 있듯이 언어 사용의 변화는 문화의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페미니즘적 언어 사용을 떠나서도 ’현재 남아있는 규범‘에 대한 너그러운 긍정 역시 납득이 힘들다.
이어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소수에 의해 다수가 희생하고 있다‘는 표현을 썼는데, 약자를 위한 배려와 다양성의 존중이 어떻게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지는지 그 인식에 대단히 의문이다. 그동안 사회적 소수자들이 약자로서 받은 희생은 가볍게 느껴지고 현재 다수가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느끼는 약간의 불편함은 무겁게 느껴지나보다. 사회 규범은 끊임없이 변화해왔고 이는 현재에 와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진보를 거듭할 것이다. 그가 지금보다 앞 세대에 존재했어도 ’이만하면 지금의 사회 규범은 퍽 쓸만하지‘라고 인식할 것 같다는 추측을 해본다.
둘. 정치인에게 적성검사를 치르게 하자는 주장은 효과성이 떨어지는 관심 끌기용 주장으로 느껴진다. 공무원도 시험을 치르는데 공무원을 감사하는 의원은 정작 무시험으로 선발되어 소양이 없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시험을 치른다고 소양이 있고 없고가 걸러지는가? 당장 공무원 시험만 해도 객관식 시험을 치르는 9,7급 시험에서는 시험이 직무와 연관성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psat도입이 검토되거나 다른 형태의 시험 도입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정치인도 시험을 쳐서 뽑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시험으로 줄세우기’에 대한 맹신에서 나오는 주장으로 보인다. 그리고 국민의 정치인에 대한 불신 감정을 포착하여 실제 도입 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국민의 감정을 동요하여 관심을 끌어보려는 전략적 주장이라는 생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셋. ‘할당제’에 대한 인식에 반박하고 싶다. 그는 바른미래당 대표 공약에 여성과 청년 등의 위원회를 폐지하고 그들을 당당한 주인공으로 서게 하겠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할당제의 혜택을 입는 일은 당당하지 못한 것인지 묻고 싶다. 예를 들면 대학을 입학할 때 저소득층 전형이나 농어촌 전형이 있다. 이렇게 따로 할당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이유는 소득이나 환경 등으로 입시 교육의 기회를 넓게 보장받지 못하는 학생을 배려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입학도 당당하지 못한 입학일까?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중년 남성이 기득권인 사회에서 여성과 청년이 그들과 똑같은 노력을 기울인다면, 비슷한 실력이라면 기회를 잡기 힘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 평등의 정책으로 할당제를 도입하여 이들을 배려하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할당제는 역차별 등의 논쟁거리만 만든다는 주장은 기존의 부당한 사회 구조에 대한 교묘한 옹호로서 비춰진다.
넷.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일자리 정책 비판 내용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앞부분에서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며 현 정부가 동사무소 직원을 많이 뽑는다고 했는데 이는 거짓된 표현이다. 공공부문 일자리 증대에서 9급이나 7급 공무원의 일반행정직 증원은 미약했다. 소방·경찰 공무원의 숫자가 대폭 늘어났고, 고용노동부 등 소위 ‘헬’이라고 불리지만 민원 응대가 많아 증원이 절실한 기관의 증원이 이뤄졌다. 그걸 단순히 키오스크도 처리 가능한 일을 하는 동사무소 직원이 늘어났다고 평가 절하하는 것은 맞지 않는 주장일 뿐만 아니라 동사무소 직원에 대해서도 무례한 언사이다. 동사무소를 이용하는 노년층에게 키오스크는 낯설고 이용이 불편할 여지가 있어 사람의 응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방·경찰 공무원 증원에 대해서도 인원을 늘리는 대신 품질 좋은 장비 도입을 더 바람직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예시로 강원도 산불을 들었는데, 불이 어디 그렇게 큰 불만 일어나나. 크고 작은 화재에 죄다 사람 대신 헬기나 로봇을 투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소방관 한 명당 커버해야 할 지역이 너무 커서 소방관의 고충이 심한 상태에서 해당 분야 인력 증원의 반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치게 보수주의적이고 현실과 괴리된 주장이다.
다섯. 국공립대의 공공성을 강화하면서 등록금을 서울시립대 수준까지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전에 박원순 시장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서울시립대의 반값등록금 때문에 교육의 질이 낮아진다고 주장했었다. 그 때의 이준석과 지금의 이준석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길래..
여섯. imf사태 이후 대한민국은 비정규직이라는 제도가 기이하게 도입되었다. 원래 비정규직은 고용의 불안정성 때문에 정규직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이 일반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임금은 정규직보다 적으면서 고용이 보장받지 못하고 심지어 하는 업무도 정규직과 차이가 없기도 한 것이 비정규직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정책적 처방은 제시하지 않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노동의 유연성을 해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일곱. 현재 한국 교육은 경쟁 둔화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물론 대학의 지나친 서열화를 반대하고 기초학력 미달자의 성취도 보장을 주장하긴 했다. 그러나 획일적 기준의 시험으로 줄세우기를 하는 입시 방식에 대한 맹신이 가득한 주장이다. 분명 그는 국가가 제시한 기준에 국민이 따라 움직이는 방식보다 자유주의적 방식을 선호하는데 왜 교육에 있어서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 지 의문이다.
여덟. 군 가산점을 도입하고 여성의 사병 지원을 허락하면 공정한 경쟁을 해치지 않는 군에 대한 지원 정책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우선 사병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어야 하는 것은 맞는 이야기다. 현재의 봉급, 그리고 군대 문화는 많은 개선이 있어왔지만 아직도 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전역 후 사병에 대한 지원도 거의 없는 수준이어서 이에 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취직에 가산점을 도입하게 되면 직접적으로 남성이 취업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게 된다. 현재 남성은 채용 시 군대 갔다 온 2년이 고려되어 나이에서 여성에 비해 불리하지 않다. 오히려 아직도 기업에서는 ‘남성은 능력이 좋으면 뽑고, 여성은 뛰어나야 뽑는다’는 인식이 남아있어 여성에게 보이지 않는 취업 차별이 가해진다. 그런데 남성에게 군 가산점이 주어진다면 여성은 이중으로 불리한 위치에 처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군 가산점을 받기 위해 사병 입대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여성은 남성이 군대 가기 싫어하는 만큼 군대 가기 싫을 것이다. 여성에게 꿀빠니즘 프레임을 씌우고자 하는 의도가 보이는 주장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의문을 가지지 않고 술술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적어보니 제법 많은 의문점이 있었나보다. 그 중에서도 역시 젠더 이슈에 대한 의문이 컸다. 그는 워마드를 없애는 데는 앞장서면서 일베를 없애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페미니즘이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되기 전에는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미소지니가 너무나 만연하고 당연시되었다. 페미니즘이 있었기에 여성혐오가 그릇된 일이라는 인식이 서서히 퍼지게 되었고, 성소수자에 대한 다양성 존중 역시 가능했다. 그런데 이준석은 일부 분파가 일으킨 부작용에만 집중하여 페미니즘 전체를 폄훼하려 한다. 그 자신은 페미니즘의 가치에 일부 동의하는 듯 하기도 하지만 페미니즘의 부작용에만 목소리를 높이며 결과적으로는 페미니즘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를 보여주는 20대 남성의 분노를 지지층으로 흡수하고 있다. 페미니즘이 젠더 갈등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그가 오히려 젠더 갈등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비전을 갖고 있는 유능한 정치인이 젠더 이슈에만 매몰되어 지지층 블루오션 개발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당선이 궁극적 목표인 직업정치인에 대한 애잔한 마음까지 든다.
그래도 그가 책에서 보여준 주장과 의견은 방송이나 페이스북에서 했던 말보다 훨씬 정제되어 있고 합리적인 면모도 많다. 동시에 동의하는 부분들은 오히려 동의하지 않는 부분을 부각시켜 그의 가치관은 나의 가치관과는 정말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가 그토록 원하는 당선의 꿈을 이뤄 합리적 보수로서 책에서 보여준 비전을 펼쳐 우리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기 바란다. 박근혜가 권력을 잡기 전과 잡은 후의 행보가 너무 달라서 많은 지지자를 기만했던 상황을 그가 연출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