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이준석연구가의 중간 보고서
* 제목의 표현은 파브르 곤충기에서 차용했습니다. 이준석씨를 곤충에 빗댄 표현은 아닙니다. 곤충이 비하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음은 물론입니다.
최근 정치인 이준석은 소위 브레이크가 고장났다. 이는 이것저것 눈치 보지 않고 속 시원한 언행을 하는 ‘노빠꾸’와는 다르다. 제 때에 작동해야 할 브레이크가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오늘(24일) 그가 페이스북에 “젠더 갈등? 20대들이여 속지말자!”(경향신문)기사를 공유하며 ‘젠더갈등을 분석하는데 왜 20대 여성만 셋을 불러놓고 묻는지는 모르겠네요.’라는 코멘트를 달았다. 그러나 해당 기사는 서두에 20대 여성과 20대 남성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자리를 마련하는 기획의 1부로서 20대 여성의 이야기를 실은 것임을 명시하였다. 기사 제목만 읽고 내용 전체를 판단하는 일부 네티즌의 몰상식한 인식적 행동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심지어 인터뷰에 참여한 여성 중에는 국민의힘 중앙대책위원회 부위원장도 포함되어 있다. 젠더 이슈에 대한 분노에 찬 나머지 피아식별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뿐만 아니라 그의 페이스북에는 감정 섞인 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고 이는 이전에 자신이 뱉은 말을 부정하는 내용도 섞여있다. 대표적으로 평소 메신저가 아니라 메시지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였으나 그저께(22일) 사회학자이자 남성 페미니스트인 최태섭의 글을 공유하면서 ‘낯이 익은 분인거 같은데....’라는 코멘트를 달았다(최태섭은 이준석 역시 출연한 100분토론 방송에서 故김용균의 죽음을 남성성을 강요하는 사회와 연결짓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인용하여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방식으로서 자신의 평소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한 19일에 주간동아와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길 가는 20대 남성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라. (남성의 분노는) 페미니즘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고 “최근 ‘한겨레’나 ‘여성신문’ 등 여러 곳에서 나를 비판한다. 나에게 뭐라 하지 말고 그냥 돈 들여서 여론조사를 해라.”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한겨레나 여성신문 등의 진보 언론에서 제기하는 비판은 구체적 데이터에 근거한다. 속칭 이대남은 원래 민주당의 지지층이 아니었음을 최근의 전국 선거 통계를 통해서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는 이대남의 분노가 페미니즘 때문인지 입증할 근거도 없이 ‘길 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라’는 희한한 표본 추출 방식을 제시했다. 사회조사분석사 2급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이 할 만한 소리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정치인 이준석에게 “그렇다면 지금의 페미니즘에 대해 비판하는 당신이 제시할 성평등 비전은 무엇이오?”라고 묻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의 저서 <공정한 경쟁>에서 그는 ‘현대 사회의 제도나 규범은 오랜 시간의 역사에 의해 정제된 산물이다. 그러니 더 손댈 필요가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였다. 젠더 이슈에 대해서도 이만하면 충분히 성평등이 달성된 것 아니냐는 식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같은 책에서 혐오표현에 대해 자성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소(小)를 위해 대(大)가 희생할 수는 없지 않느냐’라며 사회적 소수자의 존재를 뭉개는 듯한 발언을 하였고, 퀴어 퍼레이드에 대해서도 ‘그거 이미 미국에서 예전부터 하던 거다. 성소수자들이 공원에서 엉덩이 흔드는 거’라는 식의 발언을 하였다. 그저께(22일) 그가 발행한 진중권 교수의 자신에 대한 논설에 반박하는 글 말미에 ‘여성 혐오 걱정 안 하셔도 된다. 이준석은 여성 좋아한다.’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표현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나는 이준석이라는 스타 정치인을 나름 오래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의 20대가 기성세대가 될 약 20년 뒤에 그가 혐오정치의 선봉장으로 활약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는 영(young)보수에게 인기를 얻을 요소를 고루 갖추었다. ‘웬 시민단체 활동 하다가 실력도 없이 금배지 단 사람과는 다르게 과학고에 하버드 나온 인재’이며 심지어 전공도 컴퓨터공학과이다. 공대남의 지지를 얻기에 장기적으로 안철수보다 나은 선택지이다. 게다가 정치인들이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젠더 이슈를 건드려 페미니즘을 ‘(그들 식의)논리와 팩트’로 앞장서서 때려주며 요즘에는 채식까지 건드려준다. 산업화 세대 정치인들이 담지 못하는 최신의 이슈를 선점하며 지금을 살아가는 신자유주의 옹호자들의 마음을 얻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의 정치 데뷔가 ‘할당’에 의해 성사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평소 여성할당제를 비롯한 일체의 할당제를 비판하면서 실력에 따라 인재가 선발되어야 한다는 능력주의를 강하게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준석이 정치인이 된 것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표의 청년 인재 발탁 덕분이었다. 이에 대해 그 역시 자신이 선택되어 활동한 것일 뿐 국회의원 선거는 계속해서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 선거에 출마하고 있음을 어필한다. 그렇게 총 세 번의 지역구 선거에서 내리 낙선했다. 의문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 역시 실력이 없어서 낙선한 것일까.
미국에 도래했던 트럼프 시대를 보며 우리나라도 앞으로 저런 모습이 펼쳐지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 중심에 이준석이 있으리라는 예측과 함께. 하지만 최근에 브레이크가 고장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그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다. 어쩌면 안티 페미 포퓰리스트 이준석이 분노를 양분삼아 득세하여 정치 본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급격한 오르막 뒤에 급격한 내리막이 함께할 것이라 예상해본다.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처럼 서로 애증의 공생을 벌이는 진중권과 이준석은(누가 배트맨이고 조커인지는 나도 모른다만) 공통점이 있다. 토론의 테크닉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는 점을 활용하여 자신의 논리에 맞서는 상대에게(주로 네티즌) 논리로 패버리겠다는 식으로 대응한다. 진중권은 다만 논객(論客)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준석은 정치인이다. 정치는 서로 다른 견해가 합의를 이루고 건설적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무대이다.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국민을 상대로 팔 걷어부치고 주먹다짐 할 준비를 하는 정치인의 생명력이 오래 갈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