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 워를 보는 세 가지 시선
20160429
영화에는 마블 코믹스 최대의 히어로 내전 '시빌 워(Civil War)' 이벤트가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적합하게끔 잘 담아져 있다. 또한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인 만큼 어벤저스에 버금갈 정도의 여러 캐릭터가 등장함에도 캡틴 아메리카를 중심축으로 스토리를 난잡하지 않게 전개한 점도 우수한 점이다.
액션 신에서는 캡틴 아메리카가 주로 펼치는 맨주먹 액션에서도 준수한 액션 영화의 그것에 버금가는 정도의 퀄리티를 볼 수 있었고, 히어로 결투 역시 캐릭터의 개성을 잘 활용하면서도 마블 특유의 유머 역시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 다루는 윤리 역시 히어로 영화 속 겉멋든 철학이 아니었고 상당히 생각할 점을 안겨준다.
이렇게 우수한 영화에 대해서 많은 리뷰가 있을 터이고 전문 평론가보다 평을 잘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조금 다른 방법으로 이 영화를 말하려고 한다. 영화를 보는데 팁을 주고자 하는 것도 아니며 순전히 영화를 보고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써내려가는 주관적 리뷰가 될 것이다. 지금부터는 이 영화의 세 가지 관전포인트를 중심으로 내 생각을 나열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1. 한달 전 나왔던 <배트맨 V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과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의 스토리
사실 히어로간의 격돌을 다룬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이하 '시빌 워')가 나오기 한 달 전에 <배트맨 V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이하 '뱃대숲')에서 먼저 만나볼 수 있었다. '뱃대숲'의 스토리는 프랭크 밀러의 명작 그래픽 노블 <배트맨 - 더 다크나이트 리턴즈>에서 많이 차용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또한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아르고>의 감독(배트맨 역을 맡은 벤 애플렉이 감독과 주연을 맡았음)과 각본가가 스토리에 참여했기 때문에 완성도에 대한 의구심은 적은 편이었다(다만 감독이 잭 스나이더라는 점이 걸렸을 뿐..). 그러나 공개된 영화는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싸움과 화해의 명분 등에서 많은 이들에게 적잖은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둘은 거의 엄마때매 싸웠다가 엄마때매 화해하는 격이었다. 그렇다보니 관객은 명분있는 싸움을 기대하고 앞의 다소 지루한 스토리 빌드업을 참고 지켜봤는데, 중후반부에 갑자기 둘이 치고받고 싸우다가 또 갑자기 화해해서 원더우먼이랑 화끈하게 악당을 물리치다가 끝나버리니 허탈하다고 생각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시빌 워는 달랐다. 어떻게 보면 마블 코믹스에 대항해 급작스럽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DC 코믹스의 한계로도 느껴지는 점인데, '시빌 워'의 내전은 마블의 이전 영화부터 계속 쌓여왔던 문제들과 스티브/토니의 갈등이 터진 것이어서 스토리 빌드업이 이전 영화부터 진행되었기 때문에 개연성이 높을 수 밖에 없었다. 히어로들이 지구를 지키다가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갑작스럽게 문제제기가 됐다는 점은 '뱃대숲'과 '시빌 워' 모두 유사하지만 '뱃대숲'에서는 이 것이 배트맨이 슈퍼맨에 대한 반감을 갖는 데에만 활용되었다. 반면 '시빌 워'에서는 문제점이 히어로 등록법으로 연결되게끔 하였고, 히어로 등록법은 깊은 차원의 윤리적 문제와 지구를 지킬 때의 불편성 등의 문제를 낳아 영화의 깊이를 더했다. 대결의 명분 역시 차이가 있었다. '뱃대숲'은 앞에서 말했듯이 엄마때매 싸우고 엄마때매 화해하는 식의 마무리였다면, '시빌 워'는 계략에 빠진 팀 아이언맨과 진실을 알고 있는 팀 캡틴의 1차 대결, 자신의 부모를 죽인 자가 윈터 솔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언맨과 친구를 지키려는 캡틴의 2차 대결, 그리고 풀로 붙이듯 급작스런 화해를 하지 않은 채 마무리한 것 까지 모두 관객이 그 명분을 납득 가능하게끔 스토리를 짰다.
유사 쟁점이 많아서 비교할 점도 많았던 두 영화의 완성도는 분명 차이가 났다. 이는 성급하게 세계관을 확장하는 DC 코믹스의 한계일 수도 있고, 잭 스나이더 영화가 그랬듯 부실한 스토리가 다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시빌 워'의 감독인 루소 형제는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를 멋지게 완성했듯이 이 영화도 멋지게 완성했다. 어벤저스 3,4의 감독으로 일찌감치 내정된 루소 형제의 실력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개인적으로 팬보이의 입장에서 만화책의 명장면을 소름끼칠 정도로 재현하였고, 멋진 배트맨의 코스튬과 무기를 구경할 수 있게 해준 '뱃대숲'을 개인적으로 즐겁게 감상하였기에 뱃대숲에 대한 혹평이 안타깝다. 하지만 팬심을 배제한 평론가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이는 '뱃대숲'의 20%대의 로튼토마토 신선도와 '시빌 워'의 90%대의 신선도의 극명한 차이가 말해주고 있다.
추가로 한국에서는 자막 문제 역시 두 영화의 평가 차이에 한 몫을 한다. '뱃대숲'과 '시빌 워'의 번역가는 동일한 데 반해 '뱃대숲'의 번역이 훨씬 욕을 먹고 있다. 이는 '뱃대숲'의 대사는 은유가 많고 미국이나 DC코믹스의 세계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 반면 '시빌 워'의 대사는 대사가 의도하는 바가 글자에 간결하게 그대로 나와 있는 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애초에 번역에 어려움이 없는 편이다. 여러 모로 한국의 '뱃대숲' 관람객은 아쉬움을 많이 느낄 수 밖에 없었다.
2. '시빌 워'가 던져주는 사회적, 윤리적 고민거리
그동안 히어로 영화계에서 철학적 고민거리를 안겨준 영화는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가 거의 유일무이했다. 하지만 '시빌 워'는 이 부분에서도 큰 역할을 해낸다. 먼저 영화의 표면적인 메인 논쟁거리, 히어로 등록법이 있다. 히어로들이 지구를 지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인적, 물적 피해에 대한 책임을 어디에 물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영화에서는 어벤저스를 UN 산하 기구에 두어 히어로들의 자의적인 활동을 견제하고, 문제 발생 시 히어로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 사실 슈퍼휴먼들에게 제도적 장치가 얼마나 큰 제약이 될지 의구심이 들지만(마지막 캡틴 아메리카의 행동을 보아도...), 분명 발생한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일례로 슈퍼맨 영화에서는 슈퍼맨이 지구 지키다가 부순 건물은 본인이 날아다니면서 다시 짓는 식으로 책임을 진다만,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슈퍼맨이 생명을 살리는 능력까지는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 본인이 죄책감만 느끼고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은 분명 좋지 못하다. 한번 지구를 지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가 거의 재난급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처벌을 히어로를 감금하는 식으로 대체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재난급의 피해를 유발했는데 그럼 평생 감옥에 썩게 할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면 필요한 순간에 슈퍼휴먼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책임을 묻되 영화에서 나온 방법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납득할 만한 대안이 필요하다. 어떤 방법이 좋을 지는 너무 어려워서 나도 잘 모르겠다. 한 가지 씁쓸한 사실은 '시빌 워'와 '놀란의 배트맨'영화에서 차분한 분석가의 역할을 하는 '비전'과 '알프레드' 모두 히어로들이 등장이 더 강하고 규모가 큰 빌런의 등장을 유발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히어로의 존재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다음은 영화를 보다 보면 알게 되는 사건 조작에 관한 부분이다. 여기서 내가 생각했던 문제점은 국가는 진실을 철저히 규명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어떻게 하면 정치적으로 이용할 지 고민한다는 것이다. '시빌 워'에서는 사실 테러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지는 않았지만, 같은 마블의 영화 <아이언맨 3>에서 가짜 테러리스트로 등장했던 '만다린' 캐릭터는, 언론과 국가가 테러 등의 군사적 위협을 제대로된 진실 찾기에는 관심없이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에 대한 풍자가 담겨 있었다고 생각했다. 테러나 안보에 대한 위협은 우리 나라나 미국 등에서 보수 세력을 집결시키는 강력한 이슈로 작용한다. 이에 대한 풍자는 사실 우리가 수능 공부를 하면서 많이 접했던 이강백 작가의 <파수꾼>이라는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가짜 이리떼라는 위협을 통해 주민들을 공포 속의 단합으로 몰아넣었던 촌장의 이야기는 당시 북한이라는 위협을 통해 국민들의 관심을 독재에 대한 비판에서 돌려버린 박정희 정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시빌 워'와는 느슨한 관계가 있는 문제였지만 이러한 이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3. 알면 더 재밌는 영화 속 소소한 재미
세 번째는 진지충에서 벗어나 내가 발견한 영화 안의 깨알 재미를 소개하는 부분이다(여기까지 읽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려나..).
-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피터의 티셔츠에는 피자가 그려져 있다. 샘 래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속 피터 파커는 피자 배달부였지.. 향수를 자극한다.
- 블랙 팬서 역할을 맡은 배우 '채드윅 보스만'은 영화 <42>에서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을 연기한 바 있다. 그가 연기할 다음 흑인 영웅은 마틴 루터 킹이 되려나..
- 이전의 스파이더맨인 배우 '앤드류 가필드'는 30대의 나이에 대학생 스파이더맨을 연기하였지만 틴에이저 설정의 새로운 스파이더맨을 연기하는 배우 '톰 홀랜드'는 실제로도 어리다. 올해 20살, 1996년 6월 1일 생으로 나보다 늦게 태어났다!!
- 이 영화의 메인 빌런 주작남(?)을 연기한 스페인 출생의 배우 '다니엘 브륄'은 이 영화에서는 마블 유니버스의 나치라고 할 수 있는 '하이드라'를 싫어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는 나치의 젊은 전쟁 영웅을 연기하였다.
- 영화 말미에 페덱스 드라이버로 나오는 노인의 배우는 사실 마블 코믹스의 회장 '스탠 리' 옹이시다. 이 양반은 만화를 사랑하는 장사꾼으로서 마블 코믹스의 거의 모든 영화에 카메오로 빠짐없이 출연하여 히어로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마블 영화 속 스탠 리 찾기가 흥미 요소 중 하나일 정도이다. 다행히 이번 영화에서는 '토니 스탱크!'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참고로 <데드풀>에서는 스트립 바의 주인으로 출연해서 "돈으로 사랑도 살 수 있다"는 씁쓸한 멘트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