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코믹북 감상기

그리고 놀란의 배트맨

by 송치욱

20161108



우리학교 도서관에 새롭게 비치된 배트맨 시리즈의 레전드 에피소드 두 권을 이번에 빌리게 되었다. <배트맨 - 킬링 조크>(이하 킬링 조크)와 <배트맨 - 망토 두른 십자군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이하 망토 두른 십자군)은 각각 전설적인 그래픽 노블 작가인 '앨런 무어'(대표작 : 브이 포 벤데타, 왓치맨)와 '닐 게이먼'(대표작 : 샌드맨)의 손에서 탄생되었다. 이 두 에피소드는 후에 제작되는 배트맨 영화에도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되고, 이는 놀란의 배트맨 영화에도 유효하다. 지금부터 각각의 그래픽 노블에 대한 감상과 이들과 놀란의 배트맨과의 연계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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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 킬링 조크>


이 작품은 앨런 무어의 음울하고 광기어린 세련된 스토리 뽑는 솜씨가 어김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비록 40여쪽 되는 스토리이지만, 조커의 기원과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 조커의 유치하면서도 우아한 행동양식에 대해 간결하게 모두 나타내주고 있다. 인상적인 점은 조커의 과거가 흑백의 회상신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특정 인물이나 사물이 회상신의 접점으로 사용되어 자연스럽게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기법을 사용하여 클래식한 맛을 더한다. 아내와 아이를 먹여살리려는 가난한 연극배우가 무작위로 부여받은 불공평한 불운을 맞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나락으로 떨어져(화학물질 저장소에 빠져 조커의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현재의 미친 광대가 되어버리는 과정이 영화처럼 담겨진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표현된 그의 과거와 현재를 보고있자면 그의 웃음이 한층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다음으로 파격적인 것은 조커의 유원지에서 이루어지는 짐 고든에 대한 고문 장면이다. 조커는 배트맨과 그의 조력자에 대한 복수로 짐 고든의 딸 바버라 고든을 총격피습하여 하반신 불수로 만들고, 짐 고든을 납치해 자신의 유원지에서 굴욕을 안겨준다. 늘 기품을 유지하던 짐 고든이 발가벗겨진 채로 속수무책으로 고문을 당하는 장면은 앨런 무어가 아니면 만들기 힘든 장면일 것이다. 한바탕 광기어린 놀이를 마친 조커는 드디어 배트맨을 유원지에 초대하여 대결을 벌인다. 조커와 배트맨의 대결은 사실 시시하고 재미없는 조커의 농담과도 같다. 조커가 아무 힘이 없기 때문에 그저 투닥거리는 것 밖에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조커는 배트맨에게 독을 주입했고, 절대 살인을 하지 않는 배트맨은 만화 마지막에 후후 웃으며 조커의 심장부를 무언가로 찌른다. 그들의 모습을 경찰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추며 만화는 끝이 난다. 결말이 다소 모호하게 끝났지만 오히려 그러한 마무리가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를 더 잘 표현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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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 망토 두른 십자군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


킬링 조크와 달리 이 작품은 80년대의 배트맨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작품으로서 사망한 배트맨의 장례식에 그간 등장한 빌런들이 각자의 배트맨을 회상하는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는 독특하게 배트맨과 조커 등의 등장인물을 컷마다 다른 버전, 즉 다른 만화가들이 앞서 선보였던 버전들을 사용하여 배트맨 팬들에게 역시 회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배트맨의 장례식에서 캣우먼과 알프레드, 로빈 등이 각자 이야기를 하면서 배트맨이 왜 죽었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말한다. 이는 버전마다 주인공들이 다른 결말을 맞이하는 코믹스의 장르적 특성을 우화적으로 나타낸 듯 싶다.


장례식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배트맨의 영혼은 마지막으로 어머니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그리고 만화의 마지막에는 배트맨 시그널이 산파의 두 손으로 점점 변하며 다시 브루스 웨인의 출생이 그려진다. 60년대 중후반 부터 80년대까지 이어지는 그래픽노블의 '실버 에이지' 시대의 브루스웨인을 떠나보내고, 지금의 '모던 에이지' 시대의 배트맨을 맞이하는 에피소드로서 이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얼마 안되지만 배트맨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면서 마지막 배트맨의 회상신에서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말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나는 훨씬 배트맨을 더 좋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책에는 망토 두른 십자군 에피소드 외에도 그 뒤에 닐 게이먼이 스토리보드를 쓴 다른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역시 '실버 에이지'와 그 이전 배트맨을 추억하는 에피소드들이다. 특히 킬링 조크는 스토리에 집중하는 편이지만 망토 두른 십자군은 팬들을 위한 추억 여행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동심으로 돌아가 천진난만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배트맨의 순수한 마음과 그를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이 만나 따뜻한 그래픽 노블 감상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는 특히 부록으로 각주 해설이 주어지는데 작품의 이해를 돕는데 필수적이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독자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 점이다.




놀란의 배트맨 다시보기


놀란의 배트맨은 사실 원작 만화에 대한 팬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일반 영화팬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한 걸작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크나이트>의 성과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지만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하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 배트맨 원작을 읽게 된 후 놀란이 배트맨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금 감탄하게 되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배트맨과 탈리아 알굴의 연애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는데 이는 원작에서도 있었던 일로, 영화의 전개에서도 충분히 납득할만 한 설정이었다. 또한 라스 알 굴의 치료의 샘 '라자루스 핏'을 베인의 감옥으로 변형한 것이나, 베인이 배트맨의 허리를 뽀개버리는 <나이트폴>의 장면 재현 등등..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배트맨의 철학을 이해하여 자신의 작품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녹여냈다는 것이다. 배트맨에게 고담은 자신의 전부이며 배트맨은 고담시 그 자체이다. 따라서 자신의 도시를 지키기 위해 배트맨은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다. 악을 위해 순수하게 싸우는 침묵의 수호자를 자처한 브루스 웨인을 놀란은 트릴로지를 통해 고스란히 그려내었다. 또한 원작의 캐릭터들도 적재적소에 사용하였다. 하비 투페이스나 로빈, 캣우먼이나 라스알굴 등등 조커 이외의 등장인물들도 제대로 활용하여 원작의 팬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때문에 여담이지만 지금의 잭스나이더식 배트맨은 비주얼적으로는 흠잡을 곳이 없지만 배트맨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것 같아 많이 아쉽다. 물론 코믹스가 그러했듯 영화의 배트맨 역시 여러 버전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되는 배트맨 에피소드는 따로 있듯이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적이고 또한 추억이 되는 배트맨은 놀란의 배트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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