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배우'라는 말이 주는 차별과 배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통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야기라 유야’, <아이엠 샘>에서 감동적인 연기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다코타 패닝’, <곡성>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연기를 선보여 대종상 신인상을 거머쥔 ‘김환희’. 이들은 모두 당시에 흔히 말하는 ‘아역배우’였다.
그런데 ‘아역배우’가 있으면 그 반대의 말이 있어야 마땅할 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역(兒役)의 한자어를 직역하면 아동의 역할을 의미한다. 헌데 성인배우가 영화나 드라마 등의 작품에서 아동·청소년의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아역배우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즉 아역배우는 실제 나이가 (우리나라 기준)20세 미만의 배우에게 붙여지는 호칭인 것이다.
아역배우라는 단어를 통해 특히 우리나라에서 아동·청소년의 사회적 지위를 생각하게 된다. 보호라는 명목 하에 이들의 의사결정능력을 낮추어 보고 누려야 할 권리를 얼마나 제한해왔는가. ‘노키즈존’은 아동 혐오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어려움을 겪는 서비스업 종사자의 어려움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상대하기 난감한 손님은 나이와는 무관함을 우리는 여러 뉴스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또한 최근에 선거법 개정으로 만18세부터 투표와 선거·정당활동 등의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한 살을 낮추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청소년의 정치적 능력을 평가절하 하는 사람들에게는 고(故) 노회찬 당시 원내대표가 “유관순 열사가 대한독립만세 외친 게 만 16세입니다.”라는 예시를 든 것으로 반박을 대체하고 싶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우리나라에서 정말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을 최근에도 많이 접했다. <우리들>의 최수인 배우, <보희와 녹양>의 안지호 배우, <반도>의 이레, <남매의 여름밤>의 최정운 배우까지. 당장 이 글을 쓰면서 기억나는 배우도 이렇게나 많다. 이제 ‘아역배우’라고 따로 분류하는 것이 무용할 따름이다. 이런 분류는 오히려 배우가 소화 가능한 캐릭터의 폭을 줄이는 일일뿐더러 아역배우가 연기를 잘 하면 ‘아역치고’ 연기를 잘 한다는 평가절하로 쉽게 빠지게 된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지에 따라 나도 모르는 새 고정관념이 생기기도 하고 편견이 자리하기도 한다. 기존에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언어에도 잘못된 표현이 없는지 돌아보고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는 일은 지성적 활동인 동시에 건전한 성찰이다. 또한 한 집단, 특히 사회적 소수자를 임의로 분류하고 배제하는 언어는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어 지양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그 캠페인의 일환으로 해시태그와 함께 이 글을 쓰며 스스로의 언행을 다시금 돌아본다. 글을 쓰는 날짜는 크리스마스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른이 어린이를 내리 누르지 말자’고 했던 말씀을 생각하며 차별 없이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