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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치욱 Feb 07. 2021

주류경제학이 놓친 노동자 <미안해요 리키>

경제학을 배우면서 떠올린 어떤 물음표

경제학을 배우는 보통의 대학생이라면 미시경제학의 요소시장 부분에서 후방굴절 노동공급 개념을 접하게 된다. 이는 임금이 증가하면 노동 공급이 증가하다가 임금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증가하면 노동 공급은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을 말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우선 노동자는 24시간을 노동과 여가에 배분한다고 가정한다. 후방굴절 노동공급은 일정 수준에서는 ‘임금이 올라갈수록 여가의 기회비용이 상승하여 노동이 증가하는 대체효과’보다 ‘임금의 상승으로 인한 소득의 증가로 인해 여가 시간을 늘리는 소득효과’의 크기가 더 커서 ‘임금의 상승이 노동량을 감소’시킬 때 발생한다. 예를 들면 시급이 올랐을 때 하루에 4시간 일하던 사람은 노동시간을 늘려 돈을 더 벌고 싶지만 10시간을 일하던 사람은 휴식을 위해 오히려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다. 보통의 수업에서 후방굴절 노동공급은 이 지점까지 설명되고 넘어간다.


후방굴절 노동공급곡선(출처=두산백과)


하지만 임금이 하락하는 경우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글에서 블루칼라의 시인 켄 로 감독의 최근 영화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를 통해 주류경제학이 말하지 않는 지점을 짚어보려 한다.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오마주한 장면(출처=네이버 영화 DB)


<미안해요, 리키>의 주인공 리키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아내와 함께 두 자녀를 양육하며 넉넉하지는 않지만 단란한 삶을 꾸려간다. 어느날 그는 빠듯한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택배 회사에 취직한다. 회사의 관리자는 리키에게 자기 사업의 주인으로서 성실히 일한 만큼 얻어갈 수 있다며 격려를 하지만 그것이 재난의 시작이었다. 리키는 회사에 취직했다지만 사실은 개인사업자로서 회사와 계약관계에 놓여있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신분이 되었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일하지만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다는 점은 노동자에게 섬뜩한 사실이다. 그리고 감독은 리키를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고통의 굴레로 빠뜨리며 관객에게 이 사실을 전한다.


이 영화를 본 이후로 르노 마스터 차종을 어쩌다 길에서 보면 뜻모를 얄미운 마음이 든다.(출처=네이버 영화 DB)


우선 택배 업무를 위해 필요한 배달 차량부터 리키가 직접 구입해야 한다. 이미 많은 빚을 진 채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에 사정이 생기면 100파운드(약 15만원)의 벌금을 내고 대체 기사를 구해야 하고, 배송 중 도난 사고로 인해 회사 물품을 잃어버리면 온전히 노동자의 주머니에서 손실을 메운다. 그렇게 리키는 영화의 마지막에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배송 차량의 악셀을 밟으며 일터로 나아간다.




영화가 묘사하는 것처럼 생계가 빠듯한 노동자에게 임금의 감소는 오히려 더 많은 노동으로 몰고 간다. 앞서 설명한 경제학 개념을 적용하면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임금의 감소로 여가의 기회비용이 하락하여 노동량을 줄이고 여가를 늘리는 대체효과’보다 ‘임금의 감소로 소득이 줄어들어 급여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늘려야 하는 소득효과’가 더 큰 것이다. 고임금 노동자라면 임금이 하락해도 생활수준의 변동이 크지 않기 때문에 노동량을 늘리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저임금 노동자에게 임금의 하락은 곧 기초생활수준의 위협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노동량을 늘려서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바로 여기서 노동시장의 함정이 나타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노동자의 급여를 줄여도 이에 대한 반발로 노동력이 이탈하기는커녕 오히려 일을 더 하겠다고 나서니 급여를 줄일수록 이득인 것이다. 그렇게 과학적 관리론을 주창한 테일러(Frederick W. Taylor)의 ‘고임금 저노무비’는 온데간데 없고 기업가만 수지맞는 ‘저임금 저노무비’가 남는다.


물론, 고용주의 횡포를 막기 위해 ‘최저임금’이 존재한다. 하지만 주류경제학은 뻔뻔하게도 최저임금의 고용감소 효과만을 설명한다. 가격균형점보다 높은 최저임금으로 인해 노동시장에 초과공급이 발생하여 그만큼이 실업자가 되므로 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오히려 부정적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런데 실업자가 되어 실업급여를 받으면 실업급여는 노동자의 재취업 동기를 떨어뜨려 노동시장의 비효율성을 낳는다며 역시나 몰아세운다. 결국은 노동의 가격도 정부 개입 없이 시장에 맡기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거다. 주류경제학 어디에도 저임금 노동자의 진짜 목소리는 담겨있지 않다.


최저임금과 실업(출처=매일경제)




주류경제학이 놓친 노동자 리키, 그러나 이는 비단 경제학 분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우리는 사회 전반에 기득권의 목소리가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한다. 노동자의 파업과 농성에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기업가의 비리에는 ‘사업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지 않던가. 노동자가 왜 일터를 떠나 거리로 나오게 되었는지는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다.


택배노동자의 시위 장면(출처=뉴시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지배한 작년, 노동자에게는 유난히 혹독한 시기였다. 살인적인 노동환경으로 인해 많은 택배 노동자가 정말로 목숨을 잃었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누더기가 되어 본회의를 통과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놓치고 나서야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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