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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치욱 Mar 08. 2021

페미니즘으로 바라본 <미나리>

세계 여성의 날을 축하합니다.

개봉 전부터 각종 시상식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골든글로브 어워즈 외국어영화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문화계에 다시금 인종차별 논란을 던진 화제작 <미나리>를 드디어 극장에서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두고 ‘다정하다’는 평이 많아서 겨우내 마르고 지친 마음에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기대했다. 그리고 다행히 따뜻하고 말랑해진 마음을 안은 채 너무나 만족스럽게 극장에서 나왔다.


<미나리>는 보편적 정서를 자극하는 소재와 매끄러운 스토리텔링으로 많은 관객들이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영화였다. 다만 종반부의 장면 때문에 영화의 평가가 갈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순자'는 '제이콥'이 쎄가 빠지게(전라도 방언) 일궈놓은 농작물이 담긴 창고를 불태운 것일까. 급작스러운 패가망신 뒤에 거의 곧장 영화가 끝나기 때문에 대다수의 관객은 당황한 채 극장을 빠져나오게 된다. 그래서 네이버 영화의 <미나리> 관람객 평점을 보면 결말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의견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 글은 결국 영화가 선택한 결말을 내 나름대로 해명하기 위해 쓰였다.


네이버 영화의 ‘미나리’ 관람객 평점.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미국으로 온 한인 이민자 가족의 가장 '제이콥'은 아칸소의 나대지를 매입하여 번성하는 농장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농장이 자리잡기까지 생계를 위해 아내 '모니카'와 함께 근처 공장에서 상품가치가 없는 수컷을 암컷과 분류하는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게 된다. 어느 날 공장에 놀러 온 아들 '데이빗'에게 '제이콥'이 담배 한 대 빨면서 하는 말.


“숫놈은 맛이 없어. 맛이 없고 쓸모가 없어. 그러니까 우리는 꼭 쓸모가 있어야 되는 거야.”


폐기된 수컷 병아리를 태우는 공장 굴뚝의 연기와 '제이콥'의 담배 연기가 맞물리면서 묘한 인상을 남긴다. 그렇다. '제이콥'이 증명하려는 쓸모는 가장으로서, 남성으로서의 쓸모인 것이다.


<미나리> 스틸 컷(출처=네이버 영화 DB)


여기서 학부 수준의 경영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익숙한 네덜란드의 비교문화학자인 홉스테드(G.Hofstede)가 국가문화의 비교를 위해 제시한 문화차원이론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특히 그가 제시한 국가문화의 네 가지 차원(이후 한 개가 더 추가됨) 중 ‘남성문화와 여성문화(masculinity vs femininity)’를 살펴보자. 남성문화가 강하다는 것은 사회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구분하고, 남성이 사회를 지배하는 정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물질적인 성공에 대해 더 강한 선호를 나타낸다. 반면 여성문화가 강하다는 것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심지어 여성이 더 강한 것이 아님을 주의하자). 그리고 구성원에 대한 배려, 삶의 질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여성문화가 강한 국가로 북유럽 국가들을 예로 든 반면 남성문화가 강한 국가의 예시로 일본이 꼽혔다(홉스테드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알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가부장적인 문화적 특징이 두드러지는 일본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한국인 이민자 '제이콥' 역시 가부장적인 가장이다. '데이빗'이 잘못을 하면 회초리를 들어 훈육을 하려는 모습에서는 폭력을 통해서라도 가족의 가부장적 질서를 세우려는 의도를, 농장을 자신이 맡을 테니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도 좋다는 대목에서는 경제적 책임은 남성이 부담하고 자녀 양육은 여성이 부담하게끔 하는 성 역할의 분리가 머릿속에 자리잡았음을 살펴볼 수 있다. 짚고 넘어갈 점은 '제이콥'이 가부장적 남성이라는 사실이 부정적으로 묘사된 것은 아니다. 다만 1980년대 한국의 시대적 상황이 그대로 반영된 개인이며, '제이콥'의 이러한 특성을 명확히 하는 것은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한편 부부가 일을 하러 가는 낮 시간동안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게 되자 드디어 '모니카'의 친정엄마, '순자'가 등장한다. 고춧가루, 멸치와 함께 미국 땅을 밟은 한국의 할머니 '순자'는 의외로 요리도 못하고 애들 볼 줄도 모른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하는 것은 다름아닌 화투. 전형적인 친정엄마의 스테레오타입을 탈피한 이 독특한 할머니는 극에서 '제이콥'과 반대되는 지점에 서있는 인물이다.


<미나리> 스틸 컷(출처=네이버 영화 DB)


수컷의 쓸모를 가르치는 '제이콥'과 달리 '순자'는 '데이빗'을 보고 "Pretty boy"라고 말한다. 그러자 '데이빗'은 나는 예쁘지 않고 잘생겼다(“I'm not pretty, I'm good looking!”)며 발끈한다. 남자는 늠름하고 잘생겨야하며 여자는 온순하고 예뻐야 하는데, 심장이 좋지 못해 활달하게 뛰놀지 못하는 '데이빗'에게 '순자'의 말은 콤플렉스를 건드린 것이다. 또한 간밤에 이불에 지도를 그린 '데이빗'을 보고 순자가 하는 말.


“페니스 브로큰! 딩동 이즈 브로큰”


남성성을 갖지 못한 '데이빗'에게 결정타가 될 수 있는 이 말을 너무나 귀엽고 천연덕스럽게 해버린다.


그리고 '순자'는 '데이빗'과 함께 냇가에 가서 미나리 씨를 뿌린다. 씨를 뿌리며 '순자'는 "미나리가 어디서든 자라며 누구든지 다 뽑아먹을 수 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다 뽑아먹고 건강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제이콥'이 기르는 농작물과도 대비된다. 토양과 물 등의 자원을 무지막지하게 뽑아먹고도 모자라 가족이 써야 할 물까지 뺏어먹고 자라는 '제이콥'의 농작물은 어쩐지 미국에서 성행하는 산업화된 농업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또한 물질적인 성공을 의미하는 '제이콥'의 농작물은 남성적이고, 부자와 빈자 모두를 먹이는 미나리는 여성적이다.




어쨌든 농장의 농작물과 미나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잘 자라주었고, '제이콥'은 한인 식당에 자신의 농작물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는데 성공한다. 드디어 바라던 성공의 길이 열리는 순간 '모니카'는 '제이콥'에게 이별을 고한다. 고난 속에서 가족보다는 농장을 선택하는 남편에 의지하며 더는 살 수 없다는 것. 그동안 둘의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져 있었고 결국 서로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말로 가는 듯 싶었다. 그리고 할머니만 오면 부모님이 싸운다며 싫어했던 '데이빗'은 이렇게 된 상황에 '순자'를 원망할 뿐이다.


하지만 '순자'는 문제의 종반부에서 가족을 가르는 역할이 아니라 가족을 뭉치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급속도로 몸이 나빠진 '순자'는 농장의 쓰레기를 태우다 실수로 불을 내게 되고, 불은 삽시간에 번져 농작물이 저장된 창고를 모조리 태운다. 앞선 식당 계약을 끝내고 돌아온 '데이빗'과 가족들은 불타는 창고 안에서 농작물을 꺼내려고 애쓰지만 이내 포기하고 망연히 화재의 현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가족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 뒤이어 마지막에 '제이콥'은 '데이빗'을 데리고 냇가의 미나리를 보러 가서 "할머니가 자리를 참 잘 고르셨다"고 말한다.


결국 '순자'는 극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이를 결말로 이끌어가는 수법)로 기능한 것이다. 아내 '모니카'의 진정한 바람을 무시한 채 경제적 성공만을 좇는 '제이콥'에 의해 가족이 붕괴 직전까지 갔을 때 '순자'의 방화가 이를 막아냈다. 그리고 '제이콥'의 마지막 말은 '순자'가 남긴 어떤 가르침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애들도 한 번쯤 아빠가 뭔가 해내는 걸 봐야 될 거 아니'냐고 했던 '제이콥'은 결국 '미국에 가서 서로를 구원해주기로'했던 '모니카'의 길을 가게 된다.


<미나리> 예고편 캡쳐(출처=A24 공식 유튜브 채널)




영화가 가족의 화합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적 해석을 하기에 다소 헐거운 면이 있지만 여기서의 ‘가족’은 다른 인간적인 관계로 대체될 수 있는 변수라고 생각한다. 한편 영화에서 관계를 봉합시키고 '데이빗'을 건강하게 해준 미나리같은 존재인 '순자'는 '데이빗'에게 ‘Strong Boy’라고 말하며 남성성의 결여와 강인함은 양립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이는 물질적 성공이 중시되어 극심한 양극화에 시달리는 미국과 여전히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하는 한국 모두에 유효한 메시지이다. 그래서 미나리는 페미니즘적 해석을 해도 여전히 보편성을 가진 작품이다.


끝으로 영화의 대사 하나를 더 빌려 하고 싶은 말을 남긴다.


뱀을 보고 무서워하는 '데이빗'에게 '순자'는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거 보다 더 나은 거야. 숨어있는 게 더 위험하고 무서운 거란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최근에도 보이지 않는 혐오에 맞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당당히 싸웠던 ‘Strong’한 성소수자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이 지면을 통해 그들에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진심어린 사과와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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