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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치욱 Mar 11. 2021

영화 <비에 젖은 나방> 리뷰

아름답지도, 날지도 못하는 청춘에게

영화 <비에 젖은 나방> 포스터 (제공 : 퍼니콘)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가수 윤도현의 유명한 노래 <나는 나비>의 한 구절이다.


우리나라의 경쟁적인 교육과 입시제도 속에서 성인이 된 청춘들은 애벌레 때부터 날개를 펴고 힘차게 날아오를 나날을 상상을 해왔다. 그러나 막상 번데기를 나온 순간 맞닥뜨린 광경은 자유롭게 날기는커녕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냉정한 현실의 연속이다.


여기, 고단한 청춘에게 상투적인 위로를 건네기보다 그저 머무르며 곁에 있어주는 세심한 단편영화가 있다.



‘비에 젖은 나방’은 2019년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 <출입구>와 <망치>를 연출한 전민혁 감독의 작품이며 주연을 맡은 김예은 배우는 현재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는 배우로 성장 중이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를 통해 이름을 알렸으며 차기작으로 배우 최희서, 오다기리 죠가 주연을 맡은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현경(김예은 분)은 시를 쓰는 사람이지만 작은 회사의 야간 경비 업무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일하면서 틈틈이 시를 써보지만 시집을 출간하여 시인으로서 행보를 이어가는 친구 미진(최수진 분)과 자신의 처지가 자꾸 비교된다. 한편 새로 입사한 우진(안재현 분)과 함께 일하면서 시 쓰는 일에 참견하는 우진이 귀찮게 느껴진다.


우진은 마냥 밝은 성격의 소유자로 현경에게도 붙임성 좋게 다가가며 직장 생활을 하지만 업무 도중 실수를 저지르고 결국 해고당한다. 현경은 우진이 업무와 맞지 않는다는 말을 소장(강영구)에게 전하고 끝내 우진을 도와주지 않는다.


우진은 현경이 떨어뜨린 작은 노트를 자리에 남기고 떠났고, 현경은 노트에 적힌 자신의 시를 바라본다.




비에 젖은 나방은 영화 초반에 현경이 순찰을 돌다 발견하는 사물이며 극 중에서는 현경이 쓴 시의 소재가 되고 영화 전체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시의 한 구절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햇빛을 사랑하는 나비가 되고 싶었지만 달빛을 사랑하는 나방으로 태어났다. 나는 비에 젖은 나방을 보았다.”


우리 사회는 흔히 긴 성숙의 시기를 거쳐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모습을 이야기하지만 세상에는 나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꿈틀대는 재능 덕분에 커서 빛나는 나비가 될 것이라고 믿고 주변에서도 격려하지만 점점 평범해져 가는 자신을 마주하게 되고 결국엔, 내가 나비가 아니라 나방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래서 현경과 우진을 바라볼 때 애처로움과 동질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시인이 되고 싶지만 막막한 미래 때문에 경직된 시를 써내는 현경과 고졸 출신에 순진하지만 작은 일자리도 지키지 못하는 우진. 이들이 느슨하게 정을 주고받지만 결국 스치는 인연 정도로 끝나는 모습마저도 삶에 치여 터놓고 인간관계를 맺을 여유를 갖지 못하는 지금의 청춘과 닮아있다.



시를 다루는 영화답게 작품은 시적인 순간들로 채워졌다. ‘그대가 나에게 빛을 전해주러 온다.’는 구절은 현경이 우진에게 랜턴을 전해주는 모습으로, ‘비에 젖은 나방’은 현경이 비를 맞는 모습으로 형상된다. 우중충한 일상을 예술적 순간으로 승화시키는, 영화라는 매체가 주는 감동이 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나타나있다.



아름답지도 날지도 못하는 비에 젖은 나방 같은 우리가 스스로 가엾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딘가에,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저 곁에 머물러주는 존재가 있다고 믿고 싶다. 마치 이 영화처럼.



*해당 글은 독립ㆍ단편영화 배급사 '퍼니콘'이 운영하는 인디매거진 '숏버스'에 게시된 홍보용 리뷰입니다.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0920551&memberNo=16396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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