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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치욱 Jun 10. 2021

영화보기는 마치 별을 바라보는 행위같아

Interlude

내가 현재 마케팅을 맡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청춘 선거>(2021)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여성 최초로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제1야당 후보를 제치고 지지율 3위를 기록한 녹색당 청년 정치인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는 기성 정치인들이 지배하는 정치판에 균열을 일으키며 멋진 활약을 했지만 2021년인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정치계를 떠나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정당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사건과 반응 사이의 시차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영화를 본다는 것은 별을 보는 일과 비슷하구나.'


<청춘 선거> 스틸 컷(출처=네이버 영화 DB)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우리가 보는 시점 이전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것이 배우의 연기든 실제 상황을 기록한 것이든. 그것을 카메라가 담아내면 시간이 흐른 뒤 관객은 스크린을 통해 과거의 일들을 바라보게 된다. 별을 보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 우리가 관찰하는 별빛은 이미 수십수백수천수억년 전의 과거에 발생한 사건의 결과다. 그것이 시간을 두고 하늘이라는 스크린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지구인에게 관찰되는 것이다. 즉, 영화는 별이다. 영화가 빛의 예술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 비유가 더 잘 달라붙는 느낌이 든다.


과거에 이미 종료된 사건이 시간차를 두고 현재의 사람들에게 감흥을 준다는 사실은 새삼 신비롭게 다가온다. 비단 수 년 전의 영화 뿐만아니라 수십 년 전의 영화들은, 거기에 출연한 사람들이며 만든 사람들 모조리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여전히 후대의 사람들에게 미적 즐거움과 영감을 선물한다.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1953)는 지금도 수많은 영화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1927)와 김기영의 <하녀>(1960)를 보고 짜릿함을 느낀 동시에 시간이 흘러도 유효한 메시지를 읽고 감탄했던 경험이 있다.


<메트로폴리스>와 <하녀>의 포스터(출처=네이버 영화 DB)


영화보기와 별보기를 연결짓는 이 짧은 글은 필연적으로 <라라랜드>(2016)에 도착한다. <라라랜드>는 극 중의 두 인물이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별을 보는 것처럼 영화계를 수놓은 별들을 절실히 관측해내는 의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고전 영화에 대한 헌사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영화에는 고전적인 촬영기법과 화면비율이 사용되었으며 고전영화를 오마주한 많은 장면들을 찾을 수 있다. 꽉막힌 한낮의 고속도로에서 대규모의 뮤지컬을 선보이는 시퀀스는 <로슈포르의 연인들>(1967)을,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해질녘 푸르른 야경에서의 탭댄스 장면은 <셸 위 댄스>(1937)와 <밴드 웨건>(1953)을 오마주했다. 이밖에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 <사랑은 비를 타고>(1952), <파리의 미국인>(1951) 등의 고전 뮤지컬 영화를 정성스럽게 오마주하며 하나하나 되짚는다(이 중에서 내가 본 작품은 하나도 없음을 고백한다).


<라라랜드>가 <밴드웨건>을 오마주한 장면(출처=유튜브 채널 'Sara Preciado')


별은 별들이 모인 성운(星雲) 속에서 탄생한다. <라라랜드>는 이전의 영화들 속에서 탄생한 새로운 별이다. 우리는 이 별이 내뿜는 빛을 캄캄한 밤하늘같은 극장에서 바라보며 오래도록 매료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비롯해 이미 만들어진 영화가 빚어낼 또다른 빛나는 별의 탄생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나는 별을 보듯 영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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