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선택은 ‘번복’이 아닌 ‘반복’
20170207
아쉽게도 국내 제목은 로버트 저메키스의 명작 ‘컨택트’와 겹쳐버린 이 작품은 흔한 소재로 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Sci-Fi 영화였다. 먼저 이 영화는 그동안 많은 영화들이 다루었던 ‘외계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외계물체가 지구에 도달해서 벌어지는 모습들이 다른 영화들과 달리 담백하고 현실감 있게 그려져서 몰입도가 높았다. ‘언어’를 매개로 외계인과의 구도를 긴장감 있게 전개한 것 역시 흥미로웠다. 이제 외계인이 나오면 곧장 ‘지구침공’으로 연결되는 뻔한 영화들은 점점 설 자리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얼마 전 개봉했던 ‘인디펜던스 데이2’의 참담한 실패만 봐도...).
또한 이 영화는 ‘시간’을 다루었다. ‘시간’이라는 소재는 실제 과학에서나 영화에서나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때때로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거나 과거,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적어도 지구에서는 누구에게나 시간은 직선의 형태로 똑같이 흐른다. 그것을 거스르려는 과학의 시도는 실패했고, 시간여행은 영화속에서나 가능했다. ‘컨택트’도 다른 영화처럼 시간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다만 차이점은 다른 영화들과 달리 ‘시간’이라는 컨셉트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마지막에 공개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해주었는지도 모른다. 미래를 볼 수 있는 ‘루이스’에게 시간은 남들과 달리 직선형이 아닌, 처음과 끝이 만나고 미래와 과거가 만나는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힌트는 많이 등장했다. ‘루이스’의 딸 ‘한나(HannaH)’의 이름이 회문(回文)인 점과 외계인의 언어가 ‘원’의 모양인 점, 외계물체가 ‘12’개 착륙했다는 점 등등.. 이런 힌트들이 나중에는 퍼즐조각처럼 맞춰져 재미를 준다(물론 내가 못 찾은 뭔가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어찌 보면 닳고 닳을 정도로 많이 사용된 ‘시간’이라는 소재에서 또다시 재미를 뽑아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진짜 이야깃거리는 따로 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라는 원작 소설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삶에 대해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주인공은 미래를 볼 수 있었지만 ‘미래를 볼 수 있다 해도 지금 감정에 충실하고 싶다던’ 남자와 결혼하여 희귀병을 가진 딸을 낳는 선택을 번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행의 결말을 알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매 순간을 기뻐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 전 까지도 내게 과거를 바꿀 기회가 있다면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서 과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때 그 행동이 아닌 다른 행동을 했었다면..’ 하고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 그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그때와 다른 선택들을 했다면 지금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를 바꾸어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바뀐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더 후회로 남을 것이다. 지금 나의 삶에 감사하고 나의 소중한 인연들에 더 감사하며 살고 싶다.
‘영화’라는 언어로 다가온(arrival) 감독과 나 사이에 소통이 잘 이루어졌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