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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치욱 Sep 24. 2021

'독립영화'와 '마케팅'은 양립 가능한 개념일까

시장성(marketability)이 낮은 재화를 마케팅한다는 것.

마케팅하던 한 영화는 분명 좋은 영화였지만 관객들의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 영화의 감독은 개봉 후 sns 리뷰 이벤트를 조금 더 노출량이 높은 매체에서 진행하길 원했고, 온라인 마케팅사에서는 인기 매체는 니즈가 없을 것 같으니 그냥 제작사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이벤트를 진행하자는 의견이었다.


나는 오프라인 마케팅사 소속인지라 이 사안에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오프라인 마케팅사는 제작(혹은 배급사)와 온라인 마케팅사의 중간에 끼어있는 위치다보니 감독과 온라인 마케팅사 양쪽의 의견을 듣고 전달하며 본의아니게 고통받았다. 두 입장 다 너무나 이해되는 상황에서 난처해진 나는 결국 감독에게 직접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주십사 온라인 마케팅사에 요청드렸다. 온라인 마케팅사는 감독에게 메일로 현재 영화가 놓인 흥행 상황에 대한 현실적인 진단과 함께 정중히 의견을 전달했고 그것으로 상황이 종결됐다.


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가슴 한 구석에는 씁쓸함이 자리했다. 감독에게 자신의 영화는 자식과도 같은 소중한 존재일텐데 이렇게 개봉 후 며칠 있지 않아 마케팅에 힘을 더 써보지 못하고 부가서비스(IPTV나 VOD 등)의 강을 건너게 되면 큰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영화의 죽은 시장성을 소생시키는 화타가 아니라 그저 일개 신입 마케터이기 때문에 내 영화 살려내라는 감독의 무언의 외침에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그러면서 생각해봤다. 과연 '독립영화'와 '마케팅'은 양립 가능한 개념인 것일까.




포털사이트에 '독립영화'를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사전적 정의를 만날 수 있다. 독립영화는 '기존 상업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제작한 영화'라고 한다. 맞다. 그래서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에서는 맛보기 힘든 창작자의 실험정신과 개성, 독창성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대중의 취향에 맞는 영화는 많지 않기 때문에 보통 관객수는 상업영화의 1/100 수준이다(독립영화에서 1만 명의 관객수는 상업영화에서 100만 명의 관객수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물론 상영관과 상영횟수가 월등히 적은 것도 있지만 상업영화급 상영횟수를 채울 만큼의 잠재적 수요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같은 방법으로 '마케팅(Marketing)'의 정의를 검색해보자. 마케팅은 '생산자가 상품 혹은 용역을 소비자에게 유통시키는 데 관련된 경영 활동'을 말한다. 즉, 시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켜주는 행위가 마케팅이다. 영화 산업에서는 '배급'과 '홍보마케팅' 직무가 마케팅의 주체가 된다. 마케팅은 사전적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상품이 소비자에게 활발히 유통되었을 때, 간단히 말해서 '잘 팔렸을 때' 성공적인 마케팅이 된다.


그런데 독립영화를 판매하는 일은 영 쉬운 일이 아니다. 상업영화는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제작되어 시장에서 거래되기 적합한 의미의 상품이라면 독립영화는 앞선 정의에서 알 수 있듯 생산자의 니즈에 맞춰 제작된 상품이다. 결국 독립영화 마케팅은 소비자를 만날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닌 상품이 소비자를 만나게끔 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독립영화 마케팅을 하다보면 개성 넘치는 이야기를 되도록이면 많은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보편적 정서를 가진 이야기처럼 보이게끔 노력하게 된다. 예고편이나 포스터 등에서는 어두운 면은 가리고 밝고 드라마틱한 모습을 부각하고 보도자료나 전단 등의 글자료에서는 '모두', '보편적', '따뜻한' 등의 워딩을 사용해 예비 관객들의 심리적 문턱을 낮춘다. 물론 그런 톤업된 홍보마케팅이 영화의 본질을 왜곡할 정도라면 지양되지만 가끔은 이 영화를 이 톤과 워딩으로 마케팅하는 것이 맞는지 스스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한편 요즘의 독립영화 관객수는 코로나19 이후 극도의 침체상황이다. 그래서 차라리 홍보마케팅비에 드는 비용을 극장 티켓 구매로 전환해 관객수를 늘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도 잠시 생각했다(물론 바람직하지 않고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영화에 대한 반응이 잠잠한 만큼 일이 적어서 나름 좋기도 하지만(이렇게 나쁜 생각을 할 수 있다니) 계속되는 침체상황에 마케터로서 다소 힘이 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독립영화의 마케팅은 정말 무용한 행위일까. 그래서 내가 독립영화를 만난 경험을 떠올려봤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이고 나한테도 관련 에세이로 인권 공모전 수상의 기쁨을 안겨줬던 <벌새>라는 작품을 군대를 갓 제대하고 만났다. 김보라 감독과 이동진 평론가의 GV(Guest Visit)를 통해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했는데 영화 자체도 너무 좋았지만 GV 덕분에 더욱 풍성한 극장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러한 GV를 기획하는 것도 영화마케팅이 하는 일이다.


창작자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비슷한 감정과 경험을 지닌 관객을 만나 마음 속에 커다란 위로와 감동을 주는 것. 독립영화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소중한 순간이다. 아마 홍보마케팅이 없다면 미디어의 적극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는 독립영화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줄 관객들을 보다 많이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관객들이 영화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도록 영화의 감독과 배우와 직접 소통하는 GV나 각종 굿즈 등을 기획하는 것 역시 홍보마케팅의 담당이다.


독립영화와 마케팅은 언뜻 어울리지 않는 관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독립영화만큼 홍보마케팅이 필요한 분야가 또 없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나의 영상물이 관객을 만나 비로소 영화가 되는 순간을 떠올리며 오늘도 힘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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