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마케터라는 비교적 생소한 직업을 갖게 된 이후로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저런 질문을 받곤 한다. 그 중에서 좋아하는 취미가 일이 되었는데 여전히 영화 보는 게 좋냐는 질문도 빠지지 않는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늘 조금의 망설임 없이 "Yes!"
글을 들어가면서 내 기억 속 멋진 부추전 가게 사장님의 이야기를 꺼내본다. 내가 나온 대학교 근처의 전농로타리시장에는 500원에 부추전을 파는 작은 노점이 있다. 매스컴을 몇 번 탄 적이 있고 근래에는 식성 좋다는 유튜버들이 부추전을 쌓아놓고 먹방을 찍곤 했다. 동네 사람들이 오며가며 빡빡한 주머니사정에도 부추전을 넉넉히 먹거나 포장해가는 이 가게는 중년의 아주머니께서 운영중이시다. 나도 그 알 수 없는 정다움과 편안함 때문에 가끔씩 들르곤 했다. 어느 날 그 가게에서 혼자 부추전을 느긋하게 찢으며 옆 자리의 아주머니와 가게 사장님의 대화를 엿들었다(거리가 너무나 가까웠기 때문에 잘 들린다).
기억을 얼추 되살린 대화 내용은 사장님께서 퇴근하고 저녁으로 전을 부쳐 먹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맞은 편의 아주머니께서 깜짝 놀라며 "아니 하루종일 기름냄새 맡으면서 전 부치면서 전 부쳐 먹는 게 좋으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나는 전 부쳐 먹는 게 좋아. 이것(부추전 가게)도 천직인가봐"라며 담담히 답했다. 그걸 들으면서 사장님이 되게 멋있어보였다. 수십 년을 한 자리에서 전을 부치면서도 물리지도 않고 여전히 따로 식사로 전을 부쳐 드신다니. 그리고 담담하게 '천직'이라는 말을 하시는 모습에서는 한 영역에 뿌리내린 사람의 단단한 연륜이 느껴졌다.
내가 그 부추전 가게 사장님처럼 될 수 있을까. 영화마케터가 된 지 1년도 채 안되긴 했으나 아직은 여가 시간에 영화 보는 게 너무 좋다. 어두운 공간에서 영화가 내뿜는 빛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약 두 시간을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 흔히들 덕업일치(덕질과 직업이 일치했다는 의미)는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이전 글에서 밝혔듯 내 일은 영화 산업에서 행해지는 노동이지 엄밀히 말해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의 노동이 영화 보는 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극장이나 sns 등에서 보여지는 다른 영화들의 마케팅 아이템들을 보면 이걸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들인 마케터들의 노고가 떠오르면서 절로 몸서리가 쳐진다.
아무튼 영화마케터가 되고 나서의 걱정 중 하나가 내 유일하고 소중한 취미인 영화 보기에 마음이 떠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괜한 기우였고, 오히려 바쁜 일상을 마감한 후 소중한 여가시간에 영화를 봐서 그런지 전보다 더 흠뻑 영화를 감상하게 되었다. 느낌이 좋다. 나도 세월이 지난 후 누군가 "영화 일 하면서도 아직도 영화 보는 게 좋으세요?"라고 묻는다면 담담하게 답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