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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치욱 Sep 19. 2021

내가 독립영화 마케터라서 좋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보람과 기쁨

앞선 글에서 밝혔듯 나는 상업영화 마케팅 회사와 독립영화 마케팅 회사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면(취준생 입장에서는 판타지...) 망설임 없이 독립영화 회사를 택할 것이다. 독립영화의 홍보마케팅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은 정말 돈 주고도 살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특히 독립영화는 누군가의 처음을 함께 한다는 보람이 크게 다가온다.


보통 영화는 개봉 2주에서 열흘 전에 기자 및 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미리 영화를 보여주는 언론/배급 시사회(이하 언배시사회)를 개최한다. 여기서 기자들이 영화를 보고 매체에 영화를 리뷰 등의 방식으로 노출시켜주면 그만한 홍보 효과가 없다. 그리고 언배시사회가 끝나면 보통 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참석하는 기자간담회가 있어서 기자들과 영화에 대한 질의응답 및 사진 촬영 시간을 갖게 된다.


상업영화는 언배시사회 말고도 제작보고회 등의 소위 '공식 석상'이 많이 있지만 독립영화는 언배시사회 후의 기자간담회 말고는 감독이나 배우가 공식 석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발언할 기회가 딱히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독립영화의 감독이나 배우들은 그 영화가 첫 장편영화 데뷔작인 경우도 많아서 기자간담회 역시 처음 참여하게 된다. 그때 배우들이 첫 기자간담회의 설렘과 긴장이 역력한 모습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하는 모습을 나는 현장에서 지켜보게 된다. 그러면서 이들의 처음에 내가 누가 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홍보마케팅을 진행해야 하겠다는 소박한 다짐을 한다.


또한 정말 어렵게 어렵게 돈을 모으고 사람을 모아서 첫 장편영화를 스크린에 올리는 감독들을 많이 접한다. 이들에게 자신의 첫 영화는 자식과도 같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일텐데 내가 이 작품을 홍보마케팅 하는구나 생각하면 너무나 영광스럽다. 영화사 진진 김난숙 대표의 말마따나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신카이 마코토도 처음부터 유명 감독이 아니었다.' 또한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서 쏟았던 열정이 작품과 프로덕션 노트 등의 흔적을 통해 전해지면 나도 덩달아 일에 열정을 쏟게 되고 자연스레 큰 보람을 느낀다.


상업영화는 솔직히 말해서 홍보마케팅을 별나게 하지 않아도 유명 배우나 감독들이 작품에 참여하기 때문에 매체들이 알아서 주목해주고 인터뷰를 신청한다(물론 상업영화의 홍보마케팅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독립영화 마케팅에 비해 훨씬 사이즈도 크고 흥행을 좌지우지한다). 그러나 독립영화는 홍보마케팅이 없다면 영화나 배우, 감독이 세상과 만날 기회가 정말 드물기 때문에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내가 독립/예술영화를 통해 느꼈던 위로와 기쁨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답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약간의 자랑거리다. 영진위에서 운영하는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kobis.or.kr)의 영화인 검색창에 내 이름을 입력하면 당당히 '영화인'으로서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무려 필모그래피까지 뜨는 자타공인 영화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내가 메인으로 진행한 영화는 DB 등록을 안했는지 우리 회사에서 동료가 메인으로 진행한 영화들만 아직 내 필모그래피에 뜨는 상태다.


최근에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도 업계 관계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영화제 분위기가 활기를 잃어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나는 관객을 포함해서 처음으로 큰 규모의 영화제에 참석한 것이라 다소 들뜬 마음이었다. 영화제에 일하러 간 것은 대표님이고 직원들은 그냥 하루 동안 영화를 보러 간 것이라 편하게 영화를 감상했다. 좋은 작품들을 미리 만날 수 있었고 다큐멘터리영화의 매력을 다시금 느꼈다.


마지막으로 내가 지금까지 영화마케팅을 하면서 작품을 통해 좋은 분들만 만났다. 첫 메인 담당 영화였던 2018년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첫 여성 청년 후보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청춘 선거>의 주인공 고은영 님은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셨다. 실제로 뵌 고은영 님은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 이상으로 유쾌하고 지혜로우며 따뜻한 분이었다. 지금은 정치계를 떠나 제주도에서 살며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재미나게 지내고 계셔서 보기 좋다.


기억의 미로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인물들의 내면을 그린 극영화 <그대 너머에>의 박홍민 감독은 영상 언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분이었다. 실험적인 촬영 기법과 미장센은 영화를 통해서도 드러나고, 홍보마케팅 과정에서 직접 홍보영상 등도 편집해주시는 등 감독님의 영상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밖에도 선한 마음을 나눠준 배우분들과 PD님들을 비롯해 영화로 만난 좋은 인연들이 기억난다.




좋은 영화를 만났기에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회사의 라인업이 내 취향을 떠나서 마케팅을 했을 때 부끄럽지 않은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를 일감으로 받아오시는 대표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에 같은 영화 두 번 보기, 평론 쓰기, 직접 영화 만들기를 꼽았다. 그러나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에 위 세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나는 홍보마케팅을 통해서 영화에 대한 사랑을 행동에 옮기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 홍보마케팅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엄청 받고 직업 안정성도 낮아 불안한데 과연 나는 이 방식의 사랑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인생은 계산대로 흘러간 적이 없으니. 우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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