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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치욱 Sep 29. 2022

어쩌다 영화마케터가 되셨습니까(下)

자소설이 아닌, 거짓 없는 자기소개서에 담은 나의 진심에 대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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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남은 고민은 너무나 빈약한 나의 이력서. 그나마 지난해 교내 인권공모전에서 영화 <벌새>의 각본집을 읽고 쓴 에세이로 우수상을 탄 것이 있지만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매년 개최하는 도시영화제 자원봉사단이라도 할 걸 후회하며 영화 관련 대외활동을 알아보았다. 그 중에 단편영화 배급사에서 sns서포터즈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면접 없이 서류심사만 이뤄졌기 때문에 간단히 지원서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렸는데 합격자 명단에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섰는데 며칠 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해당 배급사에서 나를 단편영화 리뷰 필진으로 선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원서에 첨부한 영화 리뷰(인권공모전 수상작이었다)를 보고 sns서포터즈보다는 전문적인 글을 쓰는 리뷰어로 선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단편영화 리뷰어 활동을 2월 말부터 약 두 달 동안 하게 되었다. 해당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영화 마케팅 업무를 진심으로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상업영화에 비해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다양성영화를 알리는 일이 내게는 큰 보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배급사에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연배우 인터뷰를 건의해서 성사시키기도 하고 리뷰 하나하나에 나름의 정성을 담았다.


단편영화 리뷰어 활동은 비록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영화 마케팅 업무를 하는 것이 보람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또한 영화 홍보와 직접 관련된 활동을 한 것이다보니 이후 서류합격률도 높아졌다. 이전에는 영화마케팅 채용 공고가 떠서 지원을 하면 서류 합격률이 제로였지만 이후에 원서를 냈을 때는 전부 합격을 하였다. 물론 연이은 서류 불합으로 인해 문제를 느끼고 자소서를 대폭 손 본 결과 자소서 자체가 어필이 되기도 했지만 스펙 한 줄이 추가된 것이 큰 힘이 되어준 것이다.




영화마케팅 취업 준비를 하면서 느낀 점은 내가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기업 취준생일 때는 서류나 면접에서 늘 거짓말을 해왔다.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조직에서 갈등을 해결한 경험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속으로 ‘아뇨 없는데요.’라는 말을 삼켰다. 그리고 과장된 에피소드를 대답했고 심지어는 없는 에피소드까지 만들어서 대답하곤 했다. 나중엔 그 에피소드가 진짜 내 경험처럼 느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영화마케팅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영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영화마케팅 업무를 왜 하고 싶은지 솔직한 마음을 녹여내기만 해도 충분했다.


영화마케팅 취준을 하면서 공기업 취준을 완전히 놓지는 못했다. 과연 취직이 될까 싶은 불안감도 있었고 그동안 공부한 것이 아깝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공기업에 마음이 떠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급기야 올해 4월에 응시한 어느 기업의 필기시험 때는 문제를 풀다 말고 시험지에 낙서나 그리고 거의 반 포기 상태였다. 아마도 공기업 취준에는 지쳐버린 것 같았다.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에는 크게 4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워라밸. 급여. 직업안정성.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인가. 공기업은 4가지 중 워라밸과 직업안정성 두 가지를 충족한다. 급변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저 두 가지는 가장 매력적인 요소일 것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공기업으로 몰려든다. 반면 영화마케팅(혹은 영화산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저 4가지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인가’를 제외한 나머지 3가지를 버려야 한다. 객관적으로만 봤을 때는 직업적 매력이 낮은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시행착오를 겪어도 되는 젊은 나이라는 생각을 했다. 속된 말로 ‘나이만 믿고 덤비는’ 격이다. 뭐 영화 산업에서 일하는 것이 영~ 답이 안나온다 싶으면 블라인드 채용으로 나이 제한이 없는 공무원이나 공기업으로 다시 돌아가지 뭐.. 하는 대책 없는 낙관과 함께. 근데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내가 만약 공기업에 합격하면 직업을 바꾸기는 거의 불가능하겠구나. 극악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을 해서 입사하면 무탈하게 버티기만 하면 정년까지 안정적인 직장생활이 가능하다. 바꿔 말하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퇴사를 하려면 안정적인 직장을 버려야 한다는 큰 부담감이 존재한다. 많은 공기업이 이제는 지방으로 이전하여 높은 확률로 연고도 없는 곳에서 집과 회사만을 오가며 지내야 한다. 다양성 영화를 보는 것이 거의 유일한 낙인데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상영관이 서울에 많기 때문에 문화 인프라를 포기하는 것은 큰 타격이다. 그리고 공기업에서 하게 되는 일이 나에게 얼마나 보람될지도 모르겠다. 양적 가치 못지않게 질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공기업에서 몇 십년 동안 뭔지도 모르는 일을 하며 지내는 것이 가능할지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진로를 바꾸게 된 데에는 주변 친구의 영향도 있었다. 행정학과 동기들, 그리고 우리 학교 학생의 대부분은 일찍부터 정형화된 진로를 정해서 준비하곤 했다(그것이 나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그런데 동기 중에 하나가 자신의 꿈인 정치를 하겠다며 뛰어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소기의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 친구도 앞서 언급한 직업 선택의 4요소 중에서 3가지를 버린 삶을 살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친구에게 멋지다는 말을 하고 싶다. 고맙다는 말도.




이번에 합격한 곳은 주로 우리나라의 독립영화 마케팅을 담당해왔다. 그래서 더 기쁜 마음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나는 상업영화보다 다양성영화를 더 좋아한다. 이게 무슨 문화적 허영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며 상업영화도 각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다양성 영화로부터 많은 위로를 얻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스스로가 별나다고 느껴왔다. 남들이랑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다양성영화에서 그야말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나같이 독특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또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다수의 생각과 다른 나의 생각이 긍정되기도 하였고 새로운 세상을 배우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대중성을 위해 뻔한 이야기가 주로 나오는 상업영화에서는 얻기 힘든 점이다. 우리나라의 독립영화를 마케팅한다는 자부심을 아마 몇날 며칠은 해먹을 수 있으리라.


결국 영화마케터로서 영화 산업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영화 산업은 2019년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에 눈부신 양적, 질적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다음해 코로나19로 인해 전례없는 큰 타격을 맞으며 관련 종사자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의 앞날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 나아가려 한다. 영화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창작자에게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니 저를 봐서라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영화를 즐겨주시기를 당부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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