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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유 Aug 21. 2020

무용수 줄리

줄리는 파리의 작은 극단에 소속된 무용수다.

어려서부터 별달리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이 없었으나 몸을 움직이는 것은 곧 잘했다.

까다롭기로는 아마 파리에서 제일가는 것이 틀림없는 무용선생님의 칭찬도 오로지 줄리 몫이었다.


사실 줄리는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시끌벅적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실컷 수다를 떨어대는 또래 여자아이들 틈에서

마치 맘껏 소리 내어 웃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양 배시시 웃음을 참아대던 아이.

줄리는 자신이 (대체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수만 번 붓이 들락거린 물의 색처럼 뭐라 구분 짓기 애매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춤을 출 때는 달랐다. 줄리의 몸동작은 가볍고 우아했다.

누군가 줄리에게 “너는 누구니?”라고 묻는다면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짧은 몸동작을 선보일 터였다.

발가락을 양껏 세우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턱끝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줄리는 그 순간을 가장 좋아했다.


흐르는 음악에 몸을 움직이면 정적이 찾아왔다.

음악이 고조되며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 줄리는 자신이 자신이라는 것 또한 잊을 수 있었다.


행복이란 무엇인지 이따금 생각하는 줄리였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줄리는 행복하다가도 몇 초만에 불행해질 수 있는 게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행복은 말하자면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영원하지 않은 무언가를 정의 내린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가치 없는 일이겠지.


행복한 삶을 믿지 않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 줄리의 딜레마였다.

줄리는 춤을 출 때 찾아오는 정적이 행복과 가장 가까운 순간이라 믿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시에서 운영하는 작지만 나름 이름 있는 극단에 들어온지도 벌써 오 년이 흘렀다.

줄리는 수석 무용수가 되고 싶었다. 춤을 추고 또 췄고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하지만 줄리는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극단에는 줄리만큼 춤을 잘 추는 무용수들이 가득했고,

언제나 줄리보다 적어도 종이 한 장만큼은 더 가볍고 우아한 동료가 있었다.


오늘은 새로운 극의 배역을 배정받는 날이었다.

아,, 또 들러리구나.

줄리는 극복되지 않는 한계에 화가 치밀었다. 뇌 안의 신경회로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연습실을 박차고  나왔다.


단체 연습을 빠지면 뒤집어쓰게 될 후폭풍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그것이 줄리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었을 뿐.


파란색 짧은 원피스에 노란색 하이힐을 집어 들었다.

줄리는 밖에 나설 때 기분상태와 정 반대의 옷과 신발을 고르는 습관이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만큼 새 파란 원피스와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웃음처럼 발랄한 노란색 하이힐이

못나고, 억울하고, 초라한 자신의 마음을 가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웬만해선 신지 않는 하이힐을 신고 한참을 걸었으니 발이 괜찮을 리 없었다.

발 뒤꿈치가 살살 벗겨지는 게 느껴졌다.

아팠다.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마다 뒤꿈치가 점점 더 강하게 쿡쿡 쑤셔왔다.

그래도 줄리는 한동안 신발을 벗지 않았다.

발 뒤꿈치의 고통 같은 건 언제나 작은 문제였다.


한참 후에야 하늘을 바라봤다.

티 없이 맑고 높았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제야 신발을 벗을 정신이 들었다.

피딱지가 엉켜 뒤꿈치가 엉망이었다.


줄리는 양손에 노란색 하이힐 한 짝 씩을 집어 들고 말없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벗겨진 살갗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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