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을 기억하며
어차피 난 이것밖에 안돼 낙하산과 사다리 없이 너와 같을 수 없어
낙하산만 준비된다면 문제없어 하늘을 날 수 있어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어차피 난 이것밖에 안돼-
1.
나는 겁이 많다.
하고 싶은 것들보다 겁이 나서 쫓겨했던 것들이 많았다.
그래도 처음엔 뛰어들었다.
하지만 몇 번의 뛰어 내림에 무릎이 갈려나갈 때쯤
낙하산의 의미는 다르게 다가왔다.
높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떨어지기 위한 낙하산이 아니었다.
떨어지더라도 아프지 않기 위해서
덜 다치기 위해서
낙하산은 필요했다.
나 같이 겁이 많았던 요정도 낙하산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2.
이제 나에게도 낙하산이 생겼다.
작은 조각보를 엮어 만들었다.
몇 번 누벼 만든 조각보가 엉성하긴 하지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젠 떨어져도 괜찮으니까, 아프지 않으니까
하고 싶은 것을 해보고 싶다.
3.
바람이 분다.
떨어질 준비가 되었다.
여전히 겁은 많지만 나에겐 조각보 낙하산이 있다.
떨어짐.
4.
이 작은 낙하산이 것이
추락이라는 낙하도 비행으로
저항이라는 바람도 부력으로
바꿀 줄이야.
5.
나는 이 낙하산을 타고
낮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그리고 최후에는
이 시멘트 바닥 위에 낙하산을 고이 접어 올려놔야지.
그 예전의 아이가
많이 아프지 않게
2020.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