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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Jul 31. 2021

에어컨 틀어요


담배 연기 같은 구름은

바람 한 점 없는 여름 저녁

전봇대가 그어놓은 허공의 선을 넘지 못한 채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거미줄을 해치고

현관 옆 담장에 열쇠를 꺼내며

매일을 그렇게 당하고도

미련이도 집을 짓는 무당거미

이름값 못하는 너는

마땅히 이곳에 둥지를 틀만하다.


현관을 열면

밖보다 천천히 식어가는 공기가 나를 감싸고

그리고 거기엔 또

한 노인의 미련함이 서 있다.


에어컨 틀어요 할아버지

버틸만하다는 그 옆에는

그만큼 나이 먹은 선풍기

더운 바람을 밀어내는 중이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계단을 오르면

거미는 비웃으며 나에게 묻고

지는, 답한다.


이층 문을 열고

옷을 벗고

미지근해져 버린 수돗물을 끼얹고

봄이 지나가버린 이 집에

그래도 영원한 가을만이 머물기를

눈을 감는다.


미련함이 거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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