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3 하이데바라드와 나가르주나 ](2)

인도 불교 유적지 순례기 : 나가르주나콘다 편

by 노루

나가르주나콘다


나가르주나콘다는 일종의 섬이었다. 원래는 그냥 언덕이었지만, 1955-65년에 10년동안 댐을 만들면서, 물이 차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가졌다고 한다. ‘콘다“는 언덕을 뜻한다고 하며, 나가르주나 선사께서 여기에 머무르셨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난 아저씨st



가봐야 할 불교 유적지를 선정하면서 내가 사용한 기준은 부처님의 생애와 관련 된 지역과, 부처님의 열반 이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오는 인물들이었다.


일정상 부처님 열반 이후에 만들어진 건축물과 인물들이 있는 곳을 먼저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맨 처음 방문하였던 아우랑가바드의 경우 물리적으로 남아 있는 흔적들을 쫓아보려고 하였고, 이후 차례로 방문하는 나가르주나콘다에서는 나가르주나를, 그리고 오딧사 지방과 산치에서는 아쇼카 왕을, 다람살라에서는 달라이라마라는 인물을 통해 인도 위에 남아 있는 불교의 흔적을 쫓아보자는 계획이 만들어졌다.


여기에서는 나가르주나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글이 있어 발췌 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500여 년이 지난 무렵, 즉 기원 후 150년경 인도불교계에서 또 한 분의 위대한 영웅이 탄생하였다.

그가 바로 《중론(中論, Madhyamaka-karika>>의 저자 용수(龍樹, 150~250년경)다. 그의 원래 이름은 나가르주나(Nagarjuna)이며, 용수는 이에 대한 한문 번역어이다.

대승불교 전통에서는 부처님 이후 생존했던 인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분으로 단연 용수를 꼽는다. 대승불교의 많은 사상들이 그 뿌리를 용수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반야경》 역시 용수가 발굴하여 유포시킨 경전이라고 한다.

그리고 《반야경》에 담긴 공사상에 대해 논리적·분석적으로 해명하는 저술이 바로 《중론》인 것이다.
용수에 대한 전기는 세 가지가 전해 온다. 하나는 《중론》의 한문 번역자인 구마라습(Kumarajiva, 344~413)의 《용수보살전》이고, 다른 두 가지는 티베트의 역사가 부뙨(Bu ston, 1290~1364)dml 《불교사》에 기술된 용수의 전기와 따라나타(Taranatha, 1575~1615년경)가 저술한 불교 역사서에 기술된 전기이다.

이 세 가지 저술에서 묘사하는 용수의 생애가 제각각이긴 하지만, 인도의 카스트제도에서 최상 계급인 바라문 출신이었다는 점, 출생지와 활동지역이 인도의 남부 지방이라는 점, 어릴 때부터 총명하였고 바라문교의 경전인 《베다》에 정통했다는 점, 연금술에 조예가 깊었다는 점, 남인도의 왕과 친교가 깊었다는 점, 《반야경》과 같은 대승경전을 발굴해 내었다는 점 등은 공통된다.
신화적 내용이 많이 담겨 있긴 하지만 이 세 가지 문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구마라습의 《용수보살전》에 의거하여 용수의 생애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용수(Nagarjuna)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칠백 년경 인도 남부 지방에서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직 품안의 젖먹이였던 어린 시절, 바라문 사제들이 《베다(Veda)》 경전을 암송하는 소리만 듣고도 그 뜻을 모두 통달할 정도로 천성이 총명하였다.
성장하면서 천문학과 지라학·도술 등 온갖 학문을 두루 섭렵한 후, 네 명의 친구들과 함게 연금술사를 찾아가 몸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비법을 알아내었다.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즐거움인 음욕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 후 이들은 은신술로 몸을 숨기고 왕궁에 잠입해 들어가 궁녀들을 농락하며 지내싿. 수개월이 지나, 많은 궁녀들이 임신을 하자 왕은 신하들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지혜가 뛰어났던 한 신하는 그것은 누군가가 도술을 부려 장난을 치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출입구마다 고운 모래를 뿌려 놓으라고 권하였다. 은신술을 썼기 때문에 몸은 보이지 않았지만 모래에 찍힌 발자국 때문에 정체가 발각된 세 친구는 허공을 휘젓는 병사들의 칼에 맞아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그러나 왕의 바로 옆에 숨어 있었던 용수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때 용수는, 애욕은 즐거음의 원인이 아니라 모든 고통의 뿌리임을 처절하게 자각하였다.
왕궁을 벗어난 용수는 곧바로 산에 들어가 한 불탑 앞에서 출가하여 스님이 된 후 석 달 만에 당시 유포되어 있던 모든 불경을 통달하였다. 그리곤 히말라야 산으로 들어가 한 늙은 스님에게서 대승불교 경전을 받아 연구해 보았으나 미진한 점이 많았다.

산에서 내려온 용수는 여러 나라를 유랑하며 또 다른 경전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인도 땅에서는 더 이상 경전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모든 불경을 연구해 보았으나 미흡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 용수는 복장과 규범을 새롭게 제정하여 후학들을 지도하기로 작정하고 날을 잡아 수정으로 만들어진 고용한 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때 이를 불쌍히 여긴 대룡보상(大龍菩薩)이 나타나 그를 데리고 용궁으로 들어가 칠보로 된 상자 속에 담긴 심오하고 무량한 대승경전들을 보여 주었다.

용수는 서 달에 걸쳐 경전을 독송하여 자비심의 정수를 체득하고, 공(空)의 이치를 깨달은 후 남인도로 돌아와 수많은 저술과 토론을 통해, 외도(外道)와 소승불교도들을 굴복시킴으로써 대승의 가르침을 널리 펼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술에 능한 한 바라문의 도전을 받았다. 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대결을 벌이게 되는데 먼저 바라문이 주술의 힘으로 넓은 연못을 만든 후 그 가운데 피어 있는 커다란 연꽃 위에 앉아 용수를 조롱하며 함게 논쟁을 벌이자가 말하였다. 그러자 용수도 주술을 부려 상아가 여섯 달린 흰 코끼리로 변하여 연못으로 들어가 바라문을 제압하였다. 바라문은 즉각 용수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말년에 용수는 한 소승불교도의 시기를 받았다. 세속의 일을 모두 마쳤다고 생각한 용수는 소승불교도에게 물었다.
“그대는 내가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가?”

소승법사는 대답하였다.

“솔직히 말해 그렇지 않길 바랍니다.”
이 말을 들은 용수는 빈방으로 들어가 며칠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창문을 부수고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는 보살께서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들이 열반하신 다음이었다.

그의 이름을 용수(龍樹), 즉 나가르주나(Nagarjuna)라고 하는 이유는 용(龍, Naga)의 인도를 받아 깨달음을 얻고, 어머니가 아르주나(Arjuna)라는 나무 아래에서 그를 출산하였기 때문이다.

김성철,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1. 나가르주나콘다로


긴장이 되었는지 알람소리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5시 55분 이었다. 나가르주나 콘다의 경우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기에, 갈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던곳이었다. 엘로라나 아잔타의 경우 그 규모와 명성에 걸맞게, 상당히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지만, 나가르주나콘다의 경우 이곳 사람들에게도 그 다지 유명한 곳은 아닌 듯싶었다.


준비를 마친 뒤, 6시 30분쯤 나와 릭샤를 잡았다. 나가르주나콘다에 가기 위해서는 마하트마간디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야했다. 약 20분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200루피에 이동할 수 있었다.


안내소 아저씨는 60번 플랫폼에서 나가르주나콘다 근처를 지나는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하셨다. 그곳에 가니, 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많은 사람이 타고 있지는 않아 20분 정도 후에 버스가 출발 하였다. 가격은 140루피였다.

가방을 끌어 앉고 자리에 앉았다. 잠을 설친 탓인지 계속 졸았는데, 순식간에 3시간이 지나 있었다. 차장 아저씨가 나를 깨워주시더니 뭐라 뭐라 하셨다. 내가 나갈주나콘다? 이러니 고개를 흔드신다.


나를 내려준 곳에 릭샤 하나가 대기 중이었다. 아저씨도 아닌 할아버지 섰는데, 런치스테이션(선착장)에 가자고 하니 200을 부르셨다. 어쩔 수 없었다. 여기는 릭샤도 별로 없었다. 배보다 배꼽이 컸지만, 배꼽을 부여잡고 200을 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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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계속 단말기를 하며 가셨다. 1초 단말기 1초 정면


2. 배


선착장에서 배를 타야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배는 하루에 2번 운항을 하는데 이게 또 사람이 없으면 출발도 안한다는 정보가 있었다. 일단 11시에 첫 배가 출발한다는 정보가 있어, 시간에 맞춰 도착을 하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내 급한 마음은 안중에도 없으신지, 주유소까지 들렸다가 선착장에 날 내려주셨다. 시계는 10시 55분을 가리켰다. 마음이 급해져서 빨리 표를 끊어달라고 하니까 서두를 필요 없다면서 나를 안심시켜주셨다. 이곳에서는 배를 타는 비용과, 나가르주나 입장료를 각각 따로 내여 했다. 나가르주나 박물관 입장료는 ? 이었고 배는 왕복 150루피였다.


배에 올라타고 구명조끼를 입었다. 자리에 앉고 보니, 외국인은 또 나 혼자였다. 배 위에서는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이였는데, 다행히 멀미는 나지 않았다. 11시 40분 쯤 나가르주나콘다에 도착했다.


IMGP1504.JPG 런치 스테이션이라는 말을 릭샤 아저씨께 들었을 때아저씨가 식당에 데려다 주실까봐 정말 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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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르주나의 대표적인 저술서인 《중론》에 대한 소개와 내용은 부분 발췌하였다. 뭔말인지 너무 어렵다. 사실 나가르주나콘다에서 나가르주나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나가르주나콘다라는 이름밖에는 없다. 그저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중론》은 어떤 세계관을 구성하여 제시하는 책이 아니라, 이론화된 불교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사고에 의해 구성된 모든 판단과 이론들이 궁극적으로 해체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총 27장에 걸쳐 되풀이해서 가르치는 책이다.

...

《중론》은 다음과 같은 귀경게로 시작한다.

발생하는 것도 없고 소멸하는 것도 없으며

서로 이어진 것도 아니고 서로 끊어진 것도 아니며

서로 같지도 않고 서로 다르지도 않으며

어디선가 오는 것도 아니고 어디론가 가는 것도 아니며

온갖 망상을 잠재우며 상서로운

연기의 진리’를 가르쳐 주신 부처님,

최고의 스승이신 그분께 머리 조아려 예배드립니다.
...
《중론》에 대한 전통 해설서에서는 연기에 대한 열 가지 수식어 중, 부정적으로 표현된 앞의 여덟 가지 수식어, 즉 팔불(八不)의 의미에 대해 ‘원인인 씨앗과 그 결과인 싹’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불생(不生) : 씨앗에서 싹이 틀 때, 씨앗에서 싹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불멸(不滅) : 씨앗에서 싹이 틀 때, 씨앗이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불상(不常) : 씨앗에서 싹이 틀 때, 씨앗이 싹으로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단(不斷): 씨앗에서 싹이 틀 때, 씨앗과 싹이 단절된 것이 아니다.

불일(不一) : 씨앗에서 싹이 틀 때, 씨앗과 싹이 완전히 동일한 것이 아니다.

불이(不二) : 씨앗에서 싹이 틀 때, 씨앗과 싹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불래(不來) : 씨앗에서 싹이 틀 때, 싹이 다른 어느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불거(不去) : 씨앗에서 싹이 틀 때, 씨앗이 그대로 싹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연기’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세상만사는 모두 다른 것과 얽혀서 발생한다. 홀로 발생하는 것은 없다. 싹은 반드시 그 씨앗이 있어야 발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싹은 씨앗 등에 의존하여, 얽혀서 발생한다.

그런데 얽혀서 발생하는 것, 즉 연기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으로 묘사할 수 없다. 우리의 ‘생각’은 흑백논리에 따라 작동하기 때문이다.
...
귀경게라고 불리는 ‘부처님께 바치는 노래’는 《중론》의 첫머리에도 실려 있지만, 마지막에도 실려 있다.

《중론》의 제일 마지막 장인 제 27<관사견품 : 잘못된 견해에 대한 분석>에 실린 게송 역시 다음과 같이 ‘부처님께 바치는 노래’이다.
잘못된 세계관[견해]을

모두 제거해 주시기 위해

자비의 마음으로 오묘한 진리를 가르치신

가우따마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김성철,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3. 왜 나를 버리고 가는 거야


나가르주다콘다는 작은 섬이었다. 그냥 한 바퀴 걸으며 둘러보는 것은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배도 정확히 1시간 뒤인 12시 40분에 출발한다고 하였다.


최대한 많이 보고 싶은 마음에 남들보다 2배 빨리 걸으면 앞으로 나아갔다. 한 경비원 아저씨가 나를 계속 따라 오셨는데, 길잡이 역할을 해주셨다. 급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다 보니 40분 정도가 되었는데, 경비원 아저씨는 제 시간에 갈 수 있다면 자신만 믿으라고 하셨다. 나는 감사한 마음에 100루피를 꺼내서 건네다.


하지만 지름길을 통해 선착장에 도착했지만, 시간도 딱 44분이었지만 배는 내 눈 앞에서 이미 멀어져가고 있었다. 당황한 나보다도 아저씨의 얼굴에서 더 당황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저씨는 오후에 배가 하나 더 있다면 괜찮다고 나를 달래주셨다.


이미 놓친 배 원망해봐야 소용은 없었다. 밥이나 먹고, 천천히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수밖에 없었다. 되도록 저녁 늦게는 이동하기 싫어서, 바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이지만, 차라리 잘 된 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못을 이곳을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4. 수달?


아침을 먹지 못했으니, 약 13시간 동안 먹은 것은 물밖에 없었다. 경비원 아저씨도 호숫가 근처에 있는 한 가게를 가리키시면 저곳에 가서 차나 한잔 하라고 권유해주셨다.


그곳에서는 달걀 볶음밥을 70루피에 팔고 있었다. 콜라도 있어서 두 개를 사서 배를 채웠다.


베란다가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아이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두 명이 누워 자고 있었다. 이 가게를 운영하시는 분의 아들로 보였는데 무척이나 한가로워보였다.


밥을 먹은 뒤, 일정 정리를 했다. 이 곳 이후에 어떻게 이동해야할 지가 고민이었다. 그리고 호숫가로 나갔다.


호숫가에도 어떤 유적이 있긴 있었는데, 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 그 근처에 앉아서 호수 중앙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한 100m 앞에서 무엇인가가 빼꼼 나왔다. 시력이 좋지 않아서, 카메라로 당겨서 봐도 뭔지는 모르겠었다. 수달 같은 것인가? 분명히 나를 보고 있었는데, 내가 그 쪽으로 다가갈수록 나를 바라본 채 점점 멀어져 갔다.



IMGP1485.JPG 빨리 돌아가기 위해서아저씨가 지름길을 알려주셨다.
IMGP1454.JPG 호숫가에 있는 까페(?)다 경치가 무척 좋았다.



5. 박물관 어게인


처음 박물관에 들어갔을 때는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었지만, 혼자 남은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사진을 찍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다만 다음 손님들이 들어오는 때에는 찍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천천히 석상들을 둘러보았다. 비교적 잘 보존된 유물들 속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이야기도 몇 보였다. 말로 전달되는 이야기들보다 석상을 통해 보여지는 이야기는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보면 웹툰 같기도 하고. 유적지나 박물관에 나가르주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유적이나 자료들은 없었다. 다만 이곳에 이끄쉬와끄의 유적들과, 그 시대의 공양탑들만이 있었다.



6. 타오르는 촛불같이


박물관에서 나와 급하게 보았던 섬 전체의 유적지를 천천히 다시 둘러보았다. 자세히 보니, 유적지를 운전면허 시험장 같이 꾸며 놓은 것 같았다. 엄청 길이 좋다고, 경비원 아저씨에게 말하니, 예전에 달라이라마스님이 이곳에 방문하셨을 때, 달라이라마 스님이 작은 차를 타고 섬을 구경할 수 있도록 길을 닦으셨다고 이야기 해주셨다.

2번째 관람을 끝내고, 20분 정도 전에 도착한 배에 올라탔다. 마음이 편했다. 이제 배를 놓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앞의 배를 놓치는 바람에 숙소까지 돌아가는 시간은 4시간 정도가 늦춰졌다. 원래는 5시 도착예정이었지만, 9시가 되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에서 가만히 기다리다 “어떤 건물이 오래 남을까?“라는 질문과 비슷하게, 어떤 기억이 오래 남을까?”라는 질문이 생겨났다.


잊혀지지 않는 것이 쉽게 기억되는 것일까? 다른 문제라고 생각된다. 말로써 전달되는 기록 속에서 기억은 변형될 수 있다. 하지만 “기억”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믿음, 정신이 전달되는 이상 이 기억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불은 항상 다른 형태로 타오르지만, 여전히 밝으며 따듯하다. 무엇이 오랫동안 기억되는가에 대한 답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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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르주나 박물관의 불상이다. 사진기 설정을 이상하게 해놔서 처음 찍었던 사진들을 다 쓸 수 없었다. 오히려 날 버리고 간 보트에 감사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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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후덕하게 생긴 불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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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이 쓰던 목욕탕이라는데 거의 수영장이었다. 배수시설이 정말 잘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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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 닦여진 길이었다. 왠만한 인도 도로보다 나았다.




7. Agonist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자, 다른 관광객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아저씨께서 내 옆에 떡하니 앉으셨다. 아저씨는 자신을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소개하셨다. 쉬는 날이어서 다른 선생님들과 이곳으로 소풍을 오셨다고 하셨다


나도 나에 대해 짧은 소개를 힌디어와 섞어 말씀드렸다. 그리고 종교가 불교이시냐고 물었다. 나가르주나는 불교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기에, 선생님들 중 불교신자들이 오셨나 궁금했다.


선냉님은 자신을 Agonist라고 이야기 하셨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질문을 하니, 자신은 인간의 인간성(선한 측면)을 믿는다고 하셨다. 구글에 검색해보니, 어떤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을 믿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럼 힌두교의 신들을 믿지 않냐고 물으니, 당연히 믿지 않는다고 하셨다. 자신의 인간의 선함만을 믿으며, 또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높은 윤리적 책임이 요구된다고도 덧붙이셨다.


선한 측면이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 지금의 현실 자체를 받아들이신다는 것일까? 인간성에 대한 믿음과 인간의 여러 감정과 욕망으로 표현되는 힌두교의 여러 신들에 대한 믿음은 그냥 같은 것을 말하는 다른 표현이 아닐까? 선생님과의 만남 이후의 생겨난 질문들을 물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배에서 내린 뒤, 선생님께서는 다른 선생님(교장, 교감 등등)을 모두 모아주셔서 인사를 시켜주셨다. 단체 사진까지 찍었다. 왠지 교육청에서 나온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작별인사를 마치고, 선생님께서 버스를 탈 수 있는 파일런까지의 동행도 구해주셨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HrY2qRjn1d4FYN7uKHw.jpg 그 선생님이시다.그저 사진을 찍고 가실 줄 알았지만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8. 다시 하이데라바드로


동행은 아버지와 딸 둘이었다. 이 아저씨는 자기 아들이 미생물학을 공부해서 나중엔 한국에 가서 공부를 할 예정이라며 나에게 한국이 어떤지에 대해 물어오셨다.


뭐, 좋다는 대답을 원하셔서 디게디게 좋은 곳이라고 답해드렸지만, 인도에서 온 유학생, 미생물학 공부를 하는 환경은 그렇게 좋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은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얘기를 하던 중에 파일런에 도착했다.


도로 옆의 작은 정류장인 파일런에서 버스나 합승지프를 잡을 수 있었다. 나도 이곳에서 하이데라바드로 가는 지프차에 올라탔다. 가격은 버스랑 거의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는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열이 나기 시작했다. 푹 쉬어야 했지만 이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지프차는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서 나를 내려주지 않았다. 뒤에서 계속 이것저것 묻는 나에게, 같이 탄 아저씨가 걱정 말라며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줬다. 그리고 내가 타야하는 버스까지 같이 기다려 주시고, 버스 차장에게 말까지 해주셨다.


값은 아주 쌌다 10루피! 되도록 버스를 타자는 생각도 들었다. 실랑이를 할 필요도 없어 정말 좋았다. 인도의 버스는 아직 사람이 직접 돌아다니면서 돈을 수금하고, 내릴 곳을 알려줬다.


이동만 11시간 이동, 4시간 관람에 대장정은 그렇게 끝났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HrY2qRjn1d4FYN7ANN0.jpg 세컨드라바드의 공공버스다.의외로 좋다.


9. 오딧사로의 초대


밥을 먹으면서, 어제 만난 인도 청년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친구는 나에게 한국 노래를 듣고 싶다며 노래를 청했다. 한사코 거절했지만, 결국 한 곡을 해야했다. 김광석의 “거리에서”를 부르는데 나를 비디오 찍기까지 했다. 엄청나게 못부르는 이 노래를 듣고 오해하지 않길 기도했다.


다음 목적지는 휴식장소인 함피로 잡고 있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내 여행 이야기를 듣더니 “오딧사”를 추천했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군인이셔서 오딧사 지방에 살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자기가 그 지역을 잘 아는데, 나에게 무조건 오딧사에 가야한다고 나를 설득했다.


오딧사는 인도의 전륜성왕 “아쇼카 왕”이 마지막 정복전쟁을 펼쳤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알게 된 왕이 불교에 귀의하게 되고, 아쇼카왕은 불교의 가르침에 기반한 통치를 하게된다.


나도 알고 있었긴 했지만, 실제로 관련 유적지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귀가 솔깃했다. 또 오딧사 지방에도 “뿌리”라는 휴양지가 있다면 그곳에서 휴식을 하고 다른 유적지를 보라고도 추천해줬다. 왠지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일정을 수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표를 예매할 수가 없었다. 내일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나는 기차 예약이 불가능했다. 그러자 어제 문답을 나눴던 친구가 그의 카드로 대신 결제를 해줬다. 나는 현금으로 그에게 돈을 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10. 해야할 것은 해야 하니까


인사를 마친 뒤, 혼자 남아 일기와 자료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억들과 적어 놓은 메모들을 비교해가며 차근차근 일기를 채워나갔다. 시계는 11시가 넘어갔지만, 지금 해놓지 않으면 놓칠 것 같은 기억과 느낌들이 있었다.


아까 나기 시작했던 열은 더 올라 있었다. 이상하게 피곤함과 열이 겹쳐도 정신은 오히려 또렷했다. 일기를 다 쓰고 눅눅한 침낭 위에 누우니 이미 1시가 넘어 있었다. 다음 목적지인 오딧사 지방의 부바스와네르까지는 거의 하루가 걸리기에, 약먹고 잠이나 계속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가 정말 길었지만, 해야 할 일들은 해야 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부분은 뿌리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3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열은 내려가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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