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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Mar 25. 2019

어떤 표정이 나의 자리에 남겨졌을까

아르바이트를 구했습니다!


최근 친구가 대학원에 입학한 덕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하나 얻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있었던 만화 카페인데, 만화와 음료, 음식까지 같이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카페 아르바이트는 처음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3주 동안 주말마다 일을 하다 보니 금방 손에 익어 여유가 생겼습니다.



3주 만에 발견한 하나의 패턴


최근에 하나의 패턴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손님과 마주할 때는 딱 세 번입니다. 손님이 들어올 때와, 손님이 나가실 때, 손님이 나가고 난 뒤입니다.


이미 나간 손님을 어디서 만날 수 있냐고요?

바로 손님이 머물다간 자리입니다. 손님이 머물다간 자리에도 손님을 분명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 방문한 손님들은 모두 다 다르지만, 손님이 머물던 자리는 몇 가지 모습으로 유형화시킬 수 있습니다.


첫째, 들어왔던 자리 그대로 (어떤 방식으로도 정리를 한)

둘째, 쿠션과 담요가 살짝 흐트러진 채

셋째, 두 번째 경우에 만화책, 먹거리, 쓰레기까지 남아있는

이렇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떻게 남아있다 하더라도, 정리하고 청소를 하는 건 저의 일입니다. 제가 맡은 업무는

다른 손님이 사용하실 수 있도록 원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니까요. 또한 위의 세 가지의 어떤 경우더라도, 하는 일의 양이나 시간은 비슷합니다.

이 곳의 기준대로 담요와 쿠션의 위치를 돌려놓고, 바닥을 찍찍이로 밀고,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반드시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손님의 모습과 남긴 자리


제가 이번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저와 마주한 사람들의 모습"과 "지나간 흔적"의 모습이 닮았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보이는 손님들의 모습도 3가지로 분류를 할 수 있습니다.

손님들은 웃는 모습이거나 , 무표정이시거나, 어쩐 일인지 찡그린 표정으로 저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 모습들은 경험상 90% 이상으로 상관관계를 가집니다.


웃으며 오신 분들은 들어왔던 자리을 원래대로 만들어 놓으시려 하고

무표정이신 분들은 자리가 쿠션이나 담요로 살짝 흐트러진 정도로만 두고 가십니다.

찡그리신 표정으로 오신 분들의 자리는 그 자리도 표정을 찡그리고 있습니다.


"아 손님의 표정이랑 자리의 표정이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이제까지 제가 남긴 자리들의 표정은 어땠는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분명히 매번 그 표정들은 달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집, 침대 위의 표정과, 아침에 들른 카페 테이블 위에서의 표정, 도서관에서의 표정은 다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대하는 사람들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집에서는 신경 쓸 필요 없으니 그대로였고, 카페에서는 치워줄 사람이 있으니 흐트러져 있었고, 도서관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 곳이기에 최대한 깨끗이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 자리 그대로, 그 공간에서의 저의 표정도 그대로 드러났을 것입니다.






노루의 곡식창고


백범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소 길긴 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부분이라 발췌를 했습니다.


백범일지, 도진순 주해

pp. 36~37, 드디어 나는 과거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위의 몇 가지 현상만 보아도 과거가 무슨 필요가 있으며 무슨 가치가 있는가? 내가 심혈을 다하여 장래를 개척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인데, 선비가 되는 유일한 통로인 과거장의 꼬락서니가 이 모양이니, 내가 시(詩)·부(賦)를 지어 과문6체(科文六體)에 능통하더라도 아무 선생 아무 접장 모양으로 과거장의 대서업자에 불과할 것이니 나도 이제 다른 길을 연구하리라 결심하였다.

나는 이처럼 과거길에서 불쾌한 느낌과 비관적인 생각만 품은 채 집으로 돌아와 아버님과 상의하였다.

"제가 어떻게든 공부로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강가·이가에게 당한 압제를 면할까 하였는데, 그 유일한 방법이라는 과거장의 폐해가 이와 같은즉, 제 비록 큰 선비가 되어 학력으로 강·이씨를 압도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엽전의 마력이 있는데 어찌하오리까. 또한 큰 선비가 되도록 공부를 하려면 다소의 금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집안이 이같이 가난하니 앞으로 서당 공부를 그만두겠습니다."

아버님 역시 옳게 여기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 그러면 풍수공부나 관상공부를 해보아라. 풍수에 능해 명당에 조상을 모시면 자손이 복록을 누리게 되고, 관상을 잘 보면 선한 사람과 군자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이치에 맞는 말이라 생각되어 "그것을 공부하여 보겠습니다. 서적을 얻어주십시오."하고 부탁하였다.

아버님이 우선 "마의상서(麻衣相書)" 한 권을 빌려주셔서 나는 독방에서 이것을 공부하였다. 관상서를 공부하는 방법은 먼저 거울로 자신의 상(相)을 보면서 부위와 개념을 익힌 다음, 다른 사람의 상으로 확대·적용해 나가는 것이 첩경이다.
나는 두문불출하고 석 달 동안이나 내 상을 관상학에 따라 면밀하게 관찰하였다. 그러나 어느 한 군데도 귀격(貴格)·부격(富格)의 좋은 상은 없고, 얼굴과 온몸에 천격(賤格)·빈격(貧格)·흉격(凶格)밖에 없다.
과거장에서 얻은 비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상서를 공부했는데 오히려 과거장 이상의 비관에 빠져버렸다. 짐승과 같이 살기 위해 산다면 모르지만 인간으로서 세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런데 "상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相好不如身好)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身好不如心好)

이것을 보고 나는 상 좋은 사람(好相人)보다 마음 좋은 사람(好心人)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이제부터 밖을 가꾸는 외적 수양에는 무관심하고 마음을 닦는 내적 수양에 힘써 사람 구실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종전에 공부 잘하여 과거하고 벼슬하여 천한 신세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은 순전히 허영이고 망상이요, 마음 좋은 사람이 취할 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마음 좋지 못한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으로 되는 방법이 있는가 스스로 물어보니 역시 막연하였다.


김구 선생님은 과거를 보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17세에 관상과 풍수지리를 공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방에만 틀어박혀 관상 공부를 한 지 어언 2달, 어린 김창수(김구 선생님의 개명 전 이름)는 관상 공부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관상 공부는 자신의 얼굴로 연습을 한 뒤, 차츰 주변 사람의 관상을 보며 데이터를 축적시킨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사람이 데이터베이스(이미지)를 모으고, 그 사람만의 알고리즘을 이용해 얼굴 모양에 대한 판별을 하여 사람의 성격, 과거, 미래, 재산 등을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관상 공부를 하며, 자신의 얼굴에 대한 관상을 본 김창수는 자신의 얼굴이 상놈 중의 상놈이어서 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갑자기 관상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다음 이야기 때문입니다.

어린 김구 선생님께서는 상서에  나오는 이 구절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고 합니다.

몸이 좋은 사람은 상이 좋은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상이 좋은 사람은 마음이 좋은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이 격언을 보신 김구 선생님은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길 정하시고 다시 길을 떠나십니다.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익히 알고 계시겠죠.





관상이나 손금이나 발금은 항상 변한다고 합니다.

그 말은 즉, 몸의 행적이 쌓여 보여지는 "상"들이 "운명"을 결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겠지요.


만화 카페에서의 저의 경험도 그랬습니다.

처음 들어오실 때의 표정이 좋지 않았더라도, 나갈 때의 자리에는 웃는 얼굴을 남겨 놓으신 분들이 계셨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정말 다행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관상이나 이미지의 한계도 명확히 보입니다.

결국 이미지란 이제까지의 나의 마음과 말과 행동의 결과일 뿐이구나!

그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의 모습까지는 결정할 수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 손님들을 보고 넌지시 혼자 어림짐작하던 습관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좋은 마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를 맞이하는 사람들과 내가 지나간 자리에는 어떤 표정이 남겨질까 항상 고민하고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다짐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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