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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Apr 16. 2019

240번 버스 안에서 듣는 김광석의 노래

*이전에 써놨던 글을 다시 올렸습니다.


추석 즈음엔, 보다 완연하게 다가온 가을의 공기가 더욱 차갑고 시리다. 새벽부터 속삭이며 내려온 가을비는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로부터 들려오는 김광석의 목소리를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다. 1996년 1월 6일, 그는 자택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다. 그렇게 우리를 떠나갔다. 그의 죽음으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영화 ‘김광석’에 의해 ‘김광석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이 다시 수중 위로 떠올렸다.


구글 이미지. 영화 김광석 포스터


김광석의 부검감정서는 김광석의 사인을 자살로 판단하였다. 하지만 김광석의 죽음에는 세 가지 의혹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아내 서해순이 제시한 김광석의 여자관계와 우울증 약 복용이 거짓이라는 점, 두 번째는 김광석의 사체 발견 당시, 세 번 정도 목에 줄을 감은 채 계단에 누워 있었다고 증언했지만, 목에는 하나의 교살 흔적만이 남은 점, 세 번째는 사망 현장에 전과 10범 이상의 강력범죄 이력이 있는 서해순의 오빠가 있었다는 점들이 존재한다. 영화 ‘김광석은 이러한 의혹들과 김광석의 일기장, 김광석의 가족의 인터뷰와 육성파일을 보여주며 김광석의 타살 의혹과 그의 딸 '서연'의 행방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몇 명의 국회의원들에 의해 공소시효가 만료된 살인사건에 대해 재수사에 착수할 만한 중대한 단서가 발견돼 진실규명이 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해당 사건에 한해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김광석 법‘을 추진하게 되었다. 또 미국에서 살아있다고 생각되었던 그의 딸이 2007년 급성폐렴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아내 서해순에 대한 유기치사 의혹까지 사건이 붉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서해순은 JTBC 뉴스룸, CBS 라디오 등에 출연하며 관련된 의혹들을 부인했으며 김광석 타살 의혹에 대해서는 사망진단서와 부검소견서를 공개할 것이라고 하였으며, 딸 서연의 사망 신고지체와 거짓말에 관해서는 당시의 개인 상황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신문과 방송 등의 다양한 매체에서 그를 죽게 만든 범인이 누구인지와 그의 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주위 사람들도 그의 죽음에 대해 추측하며 ‘그의 아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나 역시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들이 풀릴 수 있다는 기대를 한다. 하지만 ‘240번 버스 사건’이 마음에 걸렸다. 맨 처음 ‘240번 버스 사건’에서 ‘버스기사님에게 분노했던 내가‘ 이번에도 그렇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구글 이미지, 240번 버스

240번 버스 사건’은 2017년 9월 11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240번 버스의 운전기사가 어린아이 혼자만 먼저 내린 것을 알았지만, 하차하려는 아이 엄마의 요구를 무시했다는 내용의 글이 SNS를 통해 알려지고 기사화되면서 벌어진 사건이다.(글의 내용은 과장되었으며, 버스기사의 대처는 객관적으로 정당했다.) 첫 게시물 작성자는 그 자리에 있던 승객 혹은 이 이야기를 승객으로부터 전해 들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작성자는 버스기사가 울부짖는 아이 엄마의 말을 무시한 채, 버스를 몰았다고이야기를 각색하였다. 목격담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기자들은 이 게시 글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하였고 검증되지 않은 ‘거짓’이 ‘진실’인 양 사람들을 여론몰이 하였다. 결정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사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고 버스기사를 공격하였다.


CCTV와 여러 다른 증언들에 의해 ‘240번 버스 사건‘의 이야기가 본래 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억울해서 3일 내내 울었다. 극단적인 생각도 하였다”는 버스기사님의 심경을 담은 기사를 보고, 나는 너무 무서웠다. 분명 나 역시 버스기사님을 울게 만든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나 역시 그 기사들이 전하는 대로 그 거짓말들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였고 또 분노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240번 버스 사건’은 세 명의 사람에 의해 차례대로 심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사람은 사건 발생 후, 게시물들을 올린 작성자들이다. 두 번째 사람은 그 게시물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이다.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은 그 기사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이야기를 하는 독자들이다. 이 세 종류의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도 편파적으로 사고하지 않았다면, 이 문제는 한 개인에게 큰 상처와 억울함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와 비슷한 종류인 ‘채선당 임산부 사건’과 ‘푸드코트 화상 사고 사건’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존재하지 않는 마녀들’이 너무 쉽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김광석 타살 의혹’에 관한 기사들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를 쉽게 나눌 수 없었다. ‘김광석의 죽음’에 관해서도 ‘240번 버스 사건’과 같이 ‘버스기사님’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김광석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어떤 말도 할 수 없고 그 노래만 남아 있을 뿐이다. 증거들 역시 시간의 발자국에 덮여 사라져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김광석의 타살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남아있는 증거는 획득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김광석의 타살 의혹은 ‘240번 버스 사건’과 같이 유언비어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 가능성이 있는 한 우리가 만들고 전하는 말들은 그 ‘목격담’과 다르지 않은 채 수많은 목격담을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다.

구글 이미지, 김광석


나 역시 김광석의 노래와 김광석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들을 수 있었을 만들어지지 못한 노래들을 듣지 못함과 실제로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없음이 너무 슬프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다. ‘김광석 평전’과 영화 ‘김광석’을 보면서 나 또한 생각하고 있었던 질문들의 답을 단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240번 버스 사건’은 내가 내린 답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240번 버스 사건이라는 이야기의 화자가 한정적인 정보를 줌으로써 아이와 아이 엄마를 피해자 볼 수밖에 없도록 왜곡했듯이, 김광석의 노래와 그에 대한 호감이 김광석의 죽음을 타살로만 보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를 의심했다. 이러한 나의 편애는 분명 내게 성급한 답을 만들게 하였다.


그렇다고 모든 가능성이 있는 추측들이 잘못되었고 멈춰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 옳지 않은 일들과 인간의 도리에 맞지 못한 감춰진 일들을 바로잡는 것은 의심과 의혹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과정 속에서, 억울하게 피해를 받는 일들은 최대한 예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했었더라면 그것은 모든 사건이 증명된 이후에 받는다고 하여도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나부터 이 ‘무비판적 수용’을 주의해야겠다. ‘240번 버스 사건’과 같이 소문이 유포되고 기사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신중히 선택하고 그것을 나눠야 한다. 더 나아가 편향된 정보가 아닌 양쪽의 정보를 모두 들을 충분한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의 ‘240번 버스 기사님’은 계속하여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자극적이고 편파적인 신문기사와 방송 그리고 영화들은 의심과 의혹과 같은 수소와 헬륨과 같은 가벼운 숨을 불어넣어 빠르고 크게 풍선을 키울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색색의 풍선들을 보며 즐겁게 이야기한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대부분의 이슈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들의 대화에 끼어들게 된다. 그리고 ‘240번 버스’를 보고 화를 냈던 나와 같이 사람들은 쉽게 그 풍선을 터트리고 만다.


 영화 제작자와 이 사건에 관심을 주는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그의 노래를 들으시는지 공감한다.  그의 노래를 들을 때면, 항상 그의 노래를 처음 듣던 어린 나로 돌아간다. 나는 그의 노래 속의 미움과 원망조차도 그에게는 사랑이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막연한 미움이 내뿜는 가벼운 숨들이, 다시 내려와야 할 풍선을 터트리지 않을까, 이 미움이 그의 노래로부터 우리들을 멀어지게 하지 않을까 두렵다.



2017년 10월 14일 토요일 


2014년, 대구 김광석 거리에서, 진필, 진수, 광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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