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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Apr 16. 2019

가라앉음 속에서, 일어나

일어나야지, 바닥에 닿으면

삼촌은 지난 수요일에 퇴원을 했습니다.

뇌혈류를 진단해 보았을 때는 분명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삼촌이 활동하는 데는 그다지 무리가 없었고, 약간의 어지러움 만을 느끼고 계셨습니다.

1주간 병실에서 안정을 취하면서, 경과를 살펴봤지만, 다른 증상이 없어 의사 선생님은 삼촌을 집으로 보냈습니다.


약 10일간의 간병을 끝내고, 삼촌을 보낸 뒤에 갑자기 몸이 아파왔습니다.

열도 하나도 나지 않았지만, 두통과 피로감에 부모님의 집으로 와서 잠을 청했습니다.


정말 아픈 와중에, 좋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습니다.


심뇌혈관 질환 병동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고 나이 드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저랑 나이 차이가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그 사이에 있던 것 때문일 것일까, 아니면 한동안 몸을 막 굴려서 그런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나의 이런 생각들로 몸이 아프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문득 두려움과 겁이 밀려 나왔습니다. 마치 장롱 속에 구겨 넣어놓은 이불들이 눈사태처럼 밀고 나오듯

그 생각의 몰아침에, 몸의 피로감에 깊게 가라앉아 갔습니다.


나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이렇게 아프게 된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직 돈도 벌지 못하는, 이렇다 할 돈을 모을 계획을 하지도 않는 제가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얼른 그 대비책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또 지금 아픈 나처럼,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저 짐이 되어 버려, 사람들이 나를 떠나지 않을까.

가족들이 모두 떠나, 외로워하고 계신 할아버지처럼 되지 않을까.

답도 할 수 없는 질문들이 두려움을 만들고 다시 저를 눌러왔습니다.


몸이 아파서 마음이 아픈지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픈지 모르겠지만

제가 했던 말들을 저에게 다시 들려줬지만 소용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말했던 모습들이 싫어졌고

다시 정신을 차려보자는 마음속 충고들도 싫었습니다.


얼른 무엇인가를 정하면 되지 않겠냐 스스로 물었지만

무언가에 가로막혀 스스로를 설득하지도 못했습니다.

피할 수 있는 곳은

몸의 피로감에 기대에 더 잠을 자는 것

잠은 생각과 감정들을 잠시 묻을 수 있었습니다.


잠에서 잠깐 깼을 때

힘들어하던 친구에게 했던 저의 어쭙잖은 충고들이 생각났습니다.

마치 무엇인가 아는 것처럼

생각을 바꾸면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그 해결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던 저의 입이 미워졌습니다.

저는 친구들을 기만했던 것이지요.


당시의 그 친구도 그랬을까

다른 사람들도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온전히 스스로 감내할 수밖에


그것이 지나갈 때까지는

홀로 아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미안하고 분하여 눈에서 물이 새어 나왔습니다.


 



아프기 전, 병원에서 김광석 평전을 다시 읽었습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그 책을 왜 다시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광석이 아저씨가 써 놓은 몇 글들이 떠올랐습니다.


김광석 평전, 이윤옥, 221p

서른 즈음에 느끼는 스스로의 한계와 답답함. 생활이나 삶이란 것은 애당초 허무를 인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 속의 자잘한 재미나 가벼움이 소중하다고 느끼며 재미있게 즐겁게 열심히 살아가자는 뜻으로 만든 곡입니다. 한 1년 전에 제 스스로 여러 가지 힘든 일이 한꺼번에 불규칙하게 처졌을 때 이런 생각을 했죠.

'인생은 수영장과 같다. 이렇게 힘든 일이 자꾸만 날 가라앉게 만든다면 그래 한 번 가라앉아 보자. 내려가다 보면 바닥은 나올 것이고 바닥이 나오면 차고 올라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자꾸만 가라앉으면 가라앉을수록 그 끝은 더더욱 깊게만 느껴지지 다시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죠. '그래 포기하자. 이 선에서 만족해야 한다' 생각하고 떠오르기로 했죠. 삶은 일정 부분 만족하며 아쉬워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저런 생각들을 노래로 만든 것이 <일어나>입니다.

<김광석 노래집>에서


김광석 평전, 이윤옥, 259p

몇 년 전, 나는 내 틀을 넘어선 외로움을 부정했다.
나는 늘 도망가고 싶어 하는 어쩔 수 없이 쫓기는 자로 태어났는가?
무엇인가? 날 이토록 흔들고 있는 것은
내 심연과 욕심의 근원을 모르는 것인가
무얼 위해 보고 먹고 느끼는 건가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 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끊임없이 날 잡아 내리는 이것은 무엇인가?

1995년 8월 즈음


공연이 중반을 넘어섰고, 다들 축하해 주고, 열심이었다고, 특종이라고 악의 없는 칭찬들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에 일고 있는 허전함은 무엇 때문인가. 나를 치열하게 해 준 것은 무엇이었나. 후회도, 보람도 아닌 그저 살아 있음에 움직인...

그 움직임이 불쌍하다. 무료하다. 사람들이 울고 웃고 박수치는 그 사람이, 사람들이 무료하다. 즐겁지 않은 이유를 모른 채 나는 여전히 즐겁지 않나. 가라앉는 것인가. 무섭구나.

1995년 8월 즈음-

<<Collection - My way>> 에서


읽었던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구나'로 밖에 이해하지 못했던 문장들이

잠을 청하던 와중에 너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물론 저의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잡아 내린다는 그 무엇이 저를 계속 잠을 자게 만들었으니까요.


가라앉는 것이 무섭다는 그의 탄식에

다시금... 아저씨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 가라앉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 가라앉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아저씨는  그것을 부정하며 노래를 부르셨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포기하자, 이 선에서 만족해야 한다' 생각하고 나 역시도 떠 올라야 할까.


노래를 들으며, 다시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지만 아저씨는 묵묵부답입니다.



저는 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어차피, 이 가라앉음이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듯이

바닥에 닿든

그렇지 않든

저의 떠오름도 제가 의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라앉으며 드는 생각들과 피로감들

그 녀석들을 싫어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을 겁니다.

나에게 찾아온 그 녀석들을 잘 달래서

같이 떠오를 겁니다.

아저씨의 노래를 들으면서 말이죠.

그리고, 그 순간을 위해서 아저씨가 노래를 부르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그 순간의 곡은 정해져 있습니다.


검은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었지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 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수가에 다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한번 해보는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끝이없는 날들 속에 나와 너는 지쳐가고
또 다른 행동으로 또 다른 말들로
스스로를 안심시키지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지고
그저 왔다갔다 시계추와 같이
매일매일 흔들리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해보는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가볍게 산다는 건 결국은 스스로를 얽어매고
세상이 외면해도 나는 어차피 살아있는걸
아름다운 꽃일 수록 빨리 시들어 가고
햇살이 비추면 투명하던 이슬도 한순간에 말라버리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 처럼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 처럼
김광석, 일어나


가라앉음 뒤에 오는 떠오름

떠오름 뒤에 올 가라앉음과 또 다른 떠오름

어쩌면 저의 장래희망은 이 파도를 타는 파도잡이가 되는 것이겠네요.


능숙한, 웃고 있는, 아저씨의 노래 같은 파도잡이가 되고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2c2OdfY1Kc

김광석,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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